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
환자에게 의사 선택권이 있는가. 형식적으로만 보면 답은 ‘있다’이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혹은 그 방면의 전문가인지에 대한 정보를 기초로 환자들은 의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이 나라 안에 숱한 대학병원, 종합병원에 있는 ‘특진’은 그 선택의 최종 도착지다. 진료는 불과 몇 분에 그치지만 환자는 예의 대단한 명의를 만났다는 것으로도 상당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특진료는 그 ‘위안’에 대해 지급하는 돈이기도 하다.
일반진료보다 훨씬 비싼 진료비를 물면서 환자들이 특진에 집착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명의를 통하여 자기 신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대부분 환자가 주변의 의사들에게서 그런 확신을 얻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요즘 의사를 우째 믿노? 제사보단 제삿밥이 우선인 게 의사 아니야?”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의사의 관심이 치료에 있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얻어지는 수익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병원에 갔다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검사 권유를 받고 찝찝해한 경험이 있다. 애매하게 ‘만약 ~한다면’과 같은 가정의 방식으로 고가의 검사를 받지 않으면 병인(病因)을 찾지 못하거나 더 위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 앞에서 그것을 거부할 환자는 많지 않은 것이다.
‘환자의 의사’, ‘믿거나 못 믿거나’
매사를 늘 의심의 눈초리로 흘겨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내겐 의사에 대한 믿음이 그리 단단하지 않다. 정작 쥐꼬리만큼의 의학상식도 없이 진료를 받는 환자에 불과한데도 의사를 볼 때마다 과연 이 이는 얼마나 알고 진료를 하는 걸까 하는 회의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풍월로 얻어들은 항생제 과용은 엔간한 의사라면 모두 해당하는 사안이니 항생제를 많이 쓰는 의사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처방전에 약을 한가득 채워주는 의사에게도 믿음이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진료는 건성으로 해치우면서 연상의 환자에게 반말지거리하는 젊은 의사를 바라보는 건 일종의 고역이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요즘은 의사들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의사가 예전처럼 권위를 부리거나 불친절하면 망하기 딱 좋다는 것을 개업의들은 너무 잘 아는 것이다. 그런데 친절이란 게 수준이 여럿 있는 것이어서 모든 친절이 다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친절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본능적으로 깨우치는데 어른들이야 물어 무엇하랴. 굳이 친절을 가장하지 않으면서도 환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눈높이를 낮추어 접근하려는 의사에게 환자들은 믿음을 갖게 된다. 의사의 경력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자세는 환자와의 공감의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
주로 감기 따위의 소소한 질환으로 병원을 다닌 내가 괜찮은 의사로 생각한 이는 지금껏 두 사람 정도다. 한 사람은 50대 중반의 내과 전문의인데 그에게서 내시경 검사를 받으면서 나는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오랜 경험에서 온 만만찮은 식견을 매우 쉬운 말로 설명해 주면서 궁금해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었을 뿐 아니라 가외의 검사가 필요치 않다고 잘라 주었다.
또 한 사람은 꽤 오랫동안 단골로 다니던 병원의 40대 가정의학의다. 그는 기본적으로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아버지였는데 그가 그걸 의식해서 내게 친절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상담하고 환자의 염려와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그의 노력에 점수를 주었다.
이 지역으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부득이 새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인근의 소아과를 거쳐 한 일 년쯤 다닌 병원은 내과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동안의 40대 의사는 비교적 친절한 편이었고 진료도 성실히 하는 것 같았다.
혈압약을 타러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하니 내외가 같이 병원에 가는 경우가 잦다. 나는 안동의 의사가 써준 의견서대로 예전에 먹던 약을 달아 먹게 되었는데 아내의 경우는 약을 바꾼 모양이었다. 그 약이 몸에 맞지 않다고 느낀 아내가 여러 차례 약을 바꾸어 달라고 하는데도 의사는 약효가 같다며 이를 무시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아내를 달랬지만 어느 날의 진료를 마치고 우리 내외는 그 병원에 발을 끊었다. 안동에서도 그랬듯 우리는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가면 두 달 치 처방전을 받곤 했다. 특별한 신체적 변화가 없는 이상, 두 달에 한 번 진료를 받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한 것이었고, 의사도 그걸 용인해 주었다.
