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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손 없는 날’과 ‘택일’

by 낮달2018 202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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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없는 날’을 찾아 택일하는 민속 신앙

▲'손 없는 날'에는 이사 수요가 몰려 서비스가 부실해지기도 한다.ⓒ한국민속신앙사전

지난 설날에 장모님을 뵈러 처가에 들렀다. 안방 벽에 걸린 지역 농협에서 나누어 준 커다란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림도 없이 글자만 커다랗게 박힌 재미없는 달력에 아주 친절하게 ‘손 없는 날’ 표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협 달력

이사할 때마다 가끔은 들었던 얘기다. 굳이 ‘손 없는 날’을 선택하면 비용이 훨씬 더 드는 데다가 예약이 차 있어 날을 받기조차 어렵다는 얘기 말이다. 정작 사람들은 무심하게 시간 내기가 적당한 토요일을 선택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손 없는 날과 겹치기도 한다.

 

이제 그런 민속도 쇠퇴해 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그걸 따지는 사람들도 적지만은 않다. 농협에서 아예 달력을 만들 때 ‘손 없는 날’을 박아서 만든 건 말하자면 그런 이들을 위한 배려인 셈이다. 21세기 문명 시대에도 ‘손 없는 날’과 ‘방위’를 가려 큰일(이삿날, 혼례일 등)을 수행하는 민속은 연면히 살아 있는 것이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 따르면 ‘손’의 정의는 ‘방위와 날을 따라다니면서 인간생활에 영향을 주는 귀신’이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손이 ‘손(損, 덜다)’에서 온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손님’에서 온 말로 보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손’은 ‘금기’의 날

 

여기서 ‘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손님을 공경하고 접대하는 일의 두려움’과 관련된다. ‘손’은 피해를 주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무속, 민간, 설화 등에서 그 부정적 흔적을 적잖이 남기고 있다. 혼삿날을 잡거나 집안의 신주를 모실 때 그 방위를 가려 손 없는 날이나 방위에 모시는 건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손은 일정한 ‘금기의 날’을 가리킨다. 민간에서는 이를 ‘손 없는 날’로 널리 부르며 당연히 ‘손 있는 날’은 꺼리는 형식으로 지켜진다. 이는 예전에는 혼인을 비롯하여 여러 영역에서 꽤 까다롭게 지켜졌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이삿날을 정할 때 쓰인다. 이삿짐센터 등에서 ‘손 없는 날’을 고객에 대한 서비스 형식으로 내걸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우리 민속에서 ‘손’은 날짜에 따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귀신인 ‘손님’을 이른다. 이 손은 음력으로 1일과 2일은 동쪽, 3일과 4일은 남쪽, 5일과 6일은 서쪽, 7일과 8일은 북쪽에 있다가 나머지 이틀간(9일과 10일)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11일이 되면 손은 다시 땅에 내려와 동쪽에 나타나는 등 10일 간격으로 돌아다닌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이 손으로부터 안전한 날은 9일과 10일, 이틀뿐이다. 매달 중순의 19일과 20일, 하순의 29일과 30일이 손 없는 날이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사람들은 금기를 어기면 재앙을 당한다고 믿어온 손 있는 날과 방위를 피해 이사 따위의 큰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음력 9일, 10일에 이사 고객들이 몰리는 데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수요가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이날의 비용은 평일 비용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사 비용이 상승하는 대신 업체 쪽에서 보자면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이사 서비스나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사업체 등에서 ‘손 없는 날’을 ‘(일)손 없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 '손 없는 날'이 표시된 달력 . 매달 9, 10, 19, 20, 29. 30 일 등이 손 없는 날이다 .

손 없는 날을 가려서 이사하는 이 민속은 자연스럽게 ‘택일(擇日)’ 풍속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택일’은 “행사에 앞서 피흉추길(避凶諏吉 :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에 나아감. 사전에서는 ‘諏’ 대신 ‘달릴 趨’‘’를 쓰기도 한다.)의 한 방법으로 음양오행 원리와 육갑 신살법 등에 따라 좋은 날을 가리고 나쁜 날을 피하는 일련의 행위”로 정의된다.

 

‘피흉추길’의 방법, ‘택일(擇日)’

 

인생의 중대사일수록 사람들은 신중하게 행하려고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떨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피흉추길의 한 방법으로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좋은 날을 고르고 나쁜 날을 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사용해 왔다. 이게 바로 ‘날받이’, 즉 택일인 것이다.

 

택일의 동기는 “좋은 날에 행해지는 일은 그날의 좋은 기운을 받아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좋은 결과는 더 크게 하고 나쁜 결과는 작게 하려는 조처로 길흉의 날을 가려 일을 행하려는 사람들의 믿음은 인류의 보편적 인식인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은 그런 믿음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고, 사람들은 택일과 그 결과가 인과적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이 민속적 금기와 믿음의 사유체계는 이제 ‘손 없는 날’의 형식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길흉화복을 나타내는 점복·주술·금기·무속 문화엔 인간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길흉화복에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의 길흉을 가리는 택일 풍속에는 한국인 고유의 신앙심과 인식구조가 꾸밈없이 함축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도 민간에서 널리 행하는 택일 풍속에 장담그기가 있다. 이는 한 가정의 한 해 식생활을 좌우하는 게 장 담그기니만큼 좋은 날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터이다. 그 밖의 택일 풍속은 대체로 혼인과 이사 택일이 가장 성행하고 다음으로 개업과 출산 택일이 중요시되고 있다.

 

택일 풍속과 사회의 ‘변화’

 

건축 택일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낮아진 것과 출산 택일이 중요시되는 현상은 아파트라는 기성·공동 주택문화의 확산, 한두 자녀만 낳아 잘 키우려는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된 변화다. 출산 택일을 위해 제왕절개 시술을 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이 첨단의 의학 기술로 민간의 길흉화복을 따르려는 부조화는 마치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슬픈 은유처럼 보인다.

 

장례 택일은 1990년대 이후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면서 3일 장으로 보편화하는 추세다. 혼인 택일도 생활주기가 1주일인 현대인들은 역학상의 길일보다 하객들이 편하게 많이 참석할 수 있는 공휴일을 선호하게 되면서 차츰 사라지고 있다. 삶과 사회의 변화가 택일 문화 자체도 바꾸어가고 있는 셈이다.

 

달력에 ‘손 없는 날’ 표시가 필요한 이들이 농촌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골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손 없는 날’을 가리는 이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길흉을 가려서 일을 행하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나빠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손 없는 날’을 가려서 이사하려는 이들이 반드시 이런 민속적 금기에 민감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굳이 택일을 믿어서가 아니라 좋은 게 좋으니까’라는 보험 심리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이왕 가는 이사, 그것이 본인이 받아들여야 할 이후의 삶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면 그걸 ‘전근대적 미신’이라며 비난할 수만은 없을 터이다.

 

‘손 없는 날’을 찾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달력을 참고하여 자신들에게 편리한 날짜를 선택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들에게 이 오래된 민속을 따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수요가 몰리는 ‘손 없는 날’이 초래하는 ‘서비스의 부실’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은 순전히 그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15. 2.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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