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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의 쇠고기 수입 관련 성명

by 낮달2018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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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쇠고기’와 관련 성명 낸 ‘광복회’

▲ 광복회의 성명서. ⓒ 한겨레 PDF

지난 24일 한겨레 제4면 하단에 광복회의 통단 광고가 실렸다. ‘정부와 정치인 및 국민에게 드리는 성명서’다. 광복회는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광복에 이바지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다.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국민에게 드려야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살폈더니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성명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된 광복회의 입장은 정부의 그것과 비슷하다. 광복회는 ‘한참 공부에 열중할 어린 학생들이 국론을 분열시키는 촛불 시위에 동원되는 것을 목도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 성명을 낸다고 밝히고 있다.

 

학생들의 임무는 ‘공부’에 그쳐야 하고, 그들을 또 ‘동원’되는 피동적 존재로만 바라보는 관점도 익숙하다. 이 문제가 ‘정부 관료들의 준비와 홍보 부족으로 생긴 일’이라거나, ‘정치적 작태로 이용하려는 데서 파생된 사건’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광복회는 ‘모든 정치적 이해를 초월해서 국론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선동·획책하는 세력은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성명을 맺고 있다. 성명서를 읽으면서 머리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 촛불 시위에는 중고생들도 많이 참여했다. 광복회는 이들이 시위에 '동원된다'고 표현했다.

순국선열들이 지켜내고자 한 것은 나라와 겨레였다. 그리고 그들의 남긴 뜻을 받들고 이어가는 광복회의 현실 인식으로는 뜻밖이다. 광우병 문제가 단순히 홍보 잘못이나 ‘괴담’ 탓으로 돌리는 건 사실도, 올바른 견해도 아니라는 것은 지난 17차례의 촛불 문화제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런데도 그 철 지난 논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딱하다.

 

광복회가 기리는 독립운동은 성년에게만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류관순 열사가 3·1운동에 참가한 것은 우리 나이로 열일곱 살,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것은 이듬해였다. 굳이 6·10만세나 4·19혁명을 들지 않더라도 나라와 겨레가 힘들 때 떨쳐 일어선 것은 청년 학생들이었다는 것은 두루 아는 일이다.

 

국민의 문제 제기를 ‘국론 분열’로 바라보는 것도 사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전체주의적 상황도 아닌데, 사회적 의제를 단일한 잣대나 의견으로 바라보려는 것도 그렇고, 더구나 그걸 ‘선동·획책의 결과’로 바라보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과학적 정보의 부족으로 광우병의 위험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나 수입을 찬성하는 이들이 빠져 있는 오류의 핵심은 ‘위험성에 대한 입증을 잠재적 피해자인 우리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에 대한 입증을 잠재적 가해자인 미국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권호장 교수·경향신문)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회원 상호 간의 친목과 상부상조’가 광복회의 목적 중 하나지만 그 본령은 ‘순국선열의 유지 계승’ ‘민족정기 선양’, ‘국가 발전과 민족통일’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유지를 계승하든, 민족정기를 선양하든 그것은 ‘겨레의 존속’을 전제로 한다.

 

이번 광우병 쇠고기 전면 수입 문제는 비록 객관적으로 증명되진 않았지만, 그 전제에 대한 위험과 위협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광복회는 잊고 있지 않나 싶다. 대다수 국민의 저항도 그런 문제에서 비롯한 것임을 고려하면 광복회의 성명이 유감스럽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2008. 5.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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