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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동행, 방송고 사람들(2)

by 낮달2018 2021. 5. 11.

늙다리 학생에게도 ‘시험’은 힘들다

지난 일요일, 방송고등학교에서도 중간고사를 치렀다. 출석일은 고작 닷새에 그치지만 사이버학습으로 나간 진도는 너끈히 시험을 치를 만했다. 출제는 어렵지 않았다. 사이버학습 교재에 난 문제를 대부분 그대로 쓰되, 일부 문제만 변형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서술형 문항 20%도 단답형 문항 4개로 갈음했다.

 

나는 2학년 문학과 3학년 독서 등 두 과목을 출제했다. 주관식 문항은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민하다가 교재의 객관식 문항을 주관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그 부분을 의식적으로 강조를 하면서 설명했고, 마치면서 ‘영양가는 오늘 수업’에 있다는 말로 힌트도 주었다.

 

누구에게나 시험은 괴롭다

 

그동안 출석률은 지지부진했다. 장기 결석자가 서너 명 되고, 가물에 콩 나듯 학교에 얼굴을 비치는 친구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이니……’ 하고 생각한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석은 무려 10명이다. 열대여섯이 안 오는 날이 많으니 그나마 대여섯 명쯤은 시험이라고 몸을 움직인 셈이다.

 

                ▲ 학생들의 사이버 교재

시험은 모두 20문항, 한 시간에 두 과목씩을 쳤다. 시간은 70분인데, 학반마다 열 명이 넘는 결석자들의 OMR카드를 두 장씩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모자랄 지경이었다. 십여 분 동안 찍듯 번호를 고르고 나서는 바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젊은 친구들과 자못 심각하게 문제지를 뚫어지라 들여다보고 있는 늙다리 학생들의 모습에 나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교과 담당 교사는 출근하지 않고 담임교사만 나와 내리 다섯 시간을 감독하다 보니 이건 수업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도 학생들은 점심 식사만큼은 착실하게 준비를 해 왔다. 2학년 감독을 하다 올라와 보니 우리 반 식사는 벌써 시작되어 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머지 두 시간을 마저 보았는데 교실에 들어가니 숫자가 확 줄어 있다. 이래저래 바쁜 사람은 결석하고, 일찍 가고 그런 것이다.

 

그걸 말릴 권한도 이유도 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성인들이고, 학업은 그들의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 명색이 시험인바 부정행위, 이른바 ‘커닝’이 없을 수 없다. 내가 감독한 반 중에는 커닝 페이퍼가 등장했는데, 내가 눈치채고 그걸 슬그머니 빼앗아 버렸다. 어느 반에서는 대놓고 커닝하려 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교사가 통사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마음이야, 본교에 다니는 십 대 아이들이나 4·50대의 어른들이나 다르지 않다. 못 본 척할 수는 없고, 에둘러 그걸 막아버리면서도 입맛은 좀 쓰다. 실제로 시험을 치지 않아도 이들이 과정을 이수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결시생에게도 최하 점수가 부여되기 때문이고, 졸업하는데 필요한 학력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본교생 서술형 문항 채점이 바빠서 미루어 두었던 방송고 채점을 한 것은 시험 이틀 후다. 특별히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다. 가장 단순한 문제라고 여겼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답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답을 달아놓은 이들도 번호와 답이 맞지 않거나 엉뚱한 답이 많다. 나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공감각적 심상’? 그것도 외계어다

 

글쎄, 이게 그리 어려운가……, 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들 4·50대의 학생들의 사고나 정서를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우리 자신과 비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여러 가지 ‘개념’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밤낮으로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은 ‘공감각적 심상’은 잊을 만하면 학교에 나오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외계어’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맞아, 이 양반들은 문항이 무얼 묻는지 이해하기도 쉽지 않겠어.”

“그럼요. 오엠알(OMR) 카드 기록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인데 당연하지요.”

 

2주에 한 번씩 나오는 학교, 거기서 하는 수업은 일상의 삶 속에 묻혀 다시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거의 사라져 버린다고 보는 게 맞다. 그나마 답을 제대로 쓰는 이들 가운데 20대 아이들이 몇 있는 것은 이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그리 낯설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런 가운데서도 한 반에 90점을 넘는 이들이 두엇 있다. 어디에 가도 층하가 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학급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개 평균 점수가 50점 위아래다. 그러나 그게 대순가. 얼른 찍어놓고 엎어져 버리는 젊은 친구와 달리 그래도 용쓰듯 시험을 치른 늙은 학생들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을.

 

시험을 마치고 한담을 나누면서 교사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을 상급학교 진학을 목표로 전투를 치르듯 공부하는 본교 아이들처럼 볼 필요는 없다. 비록 연간 25일 정도의 출석으로 한 학년을 수료하지만, 이들이 생업과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짬을 내어서 하는 이 공부는 그것 자체로 족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시간 우리 반 감독을 하면서 답안 카드를 내고 가도 좋다고 말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수고했다고 말했다. 선생님도 수고하셨다며 인사하고 돌아서는 우리 반 학생들,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은 말할 수 없이 따뜻해 보였다.

 

 

2012. 5.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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