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산길 낙엽 치우다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산길에 가을이 깊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숲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지만, 그것도 잠깐, 나뭇잎은 말라 바스러지면서 길을 지워버릴 만큼 낙엽으로 쌓인다. 2km 남짓한 산길 가운데 주 등산로 주변의 낙엽은 이내 사람들의 발길에 묻혀 버리니 괜찮다. 그러나 인적이 드문 외진 산길에는 낙엽이 꽤 두껍게 쌓여서 길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 길은 내가 다니는 산길의 끝, 마을로 내려가는 비탈길이다. 물매는 가파르지 않지만 길은 좁고 행인을 마주친 일이 손꼽을 만큼 인적이 드문 곳이다. 이 비탈길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낙엽에 뒤덮여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은 지난주다. 낙엽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나뭇잎에 덮인 길바닥의 상태를 알 수 없으니 자치하면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수 있다. 시뻐 보다가는 낙엽에 가려진 허방을 디뎌 다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초순에 이 낙엽으로 덮인 산길을 치운 이는 어떤 노부부였다. 집에 있는 갈퀴를 가져와 낙엽을 치워야겠다고 겨누기만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이 노부부가 길을 치워준 것이다. [관련 글 : 낙엽 쌓인 산길 걷는 법 ] 이 노부부께 각별한 고마움의 뜻을 전하고 다음엔 내가 길을 치우리라 마음먹었지만, 들머리의 낙엽을 한 번 긁어내는 걸로 해가 바뀌었다.
이번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지난 월요일 차로 출근하면서 집의 갈퀴를 교무실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인 어제, 5시 전에 학교를 나섰다. 나는 한 2, 30분이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여유롭게 갈퀴질을 시작했다. 두어 차례 갈퀴질하면 갈퀴의 쇠 살에 낙엽이 잔뜩 끼곤 해서 일일이 손으로 그걸 걷어내 주어야 했다. 100m 남짓한 비탈길에 쌓인 낙엽을 치우는 데 거의 한 시간이 좋이 걸렸다.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길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땅 위에 벋어 나온 나무뿌리가 문제다. 그것은 길을 울퉁불퉁하게 만들고 거기 낙엽이 쌓여 요철이 감추어지면 꼼짝없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일하는 동안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몸에 땀이 맺힐 때쯤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갈퀴를 길섶에 밀어놓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있는 산길을 나는 꽤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담배를 끊기 이전 같았으면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면 딱 그만인 시간이었다. 듬성듬성 길바닥에 낙엽이 남긴 했어도 어른들이 하시는 말로 길은 ‘인물이 훤해졌다.’
나는 갈퀴를 들고 나머지 산길과 거리를 거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갈퀴를 들고 가는 나를 힐끔 돌아보곤 했다. 나는 문득 똥장군을 지고서도 거리를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의 시선으로부터 무심해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걸어서 출근했다. 산길의 막바지, 비탈길에 이르면서 나는 차근차근 길을 살펴보았다. 지난해에는 노부부가 애써 준 덕분에 내겐 기분 좋은 출근길이었다. 치운 길을 누군가가 지나갔을까. 그는 길이 치워진 걸 알긴 알았을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이미 계절은 겨울의 들머리다. 바람이 심해지면 지난해처럼 한 번 더 낙엽을 걷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출퇴근길로는 마지막 해가 될지도 모를 산길에 올해도 눈이 내릴 것이다. 눈 내린 겨울 숲길을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우정 생각한다. 그러면 이 산과 숲의 사계가 온전히 내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을는지.
2014. 11.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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