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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대학 VS 대학, 혹은 비켜줘 VS 부탁해!

by 낮달2018 202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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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또는 대학생의 변화

▲ <이대학보>에 실린 문제의 칼럼(위)과 현수막을 철거 자리에 남긴 서울여대 총학의 쪽지(아래).

변화,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 전 이사장에게 꽃을 달아주는 학생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정 생각하기도 하지만 때로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도 적지 않다. 한때는 이른바 ‘민주화·애국 청년 학생 운동의 해방구’요, 우리 사회의 ‘양심과 정의의 근원’이기도 했던 대학과 그 주인공인 대학생들의 요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게 되씹는 생각이다.

 

흔히들 ‘운동권’이라 불리었던 학생들은 소수였지만, 대다수 학생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다. 함께 하지 못하는 대신 그들은 소수의 선택에 대한 동의로 자기들 마음의 빚을 덜었다. 오늘의 대학과 대학생들은 어떨까.

 

기득권의 논리와 관점을 당당하게 추인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의 양식을 바라보는 다수 학생의 침묵은 지지일까, 비판일까. 유례없는 청년실업의 시대에 취업 전선을 서성거려야 하는 어두운 얼굴들 위로 떠오르는 우리 시대의 초상은 참 슬프고 우울하다.

 

“폭력시위는 추모제에 참여한 좌파·친북 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을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 <이대학보> 1495호(2015.5.4.) 칼럼 중에서

 

“축제 주제를 ‘전통’으로 잡아서 청사초롱을 달았는데 현수막이 있으니 을씨년스럽고 보기 안 좋다는 의견이 있었다.”

    - 서울여대 총학생회장

 

“박 전 회장이 좁은 학교 내에 건물을 많이 지어주고 생활공간도 넓게 해 줬다. (……) 이거(카네이션) 꽂고 조사받으셨으면 했다.”

    - 검찰에 출석한 박용성 전 회장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한 중앙대 학생

 

물론, 정부와 권력의 논리를 성찰 없이 답습하거나 대학 안의 을(乙)인 청소 노동자와의 연대보다 ‘모양 좋은’ 축제를 원한 학생회, 자본의 논리로 대학을 망가뜨린 재벌에게 꽃을 바치는 대학생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 청소 노동자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자 하며, 잊히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대학의 움직임도 있다. 마땅히 당연한 일이었을 이런 일이 유독 눈에 밟히는 것도 결국 오늘의 대학이 가고 있는 변화 탓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인 미화 어머님들의 근로 환경 개선과 최저임금 1만 원 쟁취를 함께 지지하고 연대하는 어머님들과 학생들의 ‘연대주점’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상규명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희망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세월호 추모주점’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 덕성여대 ‘연대주점’, ‘세월호 추모주점’ 준비단 포스터 중에서

▲ 덕성여대 축제 준비단 포스터. 출처 : 허핑턴포스트

 

2015. 5.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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