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밤(도토리)묵’ 별식
지난번에 주워 온 꿀밤으로 묵을 쑤었다. 물론 내가 아니고 아내가 했다. 나는 딸애와 함께 껍질을 까는 걸 조금 거들었을 뿐이다. 나는 밤 깎는 가위와 니퍼까지 동원해서 도토리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한 이틀쯤 지나자, 아내가 썩 훌륭하게 묵이 완성되었다면서 네모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묵을 보여주었다.
어라, 그런데 그 묵의 빛깔이 예전에 보던 게 아니었다. 나는 예전처럼 짙은 암갈색의 묵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쑨 묵은 밝은 갈색이었던 것이다. 머리를 갸웃하는 내 궁금증을 아내가 분질러 놓았다.
“빛깔이 왜 이래?”
“왜 그렇긴……. 껍질 깠잖아요.”
“???”
아내의 설명은 심드렁하다. 대체로 도토리묵을 쑤면서 껍질을 까지 않고 껍질째로 간다. 어차피 거르는 과정을 거치고 앙금만 가라앉혀서 묵을 만드니 굳이 껍질을 까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파는 도토리묵이 그런 진한 갈색인 이유가 여기 있었던 거다.
그런가 하고 좀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아내는 묵을 쑤는 과정을 간단하게 일러주었다. 아내는 먼저 물에 담가 두었던 껍질 깐 도토리를 믹서에다 갈았다. 아무래도 밀가루처럼 곱게 갈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간 도토리를 천으로 받쳐서 찌꺼기(사진 4)를 걸러낸다.
찌꺼기를 걸러낸 도토리 가루(사진 3)는 앙금이 된다. 여기다 맑은 물을 부어서 완전히 익을 때까지 저으면서 끓인다. 묵 가루가 익혀져 밀가루 풀처럼 뻑뻑해지면 네모난 그릇에 담아서 식힌다.(사진 5) 남은 것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먹는 일이다.(사진 6)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앙금이 된 묵 가루에 물을 잡는 과정이다. 이때 물의 양에 따라 묵의 굳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이 많으면 무르고 물이 적으면 뻑뻑해져서 좋지 않다. 아내는 아주 ‘탱글탱글’하게 잘 굳었다고 매우 흡족해했다.
접시 위에 썰어낸 묵을 보라. 매끈한 맵시도 맵시지만 건드리면 튀어 오를 듯한 탄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성급하게 양념장을 주문했다. 아내는 갖은양념을 섞고 넉넉하게 참기름을 두른 양념장을 접시에 담아냈다.
묵은 젓가락으로 집어도 뭉개지지 않을 만큼 탱탱하다. 입 안에 넣었는데 혀에 부드럽게 닿는 감촉이 좋았다. 집에서 쑨 묵 같지 않게 떫지도 않았다. 껍질을 깠기 때문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도토리묵이 떫은 것은 껍질째 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떫은맛을 우려내느라 오래 물에 담가 두는 것이라 했다.
이튿날에는 주문대로 채로 썬 묵에 물을 붓고 양념장과 김치를 얹어서 먹는 도토리묵 별식이 나왔다. 채 썬 묵에다 반 넘어 물을 붓고 깨소금을 듬뿍 쳤다. 그리고 거기 김 가루와 잘게 썬 김치를 얹었다. 밝은 갈색의 묵 채 위에 얹힌 까만 김 가루와 하얀 배추김치의 빨간 양념이 어우러져 구미를 당겼다.
걸게 양념한 간장을 넣고 섞었다. 김치는 좀 신 게 좋은데, 담근 지 며칠 되지 않아 풋내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서걱거리는 배춧잎을 씹는 맛도 괜찮다. 입안에서 담백하게 녹는 묵 맛……. 혀는 용하게 지난날의 맛을 기억하고 그걸 복원해 낸다.
‘개밥의 도토리’, ‘도토리 키 재기’, ‘딸자식 두면 경상도 도토리도 굴러 온다.’ 등의 속담에서 보는 것처럼 도토리는 늘 민중 가까이에 있었던 열매였다. 무엇보다도 도토리는 주린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구황식품이었다. 헐벗은 백성에게 가을 산에서 얼마든지 채취할 수 있었던 도토리는 참으로 요긴한 먹거리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도토리가 ‘설사와 이질을 다스리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몸에 살을 오르게 한다’라고 적고 있다. 서민들이 손쉽게 허기를 달랜 구황식품이었지만 이제 도토리묵은 중금속 해독에 효능이 있는 대표적 웰빙 식품으로 떠 올랐다. 특히 도토리묵은 열량이 적어 다이어트에도 제격이라고 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 지역과 강원도 지방에는 묵밥이 있다. 채 썰어 갖은양념을 한 묵에다 육수를 붓고 밥을 말아 먹는 형식이다. 굳이 육수가 아니라도 묵을 건져 먹고 나서 간이 잘 된 시원한 국물에 밥을 마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다.
나는 묵을 식탁 위에 얹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약속대로 이웃들에게 눈요기 대접이라도 하려는 뜻이다. 그리고 단숨에 한 그릇을 비웠다. 국물도 시원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함지에 담은 묵은 두부모 크기로 세 모 남짓이다. 옛날 같으면 한밤의 참으로 맞춤한 이 음식을 이웃에게 직접 대접하지 못함을 나는 지금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2011. 10.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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