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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文段)’ 쓰기

by 낮달2018 202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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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몇 개의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중심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단위’

▲ 그림1 한글 문단
▲ 그림2 영문 문단

그거로 밥을 먹고 살다 보니 아이들이 쓴 글을 자주 읽어야 한다. 백일장에 쓴 시나 산문은 물론이거니와 독후감과 기행문, 저희끼리 주고받는 편지글까지 읽어야 하는 때도 있다. 조만간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는 아이들의 논술 시험도 채점해야 한다.

 

문단을 써야 하는 이유

 

아이들이 괴발개발 써 놓은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줄곧 구시렁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교정해야 하는 원고로 그걸 받았다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진다. 글쓰기에 관한 한 요샛말로 아이들에겐 ‘개념’이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제라면 제때 교정해 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글이 나름의 ‘생각과 논리의 흐름’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단(文段)’을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문단이란 ‘몇 개의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중심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단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니 곧 ‘행(行)갈이’의 단위다. ‘행갈이’는 말 그대로 줄[行]을 바꾸는 것. 뒤에 여백이 있는데도 구태여 줄을 바꾸는 것은 곧 중심 생각이 바뀌어서 새 문단으로 넘어감을 뜻한다.

 

글에서 줄을 바꾸어 한 자 ‘들여쓰기’로 시작하는 글의 뭉치가 ‘문단’이니 그림 1은 모두 네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문단과 문단 사이에 여백을 두는 게 원칙은 아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 매체들은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문단 사이에 한 줄 여백을 둔다. 영어권에서도 마찬가진 듯하다. 그림 2는 인터넷 뉴욕타임스의 기산데 역시 문단 사이에 여백을 두고 있다.

▲ 그림3 문단을 나누지 않은 글

굳이 문단을 나누어 가며 글을 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건 글쓴이가 안내하는 ‘생각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중심 생각에 살을 붙인 한 단락의 아퀴를 짓는 게 행갈이다. 그러니 줄을 바꾸는 건 한 문단을 마무리하면서 새 문단의 시작을 알리는 일인 것이다.

 

그림 3은 문단 구분 없이 이어 쓴 글인데 왜 문단을 구분해야 하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고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한 문장을 쓰고 나면 줄을 바꾼다. 길이가 조금 길다 싶어도 ‘엔터(enter)’를 쳐 댄다. 문단이란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른바 ‘웹(web)에서의 글쓰기’가 그런 형식이 아닌가 싶다. 그림 4가 바로 그런 예다.

▲ 그림4 웹에서의 주로 쓰이는 글 형식

일부러 한 줄을 비워놓아서 그나마 문단 구분이 된 셈이다. 만약 한 줄 여백조차 없다면 문단에 관한 판단은 유보한 채 글쓴이가 제멋대로 갈고 있는 행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쓴 글은 교정 보는 이의 성질을 버리기 쉽다. 문단 쓰기를 하고자 일일이 줄 끝에서 지움 글쇠를 써서 강제로 나뉜 줄을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도 장점은 있다. 글에 드러난 생각의 흐름을 읽는 건 쉽지 않은 대신 읽기는 좀 수월할 수 있겠다. 웹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선택이 이런 형식으로 기울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특히 댓글을 달면서 이런 형식이 선호되는 이유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내용을 새겨읽어야 할 글이라면 문단 쓰기를 비켜 갈 수는 없다. 문단 쓰기는 독자를 위한 글쓴이의 배려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생각의 흐름을 다스리는 일인 까닭이다.

 

 

2007. 12.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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