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학년도 방송통신고 졸업에 부침
지난 17일로 방송통신고등학교의 2012학년도가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3학년 3반의 서른한 명 늦깎이 학생인 당신들의 감격스러운 졸업과 함께 말입니다. 사흘 전에 치러진 본교 졸업식 때와는 달리 저는 오랜만에 정장을 갖추어 입었습니다. 반드시 졸업반 담임이어서는 아니라 무언가 정중하게 이 의식 앞에 서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에겐 그렇고 그런 한 해에 그칠지 모르지만 당신들에게 지난 삼년의 의미는 매우 각별했을 터입니다. 그 삼년은 이 나라의 고교생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요. 그러나 당신들에게 지난 세 해는 단순히 햇수로만 따질 수 있는 날은 결코 아니었지요.
이 ‘졸업’의 의미
한 해라고 해도 등교해야 하는 날은, 하루 7시간의 수업이 기다리고 있는 25번의 일요일에 불과합니다. 연간 200일이 넘는 수업에 방학까지 반납해야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아이들이 ‘애걔걔’ 소리를 연발할 만하지요. 그러나 그 한 해 한 해를 등교해야 할 25번의 일요일로, 그 하루하루를 이수해야 할 7시간의 수업만으로 매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때론 생업을 제쳐두고, 보살펴야 할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챙긴 ‘출석’이었지요. 반드시 살펴야 할 집안일이나 이웃 경조사를 미뤄두고 찍은 ‘등교’였습니다. 일요일이란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 기독인들에게만 바쁜 날은 아닙니다. 생활인에게는 이웃과 집안의 경조사, 미뤄두었던 나들이를 몰아 치르는 아주 ‘요긴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젊은 선생님’들과 함께 한 공부도 만만치 않았었지요. 저는 문학 수업을 하면서 가끔씩 늦깎이 학생들의 표정을 살피곤 했습니다. ‘소설의 시점’, ‘문학과 매체’ 따위를 강의하다 보면 무언가 방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신들을 어렵잖게 만나곤 했습니다.
학생들은 짧으면 20년, 길면 30여 년 만에 교과서를 펼치고 있는 늦깎이 만학도들입니다. 그들에게 제가 되뇌고 있는 문학 이론들이란 ‘외계의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문학 수업을 삶과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살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잡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당신들이 지나온 삼 년의 의미를 교사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형식이야 ‘사제 간’이었습니만, 우리는 한 시대의 애환을 함께하는 동시대인이었지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배우는 것이 교단이니 삶의 곡절들을 온몸으로 겪은 당신들을 함께한 수업임에랴! 하여 교사들은 가르치면서 배우는, ‘사제동행(師弟同行)’의 의미를 새삼 새길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11일 만난 서른여섯 명 가운데 둘은 다른 학교로 전출했고, 셋은 출석 미달로 제적되었습니다. 제적된 친구들은 젊음을 구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 젊은이들이었지요. 젊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 앞에선 어떤 설득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잊지 못할 ‘사제동행’
어쩌면 방송고는 늦깎이로 공부를 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를 아는 장년의 학생들로 그 존재의 의미를 다하는 곳일지 모르겠습니다. 담임교사인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종상, 규항, 봉순 씨에게 이 졸업의 의미는 남달랐으리라고 믿는 까닭도 거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3년 개근상을 탄 봉순, 귀숙 씨에겐 각별한 축하의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학교의 성격상 학생들에게 출석을 강제하고 결석에 대한 벌칙을 부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1년 개근도 손꼽을 정도라는 건 방송고에서 ‘개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는 사례지요. 귀숙 씨는 ‘수위상’까지 거머쥐었으니 그 기쁨이 갑절이 되었겠지요.
우리 반의 시니어(senior) 그룹을 이룬 순옥, 하은, 해숙, 경숙, 은숙, 순애, 애경 씨의 도움이 반을 이끌어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갖가지 반찬으로 점심 식사 준비를 해 주고,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을 감싸 안아 주신 이들이지요. 이분들이야말로 ‘나이는 공으로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가르쳐 준 ‘어른’들이었습니다.
준철, 석구 씨 등 40대 초반의 장년들이 위의 시니어 그룹을 받쳐 준 일꾼들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교실 청소를 도맡아 해 준 준철 씨, 아파서 오랜 결석 끝에 학교에 나와 성실하고 겸허한 태도를 보여준 석구 씨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늘 과묵하게 자리를 지켜준 유경 씨, 생업을 겸하면서도 졸업장을 받게 된 태수, 윤규, 경민, 민구 씨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반의 주니어(junior) 그룹을 형성했던 석진, 진희, 지영, 근철, 유현, 나래, 창윤, 용진, 상연, 원백, 유정에게도 축하 인사를 빼놓을 수 없네요. 특히 하루 차이로 출석 미달을 넘기고 졸업을 ‘쟁취’한 친구들에게는 더욱 더.
그 ‘인내와 용기’에 보내는 박수
서투른 축하의 인사로 당신들이 닿은 졸업의 의미를 좁히거나 줄이지 않겠습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격주 일요일마다 등굣길에 나서고, 쉬 삭일 수 없었던 지식의 목록들 앞에서 당신들이 다스려야 했던 회의와 눈물, 혹은 희망과 절망의 순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여러분들이 달려온 3년의 시간에 서린 인내와 용기에 대한 치하를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작별의 인사만이 남았습니다.
이랑 많이 일굴수록 쟁기날은 빛나고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난다.
땀 흘려 일구어 빛나는 ‘쟁기날’이 되고
쉼 없이 흘러 큰 ‘바다’를 만나라.”
이 글귀는 꽤 오랫동안 제가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건넸던 작별의 인사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러분께는 이 작별사를 쓸 수 없네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미 ‘빛나는 쟁기날’이며 흐르고 흘러 벌써 ‘바다를 만나’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이 땀 흘려 일구어 온 이랑, 그 숱한 시간의 ‘누적’이 곧 이 나라 ‘현대사’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만나고 있는 바다는 제게도 지척이네요. 고단하고 긴 항해의 한때를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학생에서 다시 우리 사회의 ‘시니어’로 돌아가는 여러분들의 당당한 뒷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제 우리는 헤어지지만 뜻하지 않은 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때엔 ‘사제’로서가 아니라 정겨운 벗으로, 좋은 이웃으로 재회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함께하는 삶’ 속에서 늘 강건하시길 빕니다.
2013. 2. 22. 낮달
* 이 글은 학생들의 졸업 문집 <반딧불> 26호에 실은 글을 고쳐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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