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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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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말 잇기 놀이’의 기억

by 낮달2018 2021.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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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말 잇기 놀이' 노래

▲ 말 잇기 노래도 민담이나 수수께끼, 동요처럼 구비 전승되는 구비문학이다.

주변에 ‘아이들’이 없다. 손주를 볼 나이는 이미 지났건만 서른 넘긴 지 오랜 아이들은 기다리는 소식을 전해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친구와 ‘환갑 진갑 넘기고도 사위나 며느리 못 본 위인은 우리뿐’이라며 웃고 마는 것은 그래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 뒤편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마치 음악처럼 듣고 즐긴다. 아내가 개라도 한 마리 기르자고 성화를 부리는 것은 ‘정 줄 곳’이 없어서일 것이다.

 

‘말 잇기 노래’, ‘원숭이 똥구멍’과 ‘저 건너 영감 나무하러 가세’

 

설날 아침, 세배하는 아이들 정수리를 바라보면서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올핸 좋은 소식 전해 줄 거지?”라고 묻는 것은 기실 자신에게 하는 일종의 최면이다. 올해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될 거라는.

 

주변에 아이들이 없으니 아이들이 요즘 무얼 하고 노는지도 물론 모른다. 막연하게나마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놀 거라고 상상할 뿐이다.

 

설날 아침에 문득 할머니께서 일러주던 말잇기 놀이를 떠올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요새 아이들도 말 잇기 놀이를 하긴 하겠지? 그건 어떤 내용일까. 우리가 어릴 적에 부른 말 잇기 놀이는 ‘원숭이 똥구멍’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원숭이 똥구멍을 빨개 /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다 / 맛있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다 /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빠르다 /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다 / 높은 것은 백두산

♬ 백두산 벋어내려 반도 삼천리~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돈데, 마지막에는 ‘백두산’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우리는 그 놀이를 마감하곤 했다. 우리는 그 놀이를 하면서도 정작 거기 등장하는 ‘원숭이’를 보지도 ‘바나나’를 먹어보지도 못했다.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놀이는 알 듯 말 듯한 사투리가 섞여 있어 나는 어른들은 어떻게 저런 재미없는 놀이를 할까 보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그 놀이의 기억은 이상한 여운으로 되살아난다. 거기 쓰인 사투리가 더는 어렵지 않아지면서다.

 

저 건너 영감 나무하러 가세
등 굽어 못 가네 / 등 굽으면 질매가지
질매가지는 네 구멍이니 / 네 구멍은 동시리
동시리는 검으니 / 검으면 까마귀
까마귀는 너푸니 / 너푸면 무당
무당은 두드리니 / 두드리면 대정
대정은 찝으니 / 찝으면 게
게는 구멍에 드니 / 구멍에 들면 뱀
뱀은 무니 / 무는 것은 범
범은 뛰니 / 뛰면 벼룩 /
벼룩은 붉으니 / 붉으면 대추
대추는 다니 / 달면 엿
엿은 붙으니 / 붙으면 첩!

▲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

‘질매가지’는 ‘길마’를 이른다.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는 나무로 만드는데 우리 지역에선 ‘질매’에다 ‘가지’까지 붙여서 썼다. 길마에는 두 개의 굽은 가지를 잇는 구멍이 넷이다.

 

동시리는 ‘동시루’다. 동시루는 ‘옹달시루(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 작고 오목한 질그릇)’의 사투리다. 표준어 규정에서 ‘동시루’를 버리고 ‘옹달시루’를 표준어로 삼은 결과다. 떡시루라면 흔히 봤지만 동시루가 어떤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 떡시루. 동시리는 작은 떡시루라고 한다.

‘너푸다’는 ‘너풀거리며 날다’의 뜻의 동사로 표준어는 ‘퍼득이다’라고 <고향 말 여행>에서 설명하고 있다. ‘거창, 울산’ 지역의 방언이라는데 내 고향인 경북 칠곡에서도 쓰는 말이다.

 

‘대정’은 ‘대장장이’를 이른다. ‘찝다’는 ‘아래에서 주워 올리거나 손으로 잡아서 들다’는 뜻인 ‘집다’의 비표준어다. 요즘은 자주 말뜻도 헛갈리고 뭐가 표준언지 사투린지도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지금도 새로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놀이의 끝말은 ‘첩’으로 끝난다. 글쎄, 아이들이 즐긴 놀이라기에는 다분히 삐딱한 풍자가 담겨 있다. 이른바 둘째 부인이라는 첩에 대한 일반의 반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비슷한 놀이가 다른 지방에서도 불리는데 ‘영감’이 ‘김 도령’으로 바뀌거나 마지막 대목이 ‘붙으면 과거지 / 과거면 좋지’로 끝나는 경우가 다르다.

 

아이들은 말놀이로 ‘말을 배운다’

 

일찍이 구전 민요를 채록했던 김소운의 책 <조선구전민요집>(제일서방, 1933)에 실린 경북 경산의 놀이도 칠곡의 말놀이 노래와 거의 같다.

 

<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말 잇기가 주가 되는 말놀이들은 노래처럼 전해진다.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한 이 노래에는 지역의 사투리가 섞여 있다. “말놀이는 각 나라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기반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 조상은 말놀이를 하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후대에 전했고, 아이들은 말놀이를 배우면서 말을 배울 뿐만 아니라 재미와 즐거움을 얻었다.”라고 했다.

 

이러한 말놀이가 반드시 가지고 놀 노리개가 부족해서 발달한 것으로만 볼 수는 없겠다. 그러나 온갖 장난감은 물론, 컴퓨터와 게임기, 스마트폰 등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요사이에 입으로만 노는 이 말놀이의 효용이 반감된 것만은 분명하다.

 

‘저 건너 영감 나무하러 가세’로 시작되는 고향의 말 잇기 노래를 부르면서 지난 세기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선친,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언제쯤 손주들에게 저 이전 세기의 말 잇기 노래를 불러줄 수 있을까.

 

 

2018. 2.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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