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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2007학년도를 마치며

by 낮달2018 2021.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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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학년도, 2학년 5반과도 이별이다

▲ 여자아이들이니까 이런 것도 만든다. 여학교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잔정 같은 것.

지난 14일의 졸업식에 이어 이튿날 2007학년도 종업식을 끝으로 학교는 마지막 방학에 들어갔다. 한 해 동안 썼던 사물함을 비우고 아이들은 별관 교사로 옮아가야 한다. 요즘이야 졸업식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 학년을 마치면서 아이들과 작별하는 것은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은 심상한 일이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지도를 잘 따라 주었고, 자율적으로 학급을 꾸려온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다. 저희를 따라서 3학년으로 가지 않는 이유도 밝혔다. 내겐 익숙하고 미련이 남는 아이들이지만 해를 거듭해 같은 교사에게 배워야 할 일은 없는 것이다. 새로운 교사로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한 경험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 전전 날에는 쓰지 않고 남겨 두었던 학급운영비 등을 모아서 피자와 튀김 파티를 벌였다. 나중에는 어떤 내숭을 떨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정말 왕성하게, 그리고 즐겁게 먹어댔다. 반장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는데, 아이들이 한 장씩 쓴 편지를 묶은 책이었다.

 

짤막한 편지에는 아이들이 나와 함께 한 지난 한 해의 느낌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문학 시간에 졸았던 걸 고백하고, 4월의 제주도 수학여행을, 그리고 신시장에서 먹었던 안동찜닭을 추억했다.

▲ 수학여행. 성산포에서(2007년 4월)
▲ 수학여행. 항몽유적지의 유채밭에서. (2007년 4월)
▲ 안동찜닭
▲ 찜닭을 먹기 위한 학급 나들이. 안동 신시장에서. (2007년 7월)

내가 숱하게 가르쳤던 아이들의 일부로 그들을 바라보듯이 아이들은 성장의 길목에서 만났던 한 교사로 나를 기억할 것이다. 일 년을 같이 지냈다 하나 따로 애틋하게 정리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나는 어느 아이가 지적했듯 아이들을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들이 자기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단지 ‘조력자’로서 자신을 매기고 있었던 까닭이다.

 

▲ 이 물건을 나는 얼마 동안이나 보관하게 될까.

아이들은 일 년 내내 공부에 시달렸으면서도 여전히 싱싱하고 발랄하다. 3월이 되면 아이들은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으로 무한경쟁 속에 진입해야 한다. 이 땅의 고교생들이 피해갈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연민 없이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훈화를 마쳤더니 야무진 우리 반장이 일어나 차려, 경례 구령을 붙였다. 지난해 3월 첫 만남에서 나눈 이후 이런 격식의 인사는 처음이다. 아이들은 원기 왕성하게 마지막 인사를 외쳤다. 나는 교무실로 돌아와 교무 업무시스템에 접속해 마지막 출결사항을 정리했다.

 

그것으로 지난 한 해 동안의 내 아이들 농사는 끝난 셈이다. 복도를 분주하게 오가는 아이들의 소란을 한쪽 귀로 흘리며 나는 3월에 내가 새로 맞이할 아이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렜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아이들이 떠난 빈 교실. 언제 찍은 사진인지는 모르겠다.

 

2008. 2.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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