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의 폐해는 여전하다
1등부터 꼴찌까지…, 일제고사 성적 공개
교과부에서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및 기초학력 미달 학생 해소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과 180개 지역교육청의 성적을 모두 공개한 이래 그 파장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학력 격차는 ‘도시·농촌의 차이, 대도시 안에서도 학교가 있는 지역적 특성과 구조적으로 연결’(이윤미 홍익대 교수)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변변찮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 해소 방안이 아니라 평가 결과로 드러나는 서열에 주목한다. 말도 많던 이 제도의 시행과 맞서서 교육적 양심으로 아이들을 지키려다가 부당징계에 희생된 열두 명 교사들의 존재는 이미 희미하게 잊히고 있다. 서울 세화여중의 김영승 교사가 파면당한 것은 이 발표 이틀 전이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과 180개 지역교육청은 이제 1등부터 180등까지 한 줄로 서야 한다. ‘서열화는 없다’라던 교과부의 식언을 믿은 사람은 없겠지만, 이 조치의 불똥은 앞으로 우리 교육 전반에 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교과부의 보도자료 제목대로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 만들기’를 위해 교육청과 교육 관료들은 일선 현장의 교사들의 고삐를 죄게 될 게고, 아이들은 결국 무한경쟁 속에 내던져진 꼴이 될 수밖에 없다. 벌써 많은 시도교육청이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학교 관리자들의 승진·전보·연수·성과급 지급 등과 연계하고 교사에게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애당초 평가 결과 공개를 반대한 교육 전문가와 시·도교육청 학업성취도 평가 담당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교과부의 눈에는 ‘교장의 리더십’과 ‘교사의 열정’만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얼씨구나 이 장단에 맞춘 보수언론들이 앞다투어 내는 성공 사례도 다분히 개인적 열정이나 지도력에 따라 학력이 좌우된다는 비과학적 예단에 기울어 있다.
남 이야기하듯 하였지만 이후 일제고사와 관련한 학교 풍경은 ‘안 봐도 비디오’ 수준으로 떠오른다. 일제고사와 관련된 기억은 유쾌하지 않다. 그야말로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은 이후 교육활동에 참고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현실은 성적에 따른 서열화와 비교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교사들을 옥죄는 족쇄가 되었다.
지금껏 일제고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이나 시도 성취도 평가는 일제고사 형태로 치러진 것이다. 다른 시도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경북의 경우에는 도 학력평가에 대비한 ‘시군 학력고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 있었다. 시군 안에서 도토리 키 재기식의 학교 간 성적 비교로 이용되던 이 학력고사는 95년 무렵에 교원들의 폐지 요구가 거세지면서 그 명운을 다했다.
시군 교육청에서 교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폐해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학교 간 비교 자료로 이용되다 보니 학교장들은 교사들을 몰아세웠고, 교사들은 늘 이 일제고사 준비에 밤을 새웠다. 자연히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용인하는 형식으로 감독이 이루어지고, 채점도 교사의 재량에 따라 고무줄 점수가 되기도 했다.
아무도 그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고, 대부분 양심에 따라 감독을 하고, 엄격하게 채점하였던 교사들은 뒤처진 성적 때문에 다시 곤욕을 치러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시절 전설처럼 떠돌던 갖가지 성적 올리기의 비방들은 차마 낯부끄러워 제대로 기술할 수 없다.
교장·교감 전보로 막을 내린 ‘일제고사 1등’
1994년도에 내가 경북 북부지역의 어느 시골 중학교로 복직했을 때의 일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니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년을 앞둔 학교 교무부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일제고사 관련 전설(?)’의 압권이다.
내가 복직한 학교는 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면 단위의 중학교였다. 그 몇 해 전 일이다. 도 학력고사가 치러졌다. 그 당시에는 학력고사 성적에 대한 불신이 하도 커서 다른 학교 교사들로 교체해 시험 감독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당연히 그 학교에도 다른 학교 교사들이 와서 시험을 감독했다. 이들은 읍내의 사립학교 교사들이었다.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학이다 보니 아마 감독을 맞바꾸면서 교사들 간에 감독을 느슨히 하자는 묵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형식으로 부정행위가 이루어졌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하여간,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행위가 있었고, 뚜껑을 여니 이 조그만 시골 학교가 경북 도내 최고 성적을 낸 것이다. 객관적인 채점의 결과이니 이를 무를 수도 없었다는 데 도 교육청의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해 9월에는 이 학교가 도 시범학교로서 학교 공개를 해야 할 처지였다. 당연히 도내 중학교에서 교장·교감이나 교사들이 참석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도내 학력고사 1등의 비결을 물어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도 교육청이 낸 꾀가 교장·교감의 전보였다.
그해 2학기 인사에서 교장, 교감은 다른 학교로 전보되었다. 상황을 전혀 모르는 교장과 교감이 부임한 상태에서 시범학교 공개가 이루어졌다. 우려했던 난감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에요?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그 교무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누구는 일제고사 성적 제고의 공으로 교감으로 승진했고, 누구는 아이를 이 잡듯 매로 잡아서 목표한 성적을 냈고, 점수를 깎아 먹는 성적 낮은 아이는 결석을 시키고, 공부 잘하는 아이 옆에 못 하는 아이 앉히기,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사인펜으로 답을 표기하게 하고 주변 아이들의 커닝을 교사(?)하기 등등 ‘일제고사 관련 비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교과부의 이번 발표는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비인간적 무한경쟁과 몰개성, 성적 지상주의 교육이 시작된다는 것인데, 이는 가장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몰아넣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일제고사 성적 공개는 ‘반교육적 폭력’이라는 일갈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전에는 부정행위를 방조, 또는 교사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조작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도 쉽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성적에도 들어가지 않는 일제고사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교과부 장관은 학력 차가 고교 평준화 탓이라고 했지만, 중고교로 가면서 학력 미달 학생이 늘어난 것은 하향평준화가 아닌 ‘일제고사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과 다양한 거부 행동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견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다.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는 있지만, 일제고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전히 전임 정부의 교육정책을 적대시하면서 영미에서 이미 실패한 이 정책을 ‘개혁’으로 이해하는 이 정권 관계자들은 소통을 거부할 뿐 아니라, 소통할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교육 주체들의 단결과 고민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다. 이 제도가 아이들의 삶과 교육을 어떻게 훼손하고 망가뜨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등생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아이의 올바른 학습권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09. 2. 18.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교단(1984~2016)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장의 ‘자격’을 생각한다 (0) | 2021.02.23 |
---|---|
‘시니어’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당신들에게 (2) | 2021.02.22 |
2007학년도를 마치며 (0) | 2021.02.17 |
과정을 넘어 새로워지는 당신들에게- 방송통신고 ‘졸업’에 부쳐 (0) | 2021.02.14 |
2월, 이별의 계절 (2) | 2021.02.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