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트위터 공방에 부쳐
트위터(twitter)가 마구 두들겨 맞고 있다. 물론 발신지는 트위터에서 세가 불리한 쪽이다. 몇 차례 선거를 통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따위의 이른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의 영향력은 일찌감치 검증된 바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서비스에서 기득권층은 맥을 못 춘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이 민심을, 특히 젊은이들의 속내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인 듯하다. 이 디지털 세대의 관심과 지향, 희망과 절망을 한 번도 눈치채지 못한 이른바 ‘꼰대 세대’들은 그 대응조차 아날로그적이다.
고작 낸 꾀가 ‘SNS 차단법’ 발의다. 화들짝 놀라서 이를 철회하고 말았지만, 이 일련의 해프닝 속에 우리 시대의 ‘사회적 불통(不通)’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SNS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겠다는 것도 오십보백보다. 영입해야 할 것은 ‘기술자’가 아니라 ‘마음’이 아닌가 말이다.
트위터가 ‘현실 불만의 표출 수단’이라고?
애꿎은 ‘이효리 사망설’ 등이 이어지면서 ‘트위터 괴담’이 힘을 얻는가 싶더니 그예 집권 여당 대표도 트위터를 원색적으로 매도했다고 한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한 행사장에서 “소통이 중요한 시대이지만, 트위터 상 SNS 소통을 과연 소통이라 할 필요가 있는가. 자신들의 불만이나 주장, 이런 것을 해소하는 창구이지 않은가”라고 일갈한 것.
스마트폰이 없어 나는 트위터를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부지런히 인터넷을 드나들면서 관련 뉴스는 챙겨보고 있다. 다행히 인터넷을 통해 걸러서 그걸 보게 되니 ‘욕설이 난무하는 비이성적 공간’은 ‘아직’이다.(그게 ‘구경꾼’이 누리는 혜택이라면 혜택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차피 도덕군자가 아니다. ‘SNS상에서조차!’하고 발끈하지만, 어차피 오프라인은 그보다 더한 쌍욕의 도가니다. 어떤 문제가 맘에 걸려 쌍소리를 내뱉는 이들을 변호하는 게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그런 욕설이나 무례는 있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트위터를 즐기는 이들이 아주 고상하고 지적인 언어로만 소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오프라인 세상이 아무 갈등 없는 사랑의 공동체이기를 바라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여당 대표의 불평을 확인하고 있자니 지난 16일 MBC 뉴스데스크의 한 꼭지가 아주 절묘하게 떠오른다. 그날의 ‘뉴스플러스’는 ‘SNS의 위력과 그 명암’이라는 제목이었는데, 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양날의 칼과 같은 SNS의 명암’을 살펴보겠다던 예의 뉴스는 은근히 ‘SNS 소통’의 부정적 면을 부각하면서 정치적 소통에 종주먹을 들이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MBC의 충고?, ‘소소한 정보나 교환하시지’
주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트위터들의 자유분방한 의견 표명을 이르면서 방송은 ‘비판을 넘어 직설적이고 거친 언어들도 난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 최근 SNS가 한미FTA 등 정치적 현안에 대해 견해가 다른 상대를 일방적으로 공격하거나 매도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 ‘트위터 폭력’의 피해자 격인 국회의원 소개도 물론 잊지 않는다.
방송은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의 여야 합의처리를 주장하고 단식 농성하는 여당 의원을 지지했던 김성곤 민주당 의원에 대해서 ‘소신 행동이었지만, 트위터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다’고 전한다. 그리고 거기엔 ‘제2의 을사오적이 되지 말라, 내년에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글부터 변절자, 한나라당 간첩이라는 인신공격성 글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방송은 좀 정색하면서 ‘사전적인 의미로 새들의 지저귐’을 뜻하는 트위터는 ‘사람에 적용한다면 개인적인 일들을 자유롭게 얘기하고 퍼뜨릴 수 있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른바 2040세대는 트위터를 쇼핑, 영화, 맛집 등 소소한 정보의 공유수단으로 많이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트위터가 각종 정치적 현안에 대한 불만 표출의 수단으로 떠오른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권위에 저항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 트위터와 결합했기 때문이란다. 말하자면 이는 트위터가 본래의 기능을 버리고 ‘엇길’로 샜다는 투다.
그러면서 방송은 ‘날씨를 화두로 출근길 안부를 나누고, 업무에 필요한 조언을 트위터에서 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점심 식사 메뉴도 트위터로 해결’하는 한 직장인의 일상을 소개한다. 뒤이은 ‘트위터는 동시대인들과 교감하는 통로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는 기자의 언급은 차라리 생뚱맞아 보였다.
그래도 뒤통수가 가려웠던지 국회의 대표적 트위터 이용자라는 홍정욱 의원의 트위터 이용을 소개하고 한 사회학자의 도움말을 붙인다. 그리고 방송은 트위터가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론을 뇌면서 끝난다.
겉으로 보면 이 보도는 트위터의 정기능과 역기능을 두루 다루는 산술적 균형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주 묘한 뉘앙스로 SNS를 달구는 정치적 현안에 대한 트위터 이용자의 견해를 ‘불만 표출 수단’쯤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권력에 길들고 있는 MBC의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기만 하다.
SNS가 젊은이들의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의견 교환의 장이 된 것은 그들의 정치적 지향과 의견을 마땅히 표출할 공간을 갖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맞춤한 소통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려는 것이다.
나는 트위터를 구경만 하는 국외자지만 ‘다음’에 오르는 트위터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흔치 않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한겨레> 23면에 실리는 ‘오늘의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유·무명의 트위터 이용자가 날려 보낸 140자 속의 함의를 되씹으며 나는 우리 시대의 소통을 생각해 본다.
2011. 11. 22. 낮달
* 덧붙임
방금 귀가해 뉴스를 보니 한나라당이 비공개로 한미 FTA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한다. 당연히 트위터는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뜨겁다고 한다. 그래도 골치 아픈 정치적 현안은 잊어버리고 사람들은 트위터 질로 오늘 밤 회식할 맛집을 찾거나 추천 영화에 관한 ‘소소한 정보’나 나누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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