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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우열반으로 ‘학습효과를 높이자’고?

by 낮달2018 202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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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부쳐

▲ 김용민의 그림마당(4.17.) ⓒ 경향닷컴

언젠가 했던 얘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혁명이 따로 없다’. 새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정책의 ‘폭발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5일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학교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우열반 편성과 0교시·심야 보충수업 허용 등의 폭발성은 만만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사회적 논의’나 ‘예고’도 없이 불쑥 발표하는 형식 자체도 가히 혁명적이지 않은가.

 

“전 국민이 환영하고 좋아할 줄 알았다.”

 

“왜 그렇게 중요한 사항을 교사들과 논의 없이 발표했느냐”는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노조 관계자들의 질문에 대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답이다.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주무장관의 답변이 맞는가 의아스럽다.

 

어제 MBC 뉴스데스크에서 앵커와 한 김 장관의 대담도 마찬가지다. 나는 장관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최소한 주무장관으로서 정책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책을 갖고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이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나 버렸다.

▶ 앵커 : 어제 우열반 0교시 학교 자율화 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과 비평이 있었습니다. 경쟁이 필요하다는 데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이게 자율화 방안이 너무 정도가 지나친 것 아니냐 이런 비판이 나왔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이번 자유화 조치는 각 학교에 각 지역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각 학교에 많은 권한을 주어서 좀 더 각 학교들이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그런 체제를 갖추고자 하는 그런 노력입니다.

▶ 앵커 : 그런데 문제는 우반에 들어가는 학생은 행복하겠죠. 8, 90%에 이르는 열반에 들어가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정책은 전혀 언급이 돼 있지 않거든요.
▶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각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함으로써 좀 더 학습효과를 높이자 하는 것이고요.

▶ 앵커 : 또 한 가지 비판은요. 이렇게 되면 특목고에 가려고 할 거고, 그렇게 되면 우열반이 중학교 내지는 초등학교까지 자꾸 내려가는 게 아니냐 그러니까 지나친 경쟁이 아니냐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우리 사회가 이제는 그런 것을 잘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앵커 : 방과 후 수업에 교육 사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게 돼 있지 않습니까, 교육 사기업들이 학교로 들어오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죠?
▶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만약에 그분들이 더 교육을 잘하는 그런 상황이라면은 오히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우리의 공교육의 선생님들께서도 훨씬 더 좋은 교육을 해주실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측면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앵커 : 대입 본고사를 치르려는 학교에 대해서 제재 수단을 포기하겠다, 없애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대교협은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학교 본고사 만약에 하려고 하는 대학이 있다면 그건 가능한 겁니까?
▶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우리의 대학들도 이제는 그야말로 공공책무 이런 차원에서 그렇게 옛날과 같은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는 시행하지 않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앵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실질적으로 본고사를 치르려고 한다면 시정조치만으로 될까요?
▶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 거기에 어떤 특별한 제재를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 <imbc.com에서>

 

대담을 보고 의아했던 사람은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imbc의 댓글에는 ‘대담자가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드는 대화’라면서 ‘학원 강사를 학교로 영입하겠다는 인터뷰 내용은 공교육을 무시한 발언처럼 들렸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학교의 목표가 아님이 분명한데 … 차후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정책을 진행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KSA802)이라는 비판부터 노골적으로 이를 비난하는 내용 등이 눈에 띄었다. 그중 압권은 다음 댓글이었다.

 

“앵커의 질문에 ‘~짐작된다’, ‘~기대된다’로 답변하시는 교육과학부 장관님~

바쁘신 장관님께서 그런 답변을 하시려고 TV 출연하신 것은 아니시죠? 혹시 국민들에게 이번에 임명된 장관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출연하신 것인가요? 우매한 시청자는 방송수신 오류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장관님의 답변은 마치 부진 초등학생의 시험답안 같았습니다. 국민은 실망을 지나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요?” -imnews

▲ 한겨레 만평(장봉군). 4월 16일 ⓒ 인터넷한겨레

나는 이번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 가운데서 ‘우열반 편성’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 우열반 편성이란 과장해 말하자면 아이들을 학력 수준으로 분리하여 ‘제도적 문제아’로 양산해 내는 시스템이다. 1988년, 한 사립고등학교 열등반 담임으로서 1년 내내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했던 때를 나는 교직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과 상처로 기억하고 있다.

 

장관은 ‘8, 90%에 이르는 열반에 들어가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정책’을 묻는 앵커에게 ‘각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함으로써 좀 더 학습효과를 높이자 하는 것’이라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졸지에 점수 때문에 열반으로 내몰린 학생들은 ‘자기 수준에 알맞은 수업을 하게 되었다’고 기뻐하게 될까.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 우반에 들어가야겠다’며 이를 악물게 될까.

 

백번 양보하더라도 나는 교육이 가진 공공성의 기초는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교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한 사회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갈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는 권리와 의무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누려지는 가운데서 한 사회의 공동선으로 내면화될 터이다. 공교육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학생의 학력 등 개인적 기호와 취향, 학생의 사회적 계층과는 무관하게 평등하게 누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은 그런 공교육의 기초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든, 본인의 학습 능력이든 열등생들에 대한 교육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관점에서 철저하게 ‘교육적’으로 세워지고 집행되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학력이란, 한 인간의 총체적 능력의 지표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기준에 의한 분리와 차별이 결국 한 사회의 통합과 공공선에 대한 위험한 도발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교과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은 결국 지금까지 그나마 지켜왔던 교육의 공공성은 물론이거니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포기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이 계획이 자율과 경쟁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와 학교를 무한경쟁의 정글로 내팽개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 한겨레 만평(장봉군). 4월 17일 ⓒ 인터넷한겨레

0교시 수업을 하면서 ‘그나마 8시가 넘어서 하는 수업이니까……’라며 자위하고 문제 풀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로부터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변명으로 부끄러움을 달래는 무력한 ‘인문 고등학교’ 교사에게 이 4월은 참으로 ‘잔인하기’만 하다.

 

 

2008. 4.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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