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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촛불 - 꺼뜨릴까, 키울까

by 낮달2018 2021.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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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구에서 밝힌 촛불집회

▲ 2016년, 촛불은 시민들의 정치적 발언을 대신한다.

지난 25일엔 구미역 광장에서 금요일마다 밝히는 촛불집회에, 다음날인 26일에는 대구 중앙로에서 펼치는 촛불집회에 각각 나갔다. 서울의 백만 촛불에 한 번 더 동참하고 싶었지만 오가는 일을 비롯하여 상황이 녹록지 않아 대구로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구미엔 날씨가 꽤 추웠는데도 100명이 넘게 모였다. 수천, 수만 단위의 촛불이 일상적인 상황이니 100명이라면 시뻐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중 집회가 드문 이 도시에서 이 정도 숫자만으로도 모인 이들의 열기나 마음을 헤아리기는 충분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남자 고교생과 여자 초등학생의 이야기에 참가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 구미의 촛불집회. 이 도시에서 이 정도 숫자만으로도 모인 이들의 열기나 마음을 헤아리기는 충분했다.
▲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어머니의 소망은 아이들에게 정의가 통하는 세상을 물려주는 일일 것이다.

26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갔다. 역에서 후배 교사와 만나 집회 장소로 가는데, 둘 다 정작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 일단, 내려가 보죠. 어디선가 소리가 나겠지요. 우리는 대구역 앞에 수직으로 벋어 있는 중앙대로를 따라 천천히 시내로 들어갔다.

 

대구 촛불은 박근혜를 버리려 하는가

 

내게 대구에서의 대중 집회는 2000년대 초반, 대구백화점 앞에서 일이백 명이 모인 기억이 다다. 1990년대는 그래도 그만그만했지만 2000년대 이후엔 집회다운 집회가 드문 곳이 대구였다. 하긴 그래서 보수 영남의 본산이라고 불리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요즘 대구의 촛불집회는 백 단위에서 천 단위를 넘어갔고, 요즘은 만 명을 훌쩍 넘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반색하면서도 어쩐지 그게 미덥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수십 년 동안 보수 영남당의 뒷배가 되어준 시민들이 그렇게 마음을 바꾸었다는 게 어쩐지 미심쩍었었다.

 

한때 야도(野道)-‘야구 도시’가 아니라 ‘야권성향’ 도시-로 불리었던 이 도시가 마지막 야당(진보·개혁 성향의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로 한정) 국회의원을 뽑은 것은 1985년 12대 총선이었다. 한 선거구에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이긴 했지만, 대구에서는 여당(민주정의당)의 곱인 4명의 야당 의원을 배출한 것이다.

 

그리고 31년, 올 18대 총선에서 김부겸(민주당), 홍의락(무소속) 의원이 각각 새누리당 후보를 물리치고 국회에 입성했다. 여당을 버리고 야당을 선택한 총선의 민심이 대구 변화의 서막이었던 것일까. 그리고 이제 대구 민심은 지난 대선에서 80.1%의 득표율로 밀어준 박근혜를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중앙네거리를 지나자 확성기 소리와 함성이 들려왔다. 거기서부터 반월당까지 이어진 중앙대로가 집회 장소였다. 평소 같으면 차량으로 북적거릴 거리가 차량 운행이 차단된 채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로 어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모두인가 했는데, 그 앞에 대형 스크린에서 주 무대가 중계되고 있었으니 본 무대는 까마득하게 멀었다.

▲ 가랑비가 내리는 대구 중앙대로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아 '영남 성골'로 불리는 이 지역 사람들도 마침내 촛불의 대열에 합류했다.

빗방울이 듣고 있는데도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받쳐 든 시민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큰길 중간에 대형 스크린이 여러 개여서 전체 참가인원을 가늠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만 명을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했다.

 

‘묻지 마’ 지지의 끝, ‘성찰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꾸 불어나 나중에는 보도로 다니는 것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돌아와서야 이날 모인 사람들이 4만에 가까웠다는 뉴스를 들었다. 만 단위를 넘긴 것만도 예사롭지 않은 일인데 4만이라고! 그것은 결국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민심은 대구지역도 다르지 않았다는 뜻일 거였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지지율(80.8%)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경북에서도 포항을 비롯하여 안동, 경주, 영천, 의성, 울진 등의 시군에서 촛불을 밝혔다고 한다.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단연 으뜸이어서 ‘영남 성골’로 불리는 이 지역도 그예 촛불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대구와 달리 경북은 지난 총선에서 야당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15대 총선(1996)에 세 명의 야당 의원을 뽑은 게 마지막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부터 경북에선 야당은 전멸했고 모두 한나라당이거나 뒤이은 새누리당 일색이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방의회도 사정은 비슷해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행사해 온 ‘묻지 마’ 지지의 끝은 좀 황당하다 못해 씁쓸하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든,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인물 됨됨이, 역량과 비전에 대한 오판이든 바야흐로 이 맹목적 지지에 대한 유권자의 성찰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정치적 선택의 의미는 선거의 당락이라는 일회적 결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다른 사회·경제·문화·교육과 긴밀히 연관되며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우리 삶이 규정되기도 한다. 지역감정은 물론이거니와 이미지나 정서적 감정 따위에 영향받는 정치적 선택은 내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일색의 대구, 경북, 울산의 무상급식 비율이 전국 시도 가운데 꼴찌인 것도,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전면 거부하겠다는 14개 시도교육청 명단에 대구, 경북이 보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결과이다.

▲ 현 상황은 지역 사람들의 맹목적 지지에 대한 유권자의 성찰을 강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국회로 공을 떠넘긴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에 대해 벌써 야당과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은 광장에 나와 촛불을 밝힌 시민들을 시뻐 본 것이 분명하다. 아니, 여전히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는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불가능한 사람 같아 보인다.

 

대구 경북의 촛불 - 꺼뜨릴까, 키울까

 

시민들은 이미 담화에 숨겨진 꼼수를 읽어버렸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촛불이 횃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탄핵 일정 원점 재검토’를 부르대는데, 국민으로부터 쫓겨나게 된 대통령에게 측은지심을 금치 못하는, 착한 대구 경북 사람들의 선택은 과연 어떨까.

 

“아이고, 그만하면 됐구만. 지가 내려온다잖아.”

 

대통령 담화가 정치적 온정주의를 겨냥했다면 그건 일정하게 성과를 올릴 수도 있겠다. 벌써 적당한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온정주의가 슬슬 머리를 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난 두 차례의 담화를 통해 지른 불에 다시 기름을 부은 거라는 평가가 훨씬 지배적이다.

 

지역감정과 그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포박된 정치적 선택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그것을 무력화해 버리기에 이른 오늘의 한국 정치 앞에 지금 이 지역 사람들은 엉거주춤 서 있다.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된 대통령에 대한 심정적 연민이 촛불을 꺼뜨리게 될까. 정치적 성찰을 통해 이 촛불을 횃불로 키워서 이 꼼수 정국을 넘게 될 것인가.

 

 

2016. 11.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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