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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과 이시우, 그리고 국가보안법

by 낮달2018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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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 교사, 평화운동가를 옭아매는 국가보안법

▲ 김형근 교사 석방을 촉구하는 대책위원회 집회 ⓒ 전교조 전북지부 누리집

지난 1월 29일 오랜 기간 통일 교육에 헌신해 온 한 현직 중등학교 교사가 구속되었다. 그는 ‘남다른 열정과 창의적인 방법으로 평화통일과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수업과 활동을 벌여온 김형근(군산동고등학교) 교사다. 그의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이틀 후인 1월 31일, 법원은 작년 6월 구속기소되었다가, 같은 해 9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아온 사진작가 이시우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 역시 <민통선 평화 기행> 등의 책을 통해서 통일운동의 저변을 넓혀온 이다.

 

▲ 김형근 교사 ⓒ 추광규

두 사람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이틀 간격으로 구속과 무죄선고가 이어져 무슨 배턴 터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을 구속하는 대신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의자 한 사람을 무죄로 방면한 듯한 모양샌데, 이는 어쩌면 이 땅에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현 정권에 의해 ‘박물관으로 가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규정되기도 했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이 땅의 수구·보수·냉전 세력의 존재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제도다. 그것은 어쩌면 이 땅의 분단 상황이 낳은 안보 상황에 기생해 온,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적·반민족적 욕망의 제도적 표현은 아닐까.

 

분단 상황이 지난 반세기 동안 재생산해 온 전쟁의 가능성에 기대어 온 불신과 냉전의 패러다임은 남북의 정상에 의해 합의된 6·15 선언과 10·4선언과 같은 명시적 원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부나 그 수반에 의해 수행되어 온 일련의 통일을 위한 정책과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합의와는 별도로 존재한다.

 

국가보안법, 그 비상식과 반 상식의 논리

 

분단의 극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끊임없는 모색이 이루어지는 한편에서 여전히 그에 반하는 냉전적 사고와 인식에 바탕을 둔 국가보안법은 규제하고 가두고 억압할 대상을 찾고 있다. 1월 말과 2월 초에 이틀 간격으로 벌어진 이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2008년, 한반도의 남쪽에서 이루어지는 분단 현실의 미니어처인 셈이다.

 

그간의 논의 과정을 통해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되긴 했지만, 분단 현실에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질곡의 자리를 벗지 못한다. 이시우 씨와 김형근 교사의 혐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가보안법이 어떤 방식으로 일반의 상식을 뒤엎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 이시우 ⓒ 이시우 누리집

국가보안법은 사진작가인 이시우 씨가 민통선 지역과 미군 기지를 촬영·메모·스케치한 사실과 이를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것을 ‘군사상 기밀 수집·누설’ 행위로 규정한다. 그가 국정원에서 대출받아 갖고 있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청년운동 령도사”는 ‘이적 표현물’로 둔갑한다. 이러한 전도된 인식은 그 자체로 반 상식이다.

 

상식은 법원에 의해 정리된다. 법원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것이나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지 않은 장소에서 촬영한 것은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라고 밝히고 “일부 사진은 군사기밀에 해당하지만, 평화운동을 위해 정보를 수집한 것이고 북한을 지원할 목적이 없어 무죄”라고 판결한 것이다.

 

사진작가로서 사진 작업 등을 통해 통일운동에 이바지해 온 이시우 작가를 기소한 것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통일과 평화를 위한 활동에 대한 보복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원은 무죄 판결로 그의 평화운동을 ‘보호’했다. 민예총이 이 무죄 판결을 ‘상식의 회복’이라고 논평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상식에 바탕을 둔 법원의 무죄 판결 저편에 또 하나의 몰상식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그 이틀 전에 이루어진 김형근 교사에 대한 구속은 조사가 시작된 지 9개월여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검찰이 정권교체기를 틈타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신호탄’(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전교조 성명)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모든 통일 교육 교사는 범법자들인가

 

김형근 교사에 대한 혐의도 상식적이지 않다. 검찰은 그가 재직했던 전북 임실 관촌중의 학생들이 벌인 ‘반전 버튼 달기 운동’을 구속 사유로 내세우면서, ‘북녘 학생들에게 편지쓰기’가 국가보안법상 선전·선동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실에서 통일 교육을 시행하는 모든 교사를 국가보안법을 위반자로 가르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다.

