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새 ‘오월의 노래’ 제정 논란과 임을 위한 행진곡
보훈처,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진보 진영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민중의례’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것은 그 노래의 역사성과 노랫말에 어린 격정과 비장미가 참가자들의 마음을 격동케 해 주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은 5·18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으면서 개인적 자아를 역사적 자아로 상승시키는 심리적 체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공식 추모곡’의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도(경향신문 12월 1일 자)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5·18 기념식장에서 부를 ‘5월의 노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가사 공모와 작곡을 맡겨 “내년 3월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5월의 노래’ 보급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보훈처에서는 기념일마다 기념 노래가 있듯 5·18 기념식에도 마땅한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는데 정작 광주 시민사회의 반응은 좀 갈리는 모양새다. 5·18 관련 3개 단체에서는 ‘조건부 찬성’ 의견을 냈고, 다른 시민단체에서는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면서 ‘공모 철회’를 촉구했다고 한다.
광주 현지에서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이 소식을 듣고 난 느낌은 어쩐지 ‘생뚱맞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겠다”라는 정부 방침의 진정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5·18 노래’에 담긴 시대정신을 빼앗는 것이다”라는 일각의 평가가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리면서 ‘상상력’이 쓸데없는 가지를 치기 때문이다.
‘5·18 추모곡’은 항쟁 4반세기가 지나도록 따로 제정되지 않았다. 그간 5·18이 ‘폭동’과 ‘사태’에서 ‘민주화운동’과 ‘항쟁’으로, 망월동 묘지가 ‘국립묘지’로 자리매김하는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도 ‘오월의 노래’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 구실을 다하고 있었고, 모두가 마음으로 거기에 공식 추모곡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아니 할 말로 그것은 5·18 정신을 계승한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에서조차 따로 시도하지 않은 일이다. 5·18의 원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민주정의당과 닿아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가 새삼스레 ‘공식 추모곡’ 제정을 들고 나온 이유가 어쩐지 개운하지 않은 이유다.
공무원노동조합의 각종 집회에서 민중의례를 행하는 것을 금하고, 그것을 징계하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서슬 푸른 방침이 새삼 떠오른다. 행안부는 예의 징계 근거로 국가공무원법 제63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5조의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을 든다.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대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는 것이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한다는 것이다.
민중의례 금지하더니 ‘노래마저’?
그러고 보니 왜 ‘생뚱맞게’ 이 시점에 ‘오월의 노래’가 필요한지 슬슬 이해되기 시작한다. 정부는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자가 참석하는 5·18 기념식에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편하고 곤혹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짚이는 게 또 있다. 어느 해 5·18 기념식에 참석한 정치인 중 누구는 ‘주먹질’을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누구는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는 기사 말이다.
‘주먹질’에다 노래까지 부른 정치인과 서 있기만 했다는 정치인이 어떻게 갈리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지난 정권 인사들이 비교적 그런 자리에 익숙한 이들이 많았다면 현 정권은 그 노래가 겨냥하는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정권이 바뀌면서 ‘구제 불능’의 ‘데모꾼’들의 모임에 참석해야 하고, 낯설고 전투적인 노래와 구호를 꼼짝없이 견뎌야 했던 관료들에게도 그것은 불편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노조 전임으로 근무할 때다. 사무실 개소식에 교육감 대신 내빈으로 참석한 교육국장이 심란한 표정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고 섰던 광경이 떠오르는데 그것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 경위에 대해서는 ‘설’도 많다. 누구는 ‘황석영’의 노랫말에다 곡을 붙인 것이라 하고, 누구는 백기완의 시에서 따온 가사로 김종률이 작곡했다고 한다. 어떻든 간에 이 노래가 광주항쟁을 기리는 노래며, 숱한 투쟁의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결기를 다진 노래라는 것은 분명하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이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발표”되었다.
그 후, 이 노래는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 단체에서 치르는 모든 행사, 집회·시위 등에서 ‘민중의례’의 일부로서 감초처럼 불리면서 가히 ‘애국가’를 대신하는 애창곡이었다. 그 가사의 단순하면서도 굳건하고 분명한 전망, 뜨거운 희생과 그 다짐에서 드러나는 비장미, 사자(死者)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깊고 그윽한 떨림은 투쟁의 현장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정신적 일체감으로 다가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노래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광주의 진실
그러나 광주항쟁 30돌을 앞둔 지금은 어떤가. ‘새날’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함성도 더 이상 뜨겁지 않다……. 지난 세월 내내 투쟁과 희생으로 쌓아 올린 모든 민주주의적 가치가 마치 부정적 유산처럼 치부되면서부터 바야흐로 ‘역사의 퇴행’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상식’마저 실종되어 버린 ‘역사의 길목 앞에 초라하게 서 있는 사람들 앞에 한 시대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체 무엇으로 다가올까.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공식 추모곡’으로 ‘오월의 노래’를 공모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를 나는 ‘생뚱맞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기실 그것은 이 노래에 어린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 정권은 이 한 곡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잃어 버린 10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이 노래도 지금까지 기를 쓰고 시행해 온 ‘지난 10년 지우기’에 포함시킨 것일까.
그러나 설사 ‘오월의 노래’가 새로 제정된들, 그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신하여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가 될까. 4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항쟁을 ‘사태’로 이해하고 인식한다. 거기 덧칠한 부당한 이데올로기와 뼈아픈 지역감정의 상처 때문에라도 ‘광주’에 어린, 시대와 역사의 속살은 아직 연약하다.
새 노래가 국민의 노래가 되는 것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노래는 마음이고 정서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에는 피로 얼룩진 광주의 진실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 노래를 지우는 것은 필요한 일도 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다.
2009. 12.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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