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몇 개의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중심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단위’
그거로 밥을 먹고 살다 보니 아이들이 쓴 글을 자주 읽어야 한다. 백일장에 쓴 시나 산문은 물론이거니와 독후감과 기행문, 저희끼리 주고받는 편지글까지 읽어야 하는 때도 있다. 조만간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는 아이들의 논술 시험도 채점해야 한다.
문단을 써야 하는 이유
아이들이 괴발개발 써 놓은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줄곧 구시렁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교정해야 하는 원고로 그걸 받았다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진다. 글쓰기에 관한 한 요샛말로 아이들에겐 ‘개념’이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제라면 제때 교정해 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글이 나름의 ‘생각과 논리의 흐름’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단(文段)’을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문단이란 ‘몇 개의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중심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단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니 곧 ‘행(行)갈이’의 단위다. ‘행갈이’는 말 그대로 줄[行]을 바꾸는 것. 뒤에 여백이 있는데도 구태여 줄을 바꾸는 것은 곧 중심 생각이 바뀌어서 새 문단으로 넘어감을 뜻한다.
글에서 줄을 바꾸어 한 자 ‘들여쓰기’로 시작하는 글의 뭉치가 ‘문단’이니 그림 1은 모두 네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문단과 문단 사이에 여백을 두는 게 원칙은 아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 매체들은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문단 사이에 한 줄 여백을 둔다. 영어권에서도 마찬가진 듯하다. 그림 2는 인터넷 뉴욕타임스의 기산데 역시 문단 사이에 여백을 두고 있다.
굳이 문단을 나누어 가며 글을 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건 글쓴이가 안내하는 ‘생각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중심 생각에 살을 붙인 한 단락의 아퀴를 짓는 게 행갈이다. 그러니 줄을 바꾸는 건 한 문단을 마무리하면서 새 문단의 시작을 알리는 일인 것이다.
그림 3은 문단 구분 없이 이어 쓴 글인데 왜 문단을 구분해야 하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고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한 문장을 쓰고 나면 줄을 바꾼다. 길이가 조금 길다 싶어도 ‘엔터(enter)’를 쳐 댄다. 문단이란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른바 ‘웹(web)에서의 글쓰기’가 그런 형식이 아닌가 싶다. 그림 4가 바로 그런 예다.
일부러 한 줄을 비워놓아서 그나마 문단 구분이 된 셈이다. 만약 한 줄 여백조차 없다면 문단에 관한 판단은 유보한 채 글쓴이가 제멋대로 갈고 있는 행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쓴 글은 교정 보는 이의 성질을 버리기 쉽다. 문단 쓰기를 하고자 일일이 줄 끝에서 지움 글쇠를 써서 강제로 나뉜 줄을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도 장점은 있다. 글에 드러난 생각의 흐름을 읽는 건 쉽지 않은 대신 읽기는 좀 수월할 수 있겠다. 웹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선택이 이런 형식으로 기울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특히 댓글을 달면서 이런 형식이 선호되는 이유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내용을 새겨읽어야 할 글이라면 문단 쓰기를 비켜 갈 수는 없다. 문단 쓰기는 독자를 위한 글쓴이의 배려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생각의 흐름을 다스리는 일인 까닭이다.
2007. 12.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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