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갑 선거구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를 찾아서
4·13 총선거가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천과정에서 유례없는 막장을 연출해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놓고선 정치권은 이제 바야흐로 표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처음엔 ‘일여다야’ 구도라더니 이제 일부 지역에서도 ‘다여’가 되면서 선거는 결과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지만 정작 유권자들이 선거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뻔한 구도로 이루어지는 선거, 결과야 ‘안 봐도 비디오’인 곳이 영남에 좀 많은가 말이다. 그중에서도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단 한 명의 야당 선량도 내지 못한 영남 보수의 ‘성골(聖骨)’ 경상북도의 경우, 선거는 요식절차와 다르지 않다.
40년 영남 진보 유권자의 사표(死票)
선거가 요식절차처럼 치러지기로는 호남도 비슷했지만 요즘 안철수의 신당이 파란을 일으키면서 그 동네도 이제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야당 후보 간 각축을 바라보는 호남의 유권자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아니면 두 선택지 가운데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까.
선거권을 갖게 된 이후, 총선은 물론이거니와 지방선거에서조차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는 ‘꼴’을 한 번도 못 본 영남의 유권자들은 무릇 ‘기하(幾何)’인가. 만 스무 살에 선거권을 얻은 이래, 지난 40년 동안 ‘야당’, 또는 소수 정당에 던진 내 표는 고스란히 사표(死票)가 되었다.
20여 년 가까이 살았던 안동과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도, 5년 전에 옮겨온 구미도 이 ‘영남 성골’의 정치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 내 표를 훔쳐 갈지 모른다는 오랜 의구심 때문에 투표장에 나가지만 정작 투표한다는 의미를 빼면 그것은 당장 유의미한 정치적 결과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기초의원부터 광역의원과 국회의원까지, 기초단체장에서 광역단체장까지 우리 지역의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은 새누리당 일색이다. 가물에 콩 나듯 무소속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초록은 동색’일 경우에 그칠 뿐이다. 하여 진보적 유권자들에겐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를 가지는 게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그래서 야권 성향의 진보적 지역 유권자들은 선거에 무관심하다. 선거란 항용 ‘그 나물에 그 밥’이 나와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거나 아니면 워낙 ‘강약이 부동’하여 게임이 되지 못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선거 분위기가 뜨고 있어도 이들이 무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18대와 19대 총선에서 구미의 두 지역구(갑·을)에서는 당연한 순서로 새누리당(또는 무소속으론 당선되어 새누리당 입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것도 최하 57.9%에서 최대 73.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경쟁이 치열했던 다른 지역의 당선자 득표율이 40~50%대에 그치는데 견주면 이 동네의 선거를 요식절차로 보는 것은 전혀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18·19대 당선자 표 참조]
구미시 갑 선거구에서 61.2%의 득표율로 당선된 심학봉(54) 후보는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다 결국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가 예의 혐의로 검경의 수사를 받을 때 지역에선 ‘창피해서 구미 산다는 얘기도 못하겠다’라는 등의 개탄이 무성했다. 야권 성향의 시민들은 ‘그러게, 막대기라도 꽂으면 되는 동넨데…….’ 하고 말끝을 흐렸었다. 성폭행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 전직 의원은 지금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중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시내 곳곳에서 명함을 돌리고 있을 때도 내가 그걸 뜨악하게만 바라보았던 것도 그런저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어느 네거리를 지나다가 아니 잠깐, 나는 정색을 하고 창밖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네거리 보도에서 한 여성 후보자가 홀로 알림판을 들고 지나는 차량을 향해서 허리를 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호를 받아 좌회전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기호가 5번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엔 우연히 혼자서 명함을 돌리고 있던 그 여성 후보를 만나서 잠깐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전 국방차관과 대결하게 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그가 구미시 갑에 출마한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다. 그제야 나는 우리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갑을 선거구 모두 입후보자는 단 두 명뿐이다. 읍면 쪽의 구미시 을 선거구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의 장석춘(58) 후보와 현직인 3선의 김태환(72) 의원의 맞대결이다. 김태환 후보는 공천에서 탈락한 데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내가 사는 구미시 갑 선거구는 새누리당의 백승주(55) 전 국방부 차관에 맞서 남수정(34) 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북지부 사무처장이 나왔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이다. 남수정 후보는 얼마 전 창당한 민중연합당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 현직 교무 행정사다. 을 선거구가 한집안 싸움이라면 갑 선거구는 승패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맞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을 듯했다. [후보자 명부 참조]
민중연합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념과 정강·정책을 주장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한 표의 의미를 고민하는 유권자라면 비정규직 노동자 후보가 이야기하는 ‘99% 희망’을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겉만 무소속이지 보수 정당 후보와 다르지 않은 이들이 도토리 키 재기 하듯 나선 상황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어제 6일 아침 나는 구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낸 선거공보를 받았다. 그걸 채 읽을 겨를도 없이 나는 시청 앞에 있다는 남수정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들렀다. 그 전날, 나는 선거 사무장과 통화에서 남 후보와의 만남을 약속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과 현 집권 여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의 본산인 구미에서 압도적 여당에 도전한 이 젊은 후보가 궁금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 강고한 보수의 성채를 공략할 것인지도 궁금했다. 아니 그보단 지역 주민들이 그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빌딩 6층의, 좀 썰렁한 선거사무소에서 나는 그와 20여 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 후보는 경북 경산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교무 행정사다. 아울러 전국 4만, 경북 1800여 조합원의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의 간부다.
