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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스승의 날’ 유감

by 낮달2018 202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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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앞둔 교단 풍경, 웬 ‘자성(自省) 모드’ 

▲ 5월 14일 아침, 우리 반 사물함 안의 케이크와 무농약 현미.

‘자성(自省) 모드’란다. 스승의 날을 앞둔 교단 풍경을 전하는 연합뉴스의 표제(5월 12일자)다. 까닭은 물론 ‘비리로 얼룩진 교육계’ 탓이다. ‘일부 초등학교 카네이션도 반입 금지’라는 부제는 표제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기사의 첫 문장도 압권이다. 비리의 주범이라도 되는 양 교사들은 납작 엎드려서 숨을 죽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교육계 비리로 국민을 실망시킨 올해 스승의 날에 축하를 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웬 ‘자성 모드’?

 

안다. 그게 요즘 우리 사회가 교단을 바라보는 보편적 시각이며, 그걸 의식한 교육계가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것쯤이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이 쓸쓸한 풍경은 마치 우리가 가끔 만나는 교실의 어떤 장면과 무척 닮지 않았는가.

 

아이들은 된통 쏟아지는 교사의 꾸중에 머릴 처박고 있다. 어쨌거나 잘못을 저지른 놈은 급우니까,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형편은 아니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피해 가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교사의 나무람을 들을 필요가 없는 순둥이들이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녀석은 어디서 벌을 받고 있느라고 현장에 없는 것이다.

 

“‘자성 모드’라, 그 제목 한번 묘하네요…….”

“분위기상 숨을 죽이고 있으라는 말씀이겠지요? 허허허.”

 

조그만 지방 소도시 여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에게 이 시정의 풍문은 낯설다. 한때 뉴스를 달구며 줄줄이 감옥으로 간 인사들은 수도 서울의 전 교육감과 전 교장, 전 장학관 들이다. 그들이 정리와 자리를 나누면서 주고받았다는 거액의 뇌물은 학교와 아이들밖에 별로 아는 게 없는 ‘잔챙이 교사’들에게는 무관한 소문에 그치는 것이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는 5월은 교사들에겐 ‘민망한 계절’이다. 스스로가 만든 날도 아닌데 공연히 계면쩍어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하는 날들이다. ‘노동절’에는 노동자들이 하루를 쉰다. ‘경찰의 날’에는 경찰들이 자신들의 날을 자축한다. 그러나 ‘스승의 날’에 스승들은 쉬지 못한다.

 

공치사는 필요 없으니 하루를 편하게 쉬게 해주면 좀 좋겠는가. 그러나 이날은 공식적인 휴일도 아니다. 날을 핑계 대고 논다고 손가락질을 받을까 꺼렸는가. 오래전부터 경북 지역에선 이날을 전후해 시군 지역의 ‘교직원체육대회’가 벌어진다. 말하자면 공식 휴일 대신 ‘대회’를 핑계 삼아 어정쩡하게 하루 학교 문을 닫는 것이다.

 

예전엔 선수만 운동장에 가고 나머지는 학교에 남아서 수업을 하곤 했다. 요즘에는 체육대회를 명분으로 아예 학교를 쉬게 되었으니 이는 그나마 발전이라 할 수 있을지. 체육대회는 주로 학교 대항의 배구 경기가 중심인데, 학교마다 예선에서 ‘최대한 빨리’ 떨어지는 게 목표 아닌 목표다. 예선 탈락 뒤 학교별로 점심식사를 하거나 귀가하는 게 훨씬 편한 까닭이다.

 

운동장 조회에서 대열 앞에 선 교사들에게 학급 반장들이 나와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사를 벌이는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구닥다리 행사를 하는 학교는 없는 것 같다. 전임 학교는 물론이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공식적인 ‘스승의 날’ 행사 따위는 없다.

 

아무 일도 없이 날은 지나갔다

 

교사들은 아무도 ‘스승’의 ‘스’자도 꺼내지 않는다. 교사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지만, 이날에는 수업 시간마다 ‘스승의 날 노래’가 간간이 터져 나온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멋쩍은 미소를 깨물고 있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우리 학교에선 반별로 아이들이 이날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기척도 없이 준비하고 있다가 교사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아이들 나름의 따뜻한 마음은 고맙기 그지없다. 아이들에게는 저희가 의견을 모아 치르는 행사인데다 따분한 일상을 날려버린다는 점에서 좀 들떠 있는 것 같았다.

▲ 무농약 찰 현미와 현미. 아이들의 센스도 날로 진화하는 것 같다.

아침에 아이들이 와서 사물함이 열리지 않는다고 성화였다. 그게 왜 안 열리냐며 교실에 가서 문제의 사물함을 여는데 아이들의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이건 뭔가 싶어 얼떨떨해하는데, 두 번째 사물함도 열어보라고 한다. 녀석들하고는……. 그 조그만 사물함 안에 케이크가 촛불을 켜고 있었다.

 

케이크 옆 칸에는 뭔가 했더니 의성에서 생산한 ‘무농약 현미’와 ‘찹쌀 현미’다. 언젠가 현미 채식 이야기를 했더니 녀석들이 의견을 모은 모양이다. 케이크도 떡으로 된 거였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센스가 놀랍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어떠냐며 의기양양한 표정이었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하루 내내 학교는 차분했다. 학부모에게서 꽃이나 화분이라도 배달될 듯하지만, 올해 전입한 동료에게 전임 학교에서 보낸 작은 화분이 다였다. 반반이 아이들이 준비한 케이크와 조그만 선물, 카네이션 한두 송이가 교사들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예년과 다르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다.

 

다시 반부패 선언이 필요한 시대

 

▲ 전국교사대회 광고

‘부패’와 ‘비리’로 얼룩졌다고 하지만, 그게 일부의 문제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글쎄, 대도시에는 스승의 날 전후해 암행 감찰도 있다고 하더라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쪽 문제다. ‘촌지’도 ‘봉투’도 요란한 ‘꽃바구니’도 없이 ‘스승의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 여의도에서 베풀어질 ‘무한경쟁 교육 중단! 참교육 지키기 전국교사대회’에서는 ‘반부패-참교육 실천선언’이 결의된다. ‘촌지와 청탁, 불법 찬조금’ 등 교육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구체적 운동을 전개하고, 소통하는 학교문화, 공동체 문화, 차별 없는 교육 등을 실천하겠다는 결의다.

 

2010년, 교사들이 ‘반부패’를 소리 높여 외치게 된 것은 오늘의 교단이 20여 년 전으로 퇴행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교조가 창립되던 1989년을 전후해 얼마나 많은 부패에 대한 폭로와 자정 선언이 이어졌던가. ‘죽어가는 아이들’ 때문에 교사들은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참교육을 내건 전교조가 건설된 것은 그런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21년. 전교조는 다시 선언한다.

 

학교를

차별 없고,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희망의 배움터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이 시대의 스승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언제나처럼 답은 ‘책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늘 아이들과 부대끼는 일상과 그 실천에 있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 교사대회로 가는 버스 시간에 대기 위해 서둘러 여장을 꾸린다.

 

 

2010. 5.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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