그날도 두 달 치 약을 탈 수 있도록 요구하자, 의사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자기의 원칙은 한 달이라고 했다. 대학병원의 경우는 석 달까지 허용하지만 그건 예외다. 내가 장기간 복용하는 약이고 특별한 변화가 없는 이상 두 달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느냐고 하자, 그는 “그럼 나는 뭐 하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잠깐 의사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그건 마치 당신이 왜 진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내 수익을 방해하느냐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너무 천박하게 느껴졌다. 고혈압·당뇨 환자가 1차 의료기관(의원)을 이용할 때 본인 부담금을 20%로 할인해 주는 만성 질환 관리제도가 시행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는 내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생명과 수익’ 사이
굳어지는 내 모습에 생각이 바뀌었던지 일단, 이번에는 하면서 그는 두 달 치 처방전을 써 주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그의 병원을 다시 찾지 않았다.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서 간 곳이 좀 더 멀리 있는 내과의원이다. 세 명의 젊은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인데, 환자들이 기다리지 않고 이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거기서는 요구대로 두 달 치 약을 탈 수 있었고, 약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아내의 호소에 의사는 비슷한 다른 약을 처방해 주었고 약을 바꾼 뒤 아내는 이전의 증상이 없어졌다며 매우 만족해했다. 만성질환관리제를 적용해 달라고 했더니 당연하다면서 두 번째 내원 때부터는 할인된 진료비를 받았다. 젊은 의사들은 친절했고, 진료도 꼼꼼히 해 주었다. 우리는 옮긴 병원에 만족했다.
이번에 목감기에 걸리면서 다시 병원을 세 차례나 드나들었다. 감기인데 굳이 주치의를 따질 필요가 있나 싶어서 시간이 비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세 번 다 다른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았다. 한 병원이니 당연히 진료기록을 공유할 터이지만, 세 사람에게 조금씩 다른 증상을 이야기하고 처방을 받는 기분은 썩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3주 차로 접어드는 이번 주까지도 이놈의 감기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기야 감기 바이러스에 무슨 특효약이 있을까, 시간이 지나야 증상이 가라앉으면서 낫는 거라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감기가 길어지자, 슬슬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세 번 병원에 갔는데 갈 때마다 의사가 갈리나. 진료기록을 공유한다면 마땅히 최소한의 호전은 있어야지, 어떻게 갔다 올 때마다 증상이 달라져. 처음엔 목감기였는데, 이내 코감기로, 그리곤 이제 기침까지 늘어지니 말이야…….
그러나 어쨌든 이는 내 선택권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였다. 굳이 내가 주치의에게 치료받기를 원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에게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기인데, 굳이 주치의를 찾을 일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 것이니 결과적으로 그것은 내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 버스에서 내리다 자동문에 끼여 한쪽 다리를 다친 장모님의 경우는 좀 다르다. 괜찮다 싶어서 귀가했는데 다친 부위에 멍이 들고 심한 통증을 느껴 노인은 인근 소읍의 정형외과에 입원했다. 좋은 의사를 찾아서 간 게 아니라 인근에 있으니 찾은 병원이었다.
아내는 일찌감치 의사에게 환자가 심장병 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이 의사는 그것을 유념치 않았다. 닷새를 입원했는데 멍은 심해지고 부기도 빠지지 않은데다 통증이 극심해지자, 아내가 의사에게 조치를 요구했고 의사는 인근 도시의 종합병원으로 옮기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래도 의사는 ‘갑’이다
구미의 종합병원에 와서야 우리는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처 부위가 낫지 않은 것은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심장약 때문이었다. 그 약은 피를 묽게 해 혈액의 응고를 방지하는 것이었는데, 다친 부위에 실핏줄이 터지면서 이 혈액이 응고되지 않으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다친 부위의 살이 괴사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급히 중환자실로 모셔서 집중 치료를 한 결과 이제 고비를 넘겼고 회복만 남았다. 갑갑한 병실에서 투병을 견뎌내던 장모님은 어제 아침 회진에서 담당 의사가 한 말에 잔뜩 맘이 상하셨다.
수련의들을 이끌고 병실에 들어온 담당 의사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아주 불친절하게 80 고령의 환자들에게 막말을 해댄 모양이었다. 불만을 표한 한 환자에게는 싫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하는가 하면, 장모님께는 ‘다리가 썩지는 않았다’며 튕기고 나갔다는 것이다.
“무슨 의사라는 사람이 남의 다리 보고 썩는다는 게 뭐야.”
예의 의사는 다른 병원은커녕 이 병실을 지키는 것도 겨운 80 노인들을 향해 자신이 가진 권위와 힘을 양껏 자랑한 셈일까. 나는 이야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이른바 종합병원의 의사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개업의가 그런 식의 망발을 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결국 종합병원의 의사는 환자 앞에서도 ‘갑’이다. 정작 돈을 주고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는 처지지만 환자는 생사 여탈권을 쥔 의사라는 전문직 앞에서는 ‘을’의 지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위야 어떻든 환자는 의사의 의술로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목숨을 건지기도 한다. 운수 나쁘면 목숨을 잃는 때도 없지 않지만.
그쯤 되면 친절이나 성실한 진료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살아났고, 나았으니까. 그래서 의사는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도 의술에 따라 구제받는 것이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은데도 여전히 의사가 존경받는 전문직의 지위를 유지하는 까닭은 그들의 업무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저녁에 마지막 약을 먹었다. 세 번에 걸쳐 병원을 다녀와 타온 약이 10일분, 이제 더는 병원에 가는 건 그렇다. 나머지는 내 몸의 치유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지난 열흘 간 먹은 약이 그동안 내 몸에 살아 있던 바이러스를 잔뜩 약화하였으리라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2013. 4.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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