“‘40년 독식’을 끝내야 합니다”
그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나왔고 졸업 뒤에는 급식실 노동자로, 교무실에서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선거 기간에는 무급 전임 형식으로 학교를 비우고 있다. 1800명 노조의 간부인데도 전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경북도교육청과의 교섭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남수정 후보는 대학 학생회장 출신답게 시원시원하게 속내를 밝혀주었다. 다음은 간략하게 정리한 그와의 대화다.
- 선거운동을 해 보니 어때요?
“대체로 공천과정의 밥그릇 싸움을 지켜보면서 실망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반발한 부분도 있고 기본적으로 정치적 불신이 커서 그런지 야권후보라고 반색을 해주세요. 젊고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고요. 신생정당이어서 인지도는 낮지만ㅎ 구미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반겨주세요.”
- 해산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시민들이 민중연합당도 비슷하게 보지 않는지….
“일부 그런 분도 있긴 해요. 그러나 민중연합당은 새로운 시도의 정당이에요. 비정규직 노동자당, 농민당, 청년 흙수저당, 엄마당 등이 모인 연합조직이지요. 이번 선거에는 모두 지역구 56명과 비례 4명 등 60명의 후보가 등록했습니다. 특히 전략적으로 배치한 청년 후보 중심이죠. 흙수저당을 만든 청년이 창당의 주역인 셈이니까요. 평균 연령이 30대 중후반인데 제가 거기에 딱 부합하는 후보지요.”
- 선거 전 상대인 새누리당 백승주 후보는 유세 과정에서 더러 만나나요? 그쪽에선 남 후보를 적수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예, 며칠 전에도 상모동에서 만났어요. 백 후보는 박근혜 정부의 국방차관 출신으로 ‘힘 있는 정치’를 부르짖는데요. 그게 시민들에게 얼마나 와닿을까 하는 문제는 실제 선거가 끝나봐야 알겠지요.”
- 시민들의 반응은요?
“생각보다 무척 좋습니다.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하다, 구미에서도 여당도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퇴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을 갖고 계세요. 다녀보면 인물도 참신하고 정책도 좋다고 하면서도, 그런데 실현 가능하느냐면서 의문을 품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러나 바뀔 수 있다, 바꿔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지요. 지난 40년 동안 여당이 모든 선출직을 독식한 상황을 봐라. 현재의 경제 파탄에 대한 심판도 필요하다고…….”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구미을 선거구에 야권 단일후보로 나온 통합진보당의 이지애 후보는 스물아홉 살의 여성 노동자였다. 그는 사내 하청 노동자, 학원 비정규 강사 등으로 일한 ‘88만 원 세대’의 표상이었다. 그이는 선거에서 1만898표를 얻어 16.5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구미 공단의 일부를 포함한 을 선거구인데도 그랬다.
남수정, ‘묻지 마 지지’와 패배주의와도 싸워야 한다
2016년, 서른네 살 남수정 후보의 도전은 어떨까. 지난 4년 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고, 진보정당의 입지는 한층 더 위축되었다. 그런데도 용감하게 선거전에 뛰어든 이 청년 후보의 용기를 다시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공약이나 선거의 승패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는 조직세를 가진 새누리당의 경우는 어떻게든 지지자들이 투표하는데 문제는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라고 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거나,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 유권자를 어떻게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는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자 선거사무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과 중년 부인이 관심을 두어서 고맙다며 배웅해 주었다. 사무소를 나오자 길 건너편 안전지대에 남수정 후보의 선거운동 차량이 주차해 있었다. 트럭 옆면, ‘야권대표 젊은 진보’ 구호 옆에서 남수정 후보는 팔짱을 끼고 곱게 웃고 있었다.
오는 4월 13일, 구미 갑 선거구의 유권자들은 투표소로 갈 것이다. 새누리당 지지자는 1번 백승주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고 새누리당에 대한 견제와 심판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유권자들은 5번 남수정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물론 투표를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야권 분열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200석에 가까운 거대 야당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록 자기 표가 ‘사표(死票)’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변화의 단초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2016년 4월, 청년 남수정의 도전은 일견 힘겹기만 하다. 그는 상대 후보가 아니라, 이 지역에 만연한 특정 정당과 권력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싸워야 하고, 정치가 아무것도 바꿔주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패배주의와도 싸워야 한다. 그는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도 같다. 그러나 성경에서 다윗은 승리자가 되지만, 그가 승리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그는 회의하는 자신과도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사표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빚어내는 변화의 실마리들은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전으로 이어질 터이다. 역사 발전이란 희망과 용기로부터 움튼 작은 변화의 집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향이 반드시 같지 않더라도 표를 던질 후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선거일이 며칠이나 남았느냐를 가늠해 보며 나는 선거공보를 펼쳐본다.
2016. 4.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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