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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점심 거르기

by 낮달2018 20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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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5 공교육 파탄정책 철회 단식 하는 위원장과 함께해 점심을 거르다

▲ 학교 내부통신망

일 년 365일 중 가장 어정쩡하고 민망한 날, 스승의 날이다. 예년 같으면 지역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교직원 체육대회 때문에 임시 휴무가 되겠지만, 올해는 정상 근무다. 아이들이 날을 챙겨주었다. 아침에 교실에 가니 불을 꺼 놓고 케이크에 불을 붙여 놓았다.

 

한바탕 스승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나는 바보처럼 미소를 깨물고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순간의 민망함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좀 무덤덤해져 있다. 아이들은 작은 꽃바구니 하나, 제각기 사연을 적은 종이 한 장, 속옷 한 벌을 전해 준다. 어젯밤에는 자정을 넘기면서 아이들의 문자가 연신 날아와 잠을 설치게 하였다. 2008년 스승의 날 풍경은 또 예년과 달라 보인다.

 

잊고 있었는데, 분회장이 오늘은 ‘점심 굶는 날’이라며 참여를 권유하는 쪽지를 보내왔다. 곧이곧대로인 우리 분회장은 자신은 굶겠다고 한다. 바로 ‘나도 굶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4·15 공교육 파탄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전 조합원 투쟁이다. 마땅히 분회의 결의를 통해 전체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늘 모든 게 모양을 갖추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원장은 단식 농성 19일째 탈진하여 후송되었다. 19일 단식은 내 상상력으로는 그릴 수조차 없다. 그러나 그게 자장면을 먹을까, 우동을 먹을까 하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오후에 세 시간이 스트레이트로 들어 있지만, 점심을 생략하기로 한다. 점심을 거르기로 작정한 교사들의 선택은 대체로 그런 소박한 정서 때문일 것이다.

 

 

2008. 5.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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