국민의힘 텃밭에서 이재명 지지 선언한 5, 60대 김천시민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매체마다 내년 3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 관련 뉴스로 차고 넘친다. 한 사나흘 건너 발표되는 대선 후보 지지도에 따라, 이른바 ‘정치 고관여자’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지역마다 다른 후보자를 뽑는 총선거나 지방선거와 달리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대선에 관한 관심은 남다른 데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보나 마나 한 총선·지선과는 달리 대선은 ‘가능성의 선거’
지역 기반 보수 정당에 ‘묻지 마 지지’가 이어져 온 영남 지방에는 대선을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은 이들이 있다.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단 한 명의 야당 선량도 내지 못한 경상북도의 경우, 워낙 뻔한 구도로 이루어지는 총선이나 지선은 요식 절차와 다르지 않게 치른다. 만 스무 살에 선거권을 얻은 이래, 지난 40년 동안 ‘야당’, 또는 소수 정당에 던진 표가 고스란히 사표(死票)가 된 경험은 이들에게 공통적이다.
그러나 대선은 좀 다르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김대중·노무현을 뽑았던 승리의 경험을 기억하는 이들 유권자에게 대선은 내 한 표가 유의미한 정치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선거기 때문이다. 이들 진보적 유권자들에겐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를 뽑을 수도 있는 유일한 선거가 대선이다.
며칠 전 교육운동을 같이한 김천 지역의 동료 교사 송주필에게서 50, 60대의 김천시민을 모아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구 경북은 이재명(22.6%) 후보가 윤석열(59.7%) 후보에 비해 두드러진 열세인데다가 50, 60대의 지지율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리멸렬이란다. 안 되겠다, 여기도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달 29일부터 12월 3일까지 시행해 발표한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참조)
그리고 오늘(7일) 오후 3시, 김천 혁신도시 김동기 김천시의원 사무실 앞에서 전직 교사와 작가 그리고 일반시민 등 5·60대 서명자 41명을 대표한 8명이 실명으로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김종인 시인이 읽은 선언문에서 이들은 내년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을 재창출하고 그 여세를 몰아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사회 대개혁의 횃불을 더 환하게 밝혀야 한다”라고 하며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진보 개혁 세력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김천은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진보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며, “지역주의라는 망령이 더 이상 자리 잡지 못하게 할 유일한 후보”라며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또 이들은 김천도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 서 있다며 “이재명 후보의 소득분배, 국가 균형 성장 발전, 지방분권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방소멸 위기 앞 ‘이재명의 국가 균형 성장, 지방 분권 정책’ 지지
또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직을 수행하면서 보여준 뚜렷한 국정철학과 과감한 실행력은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해 주리라 확신”한다며 이 후보를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제시하며, 진영을 뛰어넘어 국민을 통합시키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입을 모았다.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로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동세상을 향해 가야 한다고 강조”한 이재명 후보를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사람”이라며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고, 사무실에서 참여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돌아보면 한결같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웃들 앞에 언제나 섬처럼 떠 있던 이들이다. 그들은 이쪽을 의식하면 자제하지만, 비슷한 성향끼리 함께 있으면 훨씬 공격적으로 정치적 지지를 드러내는 이웃들이다. 저도 몰래 방어적 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격으로 자세를 바꾼 것이다. 갑자기 ‘이재명 지지’ 선언에 참여하게 된 심리적 동기는 뭐냐고 묻자, “윤석열의 집권을 막아야 하니까”, “검찰 공화국은 곤란하지 않냐” 등으로 답했다. 그건 모범 답안이겠지만, 오히려 현재의 국면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먼저였지 않을까 싶었다.
쉽게 표심을 안 바꾸겠지만, 절박감으로 선언에 나선 사람들
지금 생각에 대선 승자는 누구일 거 같으냐니까, ‘이재명’이라고 답한 이가 많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저들의 공격이 너무 집요하고 조직적이라 겁이 난다”라는 답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아직 승부를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지지 후보가 열세라는 사실 앞에서 환기되는 패배의 기억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이들이 어깨를 겯고 나선 이유일지 모른다.
오늘 성명이 주변의 표심에 영향을 줄 거 같으냐는 물음에는 “아주 조금”, “큰 영향은 없겠지만 한 표라도 변하면 우리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했다. 지지 선언을 알리면서 “시민들은 보수화된 이 지역에서 이 선언의 영향력이 미미할지라도 진보의 씨앗을 뿌려 민주개혁의 큰 나무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는 바람”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이웃들이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어느 여성학자는 “매주 발표되는 지지율이라는 성적표” 앞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라고 지적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더 나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면서 “결정을 최대한 늦추자”고 제안했다.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전개되고 후보 토론회가 열려 후보별 정책과 국정 운영 청사진 등이 밝혀지면 선택지가 더 분명해지리라고 이들은 믿고 있다. 어쨌든 여러 변수 때문에 가장 예측 불가능한 역동적인 선거가 될지도 모르는 이번 대선에서 필요한 것은 ‘전복적 상상력’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마치고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따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2021년 12월 8일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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