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

‘곤드레밥’이나 ‘콩나물밥’이나

by 낮달2018 2020. 7. 17.
728x90

어제 지어 먹은 곤드레밥

▲ 곤드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어린잎과 줄기를 식용한다.  ⓒ 위키

어제 아침에 곤드레밥을 지어 먹었다. 얼마 전부터 웬일인지 안동에 살 때 음식점에서 맛본 곤드레밥이 자꾸 생각났다. 마침 산나물이 한창 나는 철이다. 인터넷에서 ‘곤드레나물’로 검색해 보았더니 강원도 쪽에 산지가 여러 곳인 듯했다. 곤드레나물도 말린 것과 생나물을 삶아서 냉동한 것 등이 있었다.

 

담백한 강원도 나물, 곤드레

 

대체로 말린 것이 값이 더 나갔고 냉동한 게 싼 편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려다 개인 판매자인 단양 쪽의 농장에다 냉동 나물 4Kg을 주문했다. 4Kg이면 얼마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물었더니 밥을 지어 먹는 거라면 20인분쯤이라고 알려주었다. 전화로 주문하고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고 바로 송금을 했다. 배송료는 물건을 받은 뒤 내가 내야 한단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저께 밤에 물건이 도착했다. 내일 아침밥을 곤드레밥으로 해 먹자고 했더니 아내가 밥을 어떻게 짓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인터넷은 이럴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검색해 보았더니 그냥 지어도 되고 나물을 소금과 들기름을 무치거나 볶아 넣고 지어도 된단다.

 

그러나 다음날 아내가 지은 곤드레밥은 따로 간도 안 했고 들기름으로 무치지도 않았다. 나물 그대로 넣어 지은 밥은 정갈해 보였다. 푸른빛의 나물은 밥 속에서 마치 시래기처럼 검푸른 빛을 띠었다. 나물 물이 든 밥에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내는 식탁에 양념장도 함께 내놓았다.

 

장으로 비벼서 한 숟갈 입에 넣었더니 애당초 간을 하지 않은 데다가 장도 모자라선지 싱거웠다. 그런데 묘하다. 그 싱거운 맛이 말하자면 은근한 여운 같은 걸 남기는 것이다. 적당히 삶겨진 나물은 부드러웠지만 씹히는 맛도 괜찮다. 굳이 향이라 할 것도 없는 담백한 뒷맛은 오래 혀끝에 남았다.

▲ 곤드레밥은 아주 담백한 뒷맛이 혀끝에 남는 음식이다.

구황식물, 곤드레와 곤드레밥

 

▲ 곤드레밥을 비빈 양념장

안동에서 사 먹었던 곤드레밥은 늘 짰다. 아마 간을 한 밥을 다시 장으로 비비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이번엔 싱거운 맛이 묘하게도 은근히 식욕을 당겨주었다. 나는 굳이 장을 더 넣지 않았다. 어쩐지 싱겁게 먹는 게 이 나물의 향취를 제대로 즐기는 법 같았기 때문이었다.

 

학명이 ‘고려엉겅퀴’(Cirsium setidens)인 곤드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 들판에 자생하며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 북미 남서부 등 북반구의 온대부터 한대까지 널리 분포한다. 어린잎과 줄기를 식용으로 하는데 데쳐서 우려내어 건 나물, 국거리, 볶음용으로 이용한다.

 

곤드레나물에는 탄수화물, 칼슘, 비타민A 등의 영양이 풍부하다. 곤드레는 곰취와 같은 효과의 약으로 쓰이는데, 지혈, 소염, 이뇨작용, 지열, 해열, 소종에 효험이 있으며 민간에서는 부인병 치료약으로도 이용한다. 특히 곤드레 잎의 생즙은 세척 효과가 있으며, 뿌리는 말려서 달여 먹으면 신경통에 좋다고 한다.

 

곤드레는 지금도 강원도 일대에서는 최고의 나물로 친다고 한다. 다른 산채들이 주로 봄철에 잎이나 줄기가 연할 때 채취하여 식용하는 반면 곤드레는 5~6월까지도 잎이나 줄기가 연한 것이 특징이다. 곤드레는 과거 구황(救荒)식물로 이용되었던 유용한 산채다.

▲ 우리 집 콩나물밥과 무밥(만개의 레시피 사진)

밥에 곤드레를 넣는 것은 빈궁기에 주곡을 덜 쓰고 밥의 양을 늘릴 목적에서다. 요즘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가난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주곡을 아끼면서 적지 않은 입을 먹여 살려야 했다. 콩나물밥이나 무밥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대의 ‘삶과 미각’

 

어떤 이는 곤드레밥에 콩나물을 함께 넣어도 좋다고 썼다. 맞다. 어저께 저녁상에 아내는 아침에 남은 곤드레밥에다 콩나물을 넣어 비볐다. 나는 곤드레 맛을 죽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콩나물과 섞어 비빈 곤드레밥도 썩 훌륭했다.

 

오늘 점심에는 쇠비름나물이 올랐다. 장모님께서 특별히 뜯어주신 나물이다. 쇠비름이야 들에 나가면 지천이지만 워낙 농약을 마구잡이로 치니 아무 데서나 뜯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두말 하지 않고 그걸로 밥을 비볐다. 빨간 줄기가 거칠게 씹히었지만, 맛은 예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친정에 다녀오면서 아내는 아직 연한 콩잎도 얼마간 뜯어왔다. 된장에 삭힌 콩잎이 식탁에 오른 것은 어제 점심때다. 쌈을 싸는 대신 식은 밥에 콩잎을 올리고 거기 된장을 퍼놓아 먹는 콩잎 맛은 여전하다. 음식이 단지 맛으로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어우러져 기억된다는 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관련 글 : “콩잎 쌈과 쇠비름나물”]

 

우리 내외는 어저께 처음으로 곤드레밥을 지어 먹었다. 그리고 그게 콩나물밥이나 무밥과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의 원초적 미각을 일깨우는 음식이라는 걸 새삼 확인했다. 쇠비름나물을 먹을 때마다 아내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얼마나 맛깔나게 그걸 무치셨는가를 아프게 추억하곤 한다. 뒷날에 우리 아이들도 곤드레밥이나 쇠비름나물 따위로 어버이의 삶과 시대를 기억하게 될까.

 

 

2013. 7. 22. 낮달

 

 

곤드레밥 짓기

1. 곤드레나물 말린 것이면 미리 불려 삶아 씻어서 물기를 짜고 알맞게 썬다. 생채는 삶아 건져서 물기를 짜고 썬다.

2. 곤드레나물에 들기름과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다.

3. 쌀을 씻어 물에 불린다.

4. 솥에 불린 쌀을 안치고 물을 부어 맞춘 다음 준비한 곤드레나물을 얹어 밥을 짓는다.

5. 밥이 다 지어지면 뜸을 들여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