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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21년, ‘퇴행’과 ‘반복’은 넘어서 가자

by 낮달2018 2021.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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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교육 중단참교육 지키기 전국교사대회

▲ 2010년 5월 16일 여의도에서 베풀어진 ‘무한경쟁 교육 중단! 참교육 지키기 전국교사대회’ 모습.

지난 일요일(16일), 여의도에서 ‘무한경쟁 교육 중단! 참교육 지키기 전국교사대회’가 열렸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모여든 1만여 교사들은 십수 년을 되풀이해 온 익숙한 집회를 치러냈다. 내 기억에 틀리지 않다면 그동안 이 ‘5월 교사대회’가 베풀어지지 않은 해는 한두 해밖에 없다.

 

법외노조이던 초기 교사대회는 이른바 ‘원천봉쇄’와 닭장차와 백골단을 피해서 마치 스파이 접선하듯 장소를 옮겨가며 열렸다. 학생운동이 살아 있던 시대였다. 교문 앞을 점령한 경찰 병력을 굳건히 막아준 이들은 제자였던 대학생들이었다.

 

최루탄과 원천봉쇄를 넘어서

 

학생들이 백골단 등 경찰들을 막고 있는 시간에 교사들은 여유 있게 학교 안에서 집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경찰이 학생들이 쌓은 방어벽을 뚫고 교내로 진입하는 상황도 있었다. 90년대의 어느 해였는데 경희대에서 열린 대회 끝 무렵에 교내로 난입한 경찰이 야외 강당 부근에 최루탄을 마구 퍼부어 하늘이 새카매졌던 걸 지금도 기억한다. 최루탄 연기에 갇혀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던 기억들도 새롭다.

 

더러 집회가 끝난 뒤 귀가하는 교사들을 무차별 연행한 사례도 있었다. 교사대회는 물론이고 대의원대회를 원천봉쇄 하려 해 성동격서의 방법으로 대회를 치러냈던 때도 적지 않았다. 모두가 법의 보호 바깥에 있어야 했던 법외노조 시절의 일이었다.

▲ 최루탄은 자유와 민주화 요구에 대한 군부의 야만적 대응이었다. ⓒ 유월항쟁계승사업회

1994년 복직 이후에는 더는 집회 자체가 원천봉쇄 되거나 집회에 최루탄 범벅이 되는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1999년 7월 1일부로 전교조가 합법 교원노조가 되면서 이른바 ‘불법 집회’ 딱지는 옛일이 되었다. 전교조는 합법노조로서 지위를 누리면서 그에 걸맞은 의무를 동시에 지게 된 것이다.

 

평화 시대의 조직을 탄압기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방어하기 위해서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구호로 뒤덮였던 비합법 시절의 집회와 달리 합법 시기의 집회는 느슨해지고 그 결속력도 무뎌졌다. 집회가 더 다양한 볼거리를 담은 형식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도 합법화 이후의 문화적 변모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10년, 다시금 죄어오는 권력의 탄압은 예사롭지 않다. 일제고사 반대 교사들을 쫓아내면서 시작된 중징계 처분은 시국선언을 주도한 간부들을 일괄 해임하기에 이르렀다. 그예 2010년 현재 정부는 전교조에 ‘규약시정 명령’을 내렸다.

 

규약 중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잘못’이니 이를 고치라는 게 정부의 요구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고 나아가 노조 설립 신고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으르면서. 정권의 속셈은 궁극적으로 전교조를 예전처럼 ‘법외노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조합 활동을 하다가 부득이하게 해직된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순리다. 그런데 이를 시정하라는 건 ‘전교조 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다름없다. 정부는 집요하게 이 요구를 관철하고자 한다. 공무원노조는 해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설립신고서가 반려되었다. 이 요구가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 투쟁과 구호 일변도에서 온갖 형식이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집회도 진화해 왔다 .
▲ 조전혁 지역구의 주민들이 대회장에 내건 현수막. 조전혁, 그는 밑천 찾기가 쉽지 않겠다.

‘전교조 탄압 삽질 그만!’

 

2101년 5월, 여의도에서 치른 전국교사대회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예년과 다르지 않게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집회 곳곳에서 참가자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10년, 20년 동안 변함없이 집회에서 만나는 낯익고 정겨운 이들의 얼굴에 드리운 주름살도 예년 같지 않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도 나이를 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세월은 어떤 뜻에서 우리 교단 변화의 역사다. 교육 관료들의 독선과 횡포 앞에서 무력하게 굴종했던 교사들이 그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참교육 운동의 출발이었다. 교원노조 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새로운 탄압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회 참가 교사들은 ‘전교조 탄압 삽질 그만’이라는 글자를 붙인 ‘삽’을 부지런히 놀리는 ‘삽질’로 탄압국면을 풍자했다. 거기에는 이 만만찮은 위기에 대응하는 교사들의 낙관적 전망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 ‘전교조 탄압 삽질 그만’은 정부의 탄압에 대한 교사들의 낙관적 전망이 담긴 유머러스한 대응이다 .
▲ 이번 집회에서 유독 소도구로 눈길을 끈 것은 ‘참교육 지키겠습니다’란 글귀가 쓰인 쥘부채였다.

‘퇴행’과 ‘반복’을 넘어서 가자!

 

한편, 대회에서는 ‘반부패-참교육 실천선언’이 결의되었다. ‘촌지와 청탁, 불법 찬조금’ 등 교육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구체적 운동을 전개하고, 소통하는 학교문화, 공동체 문화, 차별 없는 교육 등을 실천하겠다는 결의다.

 

1989년의 전교조 결성은 당시 교단에 만연한 온갖 교육모순에 대한 교사들의 대응이었다. 그리고 교육 주체들의 이 같은 몸부림에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다. 숱한 교사들이 교단 밖으로 추방되고 교단에는 침묵이 강제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전교조 21년, 다시 우리가 ‘반부패’를 소리 높여 외치게 된 것은 20여 년 전으로 퇴행한 교단에 대한 확인이다. 그때 ‘죽어가던 아이들’의 고통은 여전하고 교단에 드리운 것은 음산한 경쟁과 배제의 논리다. 그러나 ‘역사의 반복’은 넘어가야 한다.

 

‘학교를 희망의 배움터’로 만들어가자는 교사들의 결의는 21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효하다. ‘가르치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는 명제가 오히려 빛나는 퇴행의 시대지만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가벼이 이날을 넘어가자. 5월의 광장에서 교사들이 확인한 것은 결국 그것이었음에 틀림없다.

 

 

2010. 5.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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