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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병원 나들이, 의사와 환자(2)

by 낮달2018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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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와 택시요금

▲ 진료비 할증은 환자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침을 시작한 지 한 달이 꼴깍 지나갔다. 정작 다른 어딘가가 아픈 건 아닌데 기침은 끈질겼다. 좀 나아지는가 하다가 다시 살짝 나빠지는 걸 되풀이하는 가운데 한 달을 넘긴 것이다. 목이 아파서 수업을 제대로 못 한 날이 4월 7일이었고, 오늘이 5월 14일이다. 꼭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셈이다.

 

5월 5일 방송고 등교일 때 이웃 반 여학생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았느냐고 물어 ‘아무개 이비인후과’에 다녔다고 하니까, 이 친절한 아주머니는 인근 동네의 ‘아무개 소아과’를 추천했다. 그녀는 전적으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확신을 힘주어 말했다.

 

“그 병원은 안 듣고요, 거기 ‘아무개 소아과’에 가세요. 거기서 목감기를 잘 잡아요.”

“소아과? 목감기인데?”

“글쎄, 가보시라니까요.”

 

긴가민가하면서도 가긴 갔다. 잘 낫지 않는 병을 앓는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이웃들의 처방과 추천에 따라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근 전에 예의 병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8시 반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 의사 선생이 무척 부지런한 이인 모양이구나.

 

‘진료비’, ‘약제비’도 ‘할증’된다

 

갔다. 건물 뒤편의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2층 병원으로 올라갔더니 아직 손님은 보이지 않고 간호사 둘이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접수를 하니 바로 들어가란다. 의사는 선병질적인 50대 초반쯤 보이는 이였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내과에서 이비인후과를 거쳐 누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더니 잠자코 진찰을 계속한다.

 

그는 내 목을 들여다보고 청진기로 꽤 주의 깊게 가슴과 등을 살폈다. 그리고는 좀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절한 것은 괜찮은데 이런 식으로 은근한 말하기 방식은 좀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보니까 한쪽 기관지에 염증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 누런 가래가 자꾸 끓고요. 치료가 간단하지는 않으니 좀 장기간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자칫 방치해 두면 폐렴으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거든요.”

 

몇 마디 더 들은 것에 그치지만 환자로서는 의사의 눈높이가 낮아진 것처럼 느낀다. 세밀하게 진찰한 만큼 더 세밀한 처방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가 은근해지는 순간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주사를 한 대 맞으란다.

 

글쎄, ‘반풍수 집안 망친다’라는 격은 아닌지 모른다. 변변한 의학적 상식도 없으면서 무조건 주사나 항생제를 마구 쓰는 게 옳지 않다는 편견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는 나는 의사들에게 별로 바람직한 환자가 아니다. 안동의 가정의학의는 주사 처방을 잘 내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를 신뢰했다.

 

아내는 감기라도 주사 한 대 맞고 와야 시원하게 낫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지만 나는 아니다. 그러나 워낙 오래 끄는 병이라서 나는 별 이의 없이 주사 한 대를 맞았다.

 

진료비를 계산하는데 나는 잠깐 헛갈렸다. 5300원이라고 해서 계산하고 나오는데 뭔가 찜찜한 느낌이 있었다. 보통 초진은 3300원, 재진은 2800원이었는데 여기선 2천원을 왜 더 받는가 싶어서였다. 아래층 약국에서 약을 짓는데도 약값도 4천 원이 넘었다. 비싼 약을 처방했느냐고 묻자, 약사는 항생제가 꽤 비싼 거라고 말했다. 내친김에 물었다.

 

“진찰료도 5천 원을 넘게 주었거든요.”

“네. 아침 일찍 진료하면 진료비를 좀 더 낼 거예요.”

“……?”

 

그러고는 나는 그 진료비 건을 잊어버렸다. 두 번째 진료는 오후 5시께였는데, 2800원을 냈다. 약값도 처음보다는 조금 쌌다. 세 번째는 어제 아침이었다. 출근하는 길인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갔는데 놀랍게도 의사가 나와 있었다. 참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에 겹쳐서 이른 진료는 진료비가 비싸다는 얘기가 겹쳐졌다.

 

의사는 내 기침을 두고 ‘아주 좋아졌다’라며 내가 닷새분쯤 약을 지어달라고 하자, 그만큼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흘분의 처방전을 써 주었다. 나는 다시 5천 원이 넘는 진료비를 지불했다. 아래층 약국에서도 역시 5천 원 가까운 약값을 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야 나는 진료비와 약제비에 ‘할증’이란 개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웬 할증? 진료비가 무슨 택시 요금인가, 나는 생뚱맞은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주로 기사와 누리꾼들이 주고받은 질의응답을 기준으로 확인한 게 아래 표에 나타난 정보다.

 

약국에서는 아닌 척했지만, 약제료에서도 할증이 이루어진다. 택시 요금이 심야나 시계나 도계를 넘을 때 할증되는 것처럼 의사나 약사의 진료와 조제가 일과 시간을 벗어나면 할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침 일찍 진료받은 나는 09시 이전이어서 야간 할증으로 처리되어, 진료는 편하게 받았지만 그 대가로 24%쯤의 할증료를 문 것이다.

 

병원 나들이가 많지 않은 나는 물론 처음 안 사실이다. 그러나 야간 진료비 할증제도에 대해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 환자들 역시 이 제도에 대해 잘 몰라서 불만이 많다는 기사가 여럿이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병원 등에 이와 관련한 안내도 전혀 없는 형편이다.

 

가능하면 오후 6시 이전에 진료를 받는 것이 경제적이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만약 6시 이전에 병원이나 약국에 도착했는데 대기시간이 길어진 경우에는 할증을 붙일 수 없다. 도착 시간이 기준이기 때문이란다.

 

환자는 결국 ‘을’일 수밖에 없다

 

글쎄, 왜 의사나 약사의 일과 전후의 진료나 약제 활동에 할증이라는 이름의 비용을 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들 전문직에게는 일과 시간 이후의 활동이 금전적 이익 제공으로 이어질 만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것도 모르고 진료비나 약제비를 내야 하는 환자들은 여전히 ‘을’이다.

 

일을 끝내고 병원에 가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할증된 진료비나 약제비는 부담이다. 그깟 1, 2천 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야간 할증은 돈이 된다’라는 인식은 꽤 널리 퍼진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많은 약국이 환자에게 받은 처방전을 야간에 조제한 것으로 속여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돈을 타내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하니 말이다.

 

자정을 넘기면 택시 요금은 할증된다. 그것은 종일 운전을 한 고단한 기사의 일과에다 심야에 제공되는 운송 서비스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나 약사가 일과 시간을 전후해 제공하는 의료나 약제의 서비스에 할증을 붙이는 것은 이들의 ‘고소득을 보전’해 주는 일종의 ‘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입맛이 써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병원을 다녀온 지 이틀째. 기침은 식사 전후해서 아주 조금 나올 뿐, 차도가 분명하다. 은박으로 포장된 굵직한 항생제를 포함하여 거의 한 움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약을 하루 세 번이나 입속으로 털어 넣으면서 나는 환자는 의사들 앞에 잘 길든 ‘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있다.

 

 

2013. 5.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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