 

공영방송 KBS가 바람직한 통일 교육의 현장으로 보도하기도 한 이 시골중학교의 통일 교육과 활동을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앞서 말한 비상식·몰상식의 극치다. 아이들이 편지쓰기의 형식을 통해 남북의 동질성을 이해·확인하고 통일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아가는 과정은 상찬의 대상이지 악법의 올가미로 마름질할 일은 아니다.

 

또, 검찰은 전북통일교사모임, 청소년 통일동아리, 통일산악회 등 자발적 통일 단체의 활동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규정한다. 검찰은 전북통일교사모임이 전교조와 교총 등 교원단체 구분 없이 수백 명의 현직 교사가 참여하고 있고, 그 결성식에서 전북 교육감이 축사로 격려한 합법 단체라는 사실 앞에서는 눈을 감는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와 전교조에서는 무엇보다 검찰이 ‘6·15 공동선언’ 등을 북의 ‘대남 통일전선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경악하고 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10·4 선언’에 서명한 현직 대통령조차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구속되어야 하고, ‘6·15 민족공동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보수·진보를 망라한 모든 단체의 구성원도 불법의 사슬을 면할 수 없다.

▲ 전교조는 통일교육과 북한돕기 등으로 민족 화해와 평화를 가르쳐 왔다. ⓒ 전교조

국가보안법은 이처럼 반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선에서 국가의 정책 목표나 수반의 통치와는 전혀 다른 차별적 논리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줄타기를 교묘한 방식으로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보수 언론들의 ‘안보 상업주의’다.

 

애당초 김형근 교사의 통일 교육 활동을 사상 공세로 제기한 것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2006년 12월에 전교조 교사의 인솔로 학생들이 ‘빨치산 추모제’에 참석했다고 보도하면서 사회면 주요 기사로 배치하고 사설로도 이를 다루었다.

 

그들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전교조 교사가 관련된 일은 필시 사상 문제가 개입되었으리라는 예단을 했음 직하다. 그러나 정작 ‘빨치산 추모제’는 ‘남녘 통일열사 추모문화제’였고, 학생들은 다른 일정으로 회문산에 갔다가 우연히 그 행사에 참석했다는 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일보> 보도 1년 전의 일이었다.

 

김형근 교사는 자신에게 지워진 혐의들을 일관되게 부인하면서 자신의 통일 교육이 자신의 양심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통일 교육은 분단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분단 시대의 교사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한 결의를 밝힌다.

 

“교육부에서 검증된 통일 교과서의 교과에 따라 통일 교육을 진행한 것이 적을 이롭게 한 행위라면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6·15 정신으로 항상 당당하게 통일을 가르쳐 왔습니다. 저를 탄압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 이 시대 교육자들의 인권과 양심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오마이뉴스> 추광규 기자의 기사에서 재인용)

▲ 백령도. 국가보안법은 사람 사이에 현존하는 철조망 같은 것이다. ⓒ 이시우 누리집

국가보안법, 냉전논리의 단순 재생산 기제

 

국가보안법은 분단 조국이 가진 모든 고민의 정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존하는 모든 비상식과 수구 냉전논리를 안정적으로 단순 재생산하는 사상적 기제다. 그것은 단순히 통일운동을 탄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위협하는 폭력으로서도 기능한다.

 

이시우 씨는 무죄 판결 후에 “국가보안법은 너무 무섭고 두려운 법임을 확인했다”라고 한다. 그는 또 “우리 사회가 가진 거대한 관성의 구조와 체계를 고민해야겠다”고 했다. 그것은 작가에게 법률적·제도적 금기를 통해 ‘자기 검열’을 강요한다. 평화운동가 이시우를 두렵게 하고, 통일 교사 김형근을 가둔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절대 건강하지 않다.

 

김형근 교사는 감옥이 아니라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야 할 악법이 아니라 건강한 상식이다. 분단의 극복은 힘과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화해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통일 교육의 교훈이다.

 

구속 상태에서 수십 일간 단식으로 투쟁했고, 석방 이후에도 삼보일배로 싸워온 투사 이시우가 두려웠던 것과 같은 이유로 나도 두렵고 무섭다. 블로그에 시답잖은 글 하나를 쓰면서도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에서 곤혹스러워해야 하는 나라는 불행하다. 거기 사는 국민도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2008. 2.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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