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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조영남, 그리고 2009년 한국

by 낮달2018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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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가수 조영남의 ‘전비어천가’

▲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  imbc.com

이른바 ‘엔터테이너(entertainer)’가 주목받는 시대다. 단순히 ‘(흥을 돋우는) 연예인’ 정도로 번역되던 엔터테이너가 노래와 연기, 유머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복합 연예인’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면서 연예인의 ‘영역’을 따지는 게 우스꽝스런 시대가 되었다.

 

어떤 여자 아나운서가 연예인 못지않은 ‘끼’를 보여줘 본업 대신 ‘개그맨’으로 알려졌다는 얘기가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요즘 연예계는 ‘영역의 경계’가 무뎌지는 추세다. 주말의 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활동 영역을 물어보면 아이들조차 머리를 갸웃하는 이도 더러 있을 정도다.

 

▲ 가수 조영남

그러니 코미디언이나 배우, 가수가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MC)로 활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MBC ‘싱글벙글 쇼’를 21년째 진행하고 있는 강석과 김혜영은 그 좋은 본보기다.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은 그간 한 번도 구설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범 진행자로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이미 ‘구문(舊聞)’이 된 이야기다. ‘MBC 라디오 시대’의 진행자 가수 조영남이 미네르바 관련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고, 결국 본인이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발언을 아내를 통해 전해 들었다.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면서 그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라디오 시대’ 남자 진행자는 늘 문제네. 이종환에 이어 두 번째잖아.

 

우리 세대가 조영남을 만난 건 사춘기 때였다. 70년대 초반에 그는 톰 존스(Thomas Jones)의 ‘프라우드 메리’를 번안한 ‘물레방아 인생’을 불렀다. 그 노래는 원곡의 인기에 힘입어 꽤 불리었던 것 같다. 뚜렷하게 히트한 노래도 몇 곡 없으면서도 조영남이 수십 년 동안 가수로서 대중을 사랑을 받아온 것은 아마 그의 가창력 덕분인 듯하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남의 노래를 부르는 게 자연스레 느껴지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그에게 자기 노래가 많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고, 분위기에 맞추어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능력도 그를 오래도록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한 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Caterina valente

나는 그의 노래 중에서 ‘옛 생각’이란 노래를 한동안 자주 불렀고, 멕시코 민요를 번안한 ‘제비(La Golondrina)도 내 애창곡 목록에 들어간다. 글쎄,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그는 내가 선호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독특한 음색도 그렇거니와 남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임의로 한 소절을 비틀어 부르는 여유도 말하자면 그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80년대 초반, 신군부 집권기였다. 그때, KBS TV에 ‘100분 쇼’라는 주말 가요 쇼 프로그램이 있었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진행했는데, 다분히 관제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러나 스스로는 가장 권위 있는 쇼라는 자부심을 은근히 풍기는 프로그램이었다.

 

조영남은 프로그램 끝에 나타나 특유의 제스처로 노래하더니 정색을 하고 대충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시작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낸 분이 있다. 그분을 위해서 이 노래를 바친다.”

 

그가 특유의 폼을 잡으며 부른 노래는 가곡 ‘선구자’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전두환에 대한 헌사였다. 나는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그렇게 나는 좋아했던 대중가수 한 사람을 잃었다.

 

그의 노래 ‘선구자’는 누구를 위해 바쳤나

 

작곡자의 친일 여부로 시비가 일기도 했지만, 가곡 ‘선구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를 기리는 노래다. 그의 발언과 노래는 결국 만주에서의 풍찬노숙의 주인공들과 무고한 시민을 죽음을 딛고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를 등치한 셈이 되었다.

▲ 1980년대에 KBS에서 방영한 '100분쇼'

하도 황당해서 멀거니 TV 화면을 멀거니 보고 있는데 반전은 또 한 번 일어났다. 특유의 몸짓으로 노래를 하면서 객석까지 내려온 그가 객석의 어떤 할머니를 붙들고 수작을 건넸다.

 

“할머니, 제가 누군지 아세요?”
“알지. 알다마다.”
“누군데요?”
“조용필!”

 

뜻밖의 반전을 노련하게 너털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걸 보고 나는 채널을 돌렸던 것 같다. 대중가수에게 어떤 정치적 입장을 기대하거나 요구할 일은 없다. 굳이 나쁜 뜻에서가 아니라, 그들은 ‘광대’이며,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게 그들의 소임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을 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면 스스로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는 광대이기를 거부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때는 1980년대 초반, 방송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신군부의 공포정치가 횡행하던 때니 연예인들의 운신이 그리 자유롭지 않았던 때임은 분명하다. 어떤 탤런트는 용모가 최고 권력자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전두환 집권 기간 내내 TV 출연이 금지되기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날 ‘100분쇼’ 발언의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그건 당사자들만이 아는 일이다. 그러나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중가수에게 특정한 정치적 발언까지 주문하는 상황이라고까지 보기는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는 추측일 뿐이다.

 

그가 제작진의 주문에 따른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런 찬사를 뱉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가 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스스로 예술인에서 광대로 자신을 매기는 일인 까닭이다. 비록 대중 연예인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권력의 요구나 강제에 따라 움직여야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대선에 특정 후보 지지를 공공연히 밝힐 만큼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하는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공인으로서 연예계 종사자들의 발언은 자제와 겸허의 미덕을 요구한다. 누군가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방송에서 그런 의견을 공적으로 밝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 자연인으로서 조영남의 정치적 선택과 이데올로기야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그가 사석에서 자신과 같은 계급의 지인들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세계관을 펴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적 공간인 방송, 그것도 게스트가 아니라 진행자라면 다른 문제이다.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문제 발언으로 한 TV 프로그램 사회자에서 하차한 조 씨이기에 이번 발언 파문은 더욱더 두드러져 보인다. “점쟁이 같은 모르는 남의 말을 추종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믿다가 잡아보니 별 이상한 사람이고 다 속았다”라는 그의 발언은 ‘전문대졸’과 ‘무직’이라는 학력과 경력으로 미네르바를 폄하하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시선과 같은 지점에 서 있다.

 

한 포털에서 검색해 보니 그는 ‘가수이자, 대중음악 작곡가, 서양화가’로 소개되고 있다. 취미는 ‘시 창작’이고, 특기는 ‘그림 그리기’다. 아직은 취미 수준인 문학까지 포함하면 그는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의 각 영역을 두루 답습하고 있는 종합예술가(?)로 규정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따라서 그의 이번 발언은 100억 원대의 저택(!)을 소유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계급으로서 조영남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낸 것일지 모른다. 그의 공식 사과로 파문은 일단락되고 있다. 세계관의 소산이든, 본인의 자질 때문이든 이번 파문은 우리 사회가 가진 얕은 문화적 역량의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 셈이 아닌가 싶다.

 

 

2009. 1.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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