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자격, 자격증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3월 전국의 초중고 가운데 최소한 두 개 학교는 ‘교장 없는 상태’로 새 학년도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모 교장 임용 후보자 가운데 내부형을 통해 평교사가 교장으로 뽑힌 학교의 교장 임용제청을 거부한 까닭이다. 이 불운한 학교는 서울의 영림중학교와 강원도 춘천시의 호반초등학교다.
전국 공모 교장 임용후보자는 모두 377명. 이 가운데 99.47%는 이른바 ‘교장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고, 평교사는 고작 0.53%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평교사에 대한 임용제청을 교과부가 거부한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긴 하지만, 이들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의 교사라는 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교과부의 교장 임용제청 거부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 시절,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만드는 데 산파 구실을 한 이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이 장관이 ‘원칙과 소신’을 버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청와대 교육과학 문화 수석 시절에 이 제도와 관련, ‘무자격 교장을 양산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반발로 청와대에서 물러났다.
‘무자격 교장’의 양산? 여기서 말하는 ‘자격’이 교총 소속의 교장들이 가진 ‘교장 자격증’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번에 임용제청을 거부당한 두 분의 평교사는 ‘해당 사항 없음’이 맞다. 그들은 진작 승진과는 무관한 평교사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니, 근무평정을 잘 받고, 각종 연구 실적을 올려서 교감이 되고 교장 연수를 받은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자격증 미소지자가 교장 임용후보자로 뽑힌 것은 “과열된 승진 경쟁을 완화하고 교장 자격증을 가지지 아니한 교원이라도 학교 운영에 능력이 있는 자가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당해 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교장공모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취지의 이 제도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도 도입의 주역이었던 이주호 장관이 임용제청을 거부한 것뿐 아니라 아예 ‘평교사도 교장임용’ 폐지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교과부가 ‘내부형 공모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내용의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여러 가지 퇴행이 다반사이긴 하지만, 내부형 공모제의 폐지 역시 만만찮은 퇴행이다. 교장공모제는 각종 승진점수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기존 교장승진제도의 폐쇄성을 극복하고자 도입된 제도다. 자격증은 없지만 젊고 유능한 교사들에게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을 터준 이 제도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
‘자격’은 이른바 ‘쯩’으로 대표되는 ‘형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교의 운영자로서 교장이 가져야 할 자격과 덕성은 물론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지도력’을 갖춘 교장을 만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동료를 만나 같이 근무하는 것은 아름다운 아이들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축복된 일이다. 좋은 동료에는 존경할 만한 교육계 선배인 교장도 포함된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지도력을 갖춘 교장과 함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함께 고민하는 교사들이 뜻밖에 아주 많은 까닭은 여기 있다.
‘교장공모제’, 이주호 장관이 주도한 제도
동료들에게 최소한 ‘좋은 교장’과 만나서 근무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열에 일여덟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런 교장이 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저쪽은 씁쓸하고 공허하다. 교육적이기는커녕 상식적이지도 못한 교장의 전횡과 독단과 맞서 다투어 본 전교조 활동가들의 얘기는 대하소설을 쓰고도 남는다.
내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근무한 학교는 모두 7개교다. 어쩌다 보니 그 가운데서 다섯 개 학교에서 교장의 정년퇴임을 지켜보았다. 정년퇴임이란 교원들에겐 교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마감하는 마지막 의례다. 30년이든 40년이든 그가 바친 세월에 대해 후배들은 경의를 바치는 게 마땅하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손톱만 한 경의도 표시할 수 없었다. 면종복배, 겉으로야 수십 년 경력을 치하하고 공치사를 챙기지만, 교사들은 대부분은 ‘속 시원하다’라거나 ‘잘 먹고 잘살겠네’와 같은 야유와 비난을 보내기 일쑤다.
