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갑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 38.1% 득표, ‘예상 밖 선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무사히 끝났다. 일여다야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는 여당의 압승과 분열된 야당의 참패를 빚을 것이라고 예견되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과반수를 점하고 있던 여당은 제2당이 되었고 지리멸렬했던 제1야당은 제1당의 자리에 올랐다.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외친 신생정당은 호남을 석권했다.
아무리 죽을 쑤어도 집권 여당이 승리하는 그간의 선거 공식을 간단히 뒤집어 버린 이 결과 앞에서 패배한 정당은 당혹했고 승리한 정당들은 환호했다. 선거 결과가 전해주는 ‘민심’ 앞에서 모골이 송연했던 게 어찌 패자뿐이었을까. 20대 국회의 판도를 뒤엎어버린 이번 결과는 선거는 기본적으로 ‘심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환기해 준 것이다.
그간 우리 지역의 선거는 더 말할 게 없었다.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선거였고, 어떤 의외성도, 어떤 반전도 없는 뻔한 그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영남 보수의 ‘성골’ 경상북도에서 야당 의원이 당선된 것은 2000년 제16대 총선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올 선거에 그 ‘뻔한 판’에 뛰어든 낯선 후보가 있었다.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한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다. 맨날 여당이거나 여당 부스러기에 불과한 무소속 후보들이 나와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뻔한 선거판에 뛰어든 이 서른넷 여성 노동자가 하도 신기해 나는 그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기사로 썼다. [관련 기사 : 영남 ‘성골’ 유권자에게 뛰어든 서른넷 여성]
본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애당초 그가 승리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집권 여당의 본거지에 출사표를 낸 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집권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지역 유권자들에게 선택지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는 투표일 오후에 동네 초등학교에 가서 투표했다. 지역구 투표용지는 두 사람의 소속과 이름만 인쇄되어 있어 아주 단출했다. 지역의 유권자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겠다고 생각했다. 투표가 마감된 뒤 텔레비전의 선거방송을 시청하면서도 나는 지역구 투표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5번 후보는 몇 표나 받으려나…….”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나는 무심히, 그리고 아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무리 못 해도 만 표는 받을 거야. 지난 12대 구미시 을 선거구에선 통합진보당의 젊은 여성 후보도 1만 표를 넘게 받았거든. 득표율이 16%가 넘었어. 이번 갑 선거구도 유권자가 17만이 넘으니 그 정도는 받겠지…….”
남수정 후보가 구미시 갑 선거구에서 올린 득표율이 38.1%라는 걸 나는 오늘 낮에 <허핑턴포스트>를 읽다가 알았다. <허핑턴포스트>의 오늘 자 기사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표심이 나온 선거구 4’는 대구 달서구 갑 선거구에서 녹색당이 획득한 30.1%, 서울 강남구 을 선거구와 경기 분당구 갑 선거구에서 각각 54.5%, 47%의 득표율로 야당 최초로 당선한 사례를 남수정 후보의 사례와 함께 전하고 있었다.
남수정 후보의 낙선 인사 메시지가 온 게 그때였다. 남 후보는 그 낙선 인사에서 자신에 대한 40%(30, 934표)에 가까운 지지는 ‘새누리당 일당 독식, 부패정치, 경제 파탄에 대한 심판’이고 구미의 ‘새 정치에 대한 바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수고 많이 했습니다.
표 줄 곳이 없었던 유권자들의 소망을 안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푹 쉬고 다시 시작하시길…….”
답신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남 후보에게 전화를 넣어 서면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답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저녁 무렵에 그의 답이 전자우편으로 왔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 선거를 끝낸 소회는?
“정말 열심히 뛰었고, 구미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에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구미에서 큰 희망을 보았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 38.1% 득표는 예상한 결과인가, 예상 밖인가?
“기사로만 접하신 분들은 예상 밖의 선전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박근혜 정부 국방차관 출신 후보와 1:1로 맞붙었으니 모두가 안 될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거 기간 구미시민들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접 느꼈습니다. 이번 전체 총선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이제 TK도 예전 콘크리트 지지율이 아닙니다. 물론 경북은 여전히 전체 당선자 13명이 모두 새누리당이지만, 이번 저의 득표는 그 속에서 피어난 아주 큰 희망의 불씨라고 생각합니다.“”
- 38.1% 득표를 가능하게 한 ‘유권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제가 얻은 표는 1% 기득권이 아닌 99% 평범한 구미 시민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존 야권 성향의 유권자를 포함해 보수층들 또한 새 정치, 새 인물에 대한 투표를 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유권자 분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습니다. 30대 젊은 여성 비정규직 후보의 출마에 많은 관심을 주셨습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과 정책에 대한 의견들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여기에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40~50대의 투표까지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민중연합당은 정당 득표율이 원내 진입 기준인 3%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너무나 아쉽습니다. 민중연합당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많은 당원을 보유한 정당인데도 언론의 철저한 배제와 무관심 속에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 2월 창당한 정당으로 여전히 국민에게 대안으로 선택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 선거운동 기간 중 인상 깊은 일은?
“우선 저를 지지해 주시는 유권자 분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말씀은 한가지입니다. 찍을 후보가 없었는데 출마해줘서 고맙다. 새누리당 부패정치, 낡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줬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셨습니다.
어떤 연세 높은 어르신께서도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도 묻지 마로 1번 찍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40평생 투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어느 유권자. 이번에 저 때문에 생애 첫 투표를 하겠다는 분, 대학생이 되고 첫 투표를 저에게 하겠다는 대학생 등 시민들이 보여주신 애정 하나하나가 감동이었습니다.”
투표율 47.9%의 구미시 갑 선거구에선 61.9% 득표를 한 백승주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남수정 후보와의 표차는 19,358표. 그러나 무명의 여성 노동자가 국방차관 출신의 집권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이만한 성적을 낸 것은 놀랍다. 구미시 갑 선거구도 ‘예상하지 못한 표심’이 나온 것이다.
남수정 후보는 지금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많은 시민이 ‘구미에서도 희망을 보았다고, 이번에는 연습이라 생각하고 다음에 꼭 당선하자고 격려해 준다고 했다. 그는 아마 선거운동 기간에 만날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던 시민들의 격려를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곧 선거 때문에 휴직했던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기관’ 국회의원에 도전했던 민중연합당 후보에서 다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노동운동과 정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민주노조 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너무나 절박한 과제라고 여기는 이 서른넷 여성 노동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게 익숙하고 쓸쓸한 그림이 아니기를 바라며 나는 2020년의 선거를 상상해 본다. 구미공단의 11만 노동자들이 ‘찍을 후보’가 아니라 ‘당선’을 목표로 한 정치적 대변자를 갖게 되는 날을 말이다.
2016. 4.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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