무능하더라도 최소한 청렴하고 민주적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교사들의 자율을 믿고 최소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덜 ‘해로울 것’이라고 교사들은 생각한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들은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다. 퇴임 교장 두 사람은 퇴임식 날 응당 자신이 치러야 할 점심값조차 행정실에 떠넘기고 떠났다. 몇 만원씩 갹출해서 퇴임 선물을 전해 준 교사들의 허탈만이 남았다.
길거리에서 재회해도 그들은 ‘인사도 하고 싶지 않은 인물’로 전락한다. 그럴 때, ‘수십 년 몸 바친 교단’, ‘교육 발전에 이바지’ 같은 수사들은 공허해진다. 후배 교사들로부터 마음으로 배웅받지 못하고 떠나간 교장들의 뒷모습은 추하고 가엾다. 그런 후배들의 평가 앞에 그들이 몸 바친 수십 년 세월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통령이 수여한 훈장이 무슨 대수일까.
보직교사나 만만한 여교사를 괴롭히는 게 다인 교장부터, 재직기간 내내 예산을 쓰고 새로운 예산을 타오는 데 골몰하는 교장(예산과 이들의 상관관계는 상상해 보시라)은 또 얼마인가. 틈만 나면 출장을 달고 학교 출장비 예산의 대부분을 소비하는데 진력하는 교장은 얼만가.
잘 단장한 교장실에 두문불출하면서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과 일 년 내내 대화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교장, 학교장 재량으로 맡겨진 결정도 이웃 학교와 상의하지 않으면 내리지 못하는 새가슴 교장부터 ‘소신’이 아니라 ‘체면’과 ‘위신’으로만 학교를 운영하려는 교장들로 학교는 숨이 막힌다.
스스로 교육적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교장’직이란 허울 좋은 마름일 뿐이라는 선배 교사의 말씀은 백번 맞다. 교과부 장관에서부터 도 교육청 교육감, 시군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거쳐 단위학교장에게 이어지는 이 수직 명령체계에 길든 교장들은 교육자라기보다는 ‘말단 관료’에 가깝다.
민주적, 합리적 지도력의 교장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개중에도 두드러지진 않으나 소신 있는 ‘괜찮은 교장’이 드물게 있다. 무엇보다 교장이 청렴하다는 것도 교사들이 서슴없이 접어주는 만만찮은 품성이다. 이른바 ‘판공비’를 자기가 쓰지 않고 교사들이나 학생을 위해서 내놓는 이, 회식 때마다 자비를 흔쾌히 내놓는 사람은 워낙 드물다 보니 이들 앞에 교사들은 납작 엎드린다. 교사들은 청렴을 능력보다 더 귀중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 같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합리적 결정을 내리되 교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 내는 교장과 근무했던 3년이 내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시골인데도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고, 업무처리의 오류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오히려 이를 격려했던 교장이었다.
지난 연말에 그이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사 대여섯 명이 퇴임한 그이를 청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 모임 소식을 들은 후배 교사가 그랬다. 그분에겐 매우 뜻깊은 만남이 되었겠다고, 평교사들이 마음으로 퇴임한 교장을 모시는 일이 어디 흔한가 보냐고…….
교과부의 교장 임명제청 거부에 대해 서울시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은 서울 영림중, 강원 호반초 교장직에 대한 내부형 교장공모 절차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두 교육청은 기존 공모 방식처럼 평교사와 교장 자격증 소지자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교장 임용방식을 다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애당초 절차의 문제를 들어 거부한 만큼 새로 공모 절차에 흠이 없으면 받아들일 것이라 한다. 그러나 교과부가 여당과의 협의를 거쳐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이번 2월 임시국회의 중점추진법안으로 선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니 ‘공모제’의 명운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인가.
새삼스레 ‘자격’ 유무를 돌아보는 마음은 씁쓸하다. 형식이 아니라 마땅히 내용이어야 할 자리가 마치 기득권처럼 이해되는 현실도 그렇고, 교과부가 거듭하는 ‘퇴행’도 그렇다. 언제쯤 우리는 민주적이고 합리적 지도력으로 떠받쳐지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와 성숙한 시민정신을 가르칠 수 있을까.
2011. 2.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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