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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김명수 시 ‘하급반 교과서’를 다시 읽으며

by 낮달2018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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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의 1983년 발표작 ‘하급반 교과서’

▲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들 . 보수 세력은 이들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몰고 있다 . ⓒ <KBS>

지난해부터 시작된 교과서 논란은 권력과 극우세력들의 비호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상식적’으로 이해한 교육 주체들과 시민들의 완승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황당한 논리로 반격을 일삼던 극우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여당은 손을 들고 끝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상식 혹은 ‘상식의 전도’

 

정부 여당은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할 때 부당한 외압을 방지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라며 6월 말까지 ‘역사 교과서 발행 체계 개선안’을 확정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부당한 외압’이란 물론 역사 교과서에 대한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동문의 의사표시다.

 

이 교과서 파동은 일찍이 전임 이명박 정부부터 슬그머니 우겨온 ‘상식의 전도’, 그 결정판처럼 보인다. 그것은 좌우의 이념과는 무관한 세상의 절대다수 갑남을녀가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말하는 것도 그들의 이해와 다를 때에는 ‘아니다’로 규정하는 논리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전국의 2천5백여 개의 고등학교 가운데 어느 학교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한 것은 그들의 강변하는 ‘외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그것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된 역사 서술, 그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눈 밝은 시민들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정 극우세력들과 정부 여당에서는 이 같은 결과가 ‘외압’과 ‘마녀사냥’과 ‘인민재판’의 결과라는 식의 억지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절대다수 대중의 선택을 폄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을 ‘상종 못 할 비국민’으로 떠밀어내는 폭력이다.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퇴출에 대한 의견을 담고 있는 조갑제의 트위터

왜 절대다수 시민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외면하는지를 성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그들이 용인하는 사상적 스펙트럼 저편으로 밀어낸다. 그리고는 거기다 ‘좌파’거나 ‘종북’ 같은 익숙한 주홍글씨를 덧씌우는 것이다.

 

그래서다. 정부 여당이 말하는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담보로, 사실에 기초한 기술을 한다’라는 양대 원칙”을 새기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만의 논리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균형’과 ‘사실’이란 자신들의 주장이 훨씬 비중 있게 다루어짐을 이르고, 자신들의 이해에 더 가까운 것을 이를 뿐이기 때문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나오게 된 배경으로 보수 세력들이 줄곧 뇌어온 ‘좌편향’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의 진단이다. 정부가 정한 집필 기준, 검정지침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가 어찌 어느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의 역사적 연구 성과를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역사학계의 정설을 기준으로 기술된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공격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교과서로 편찬한 것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인 셈이다. 결국 있지도 않은 ‘좌편향’에 대응하려다 보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우편향’ 정도가 아니라 역사적 기술의 왜곡과 오류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칼자루를 쥔’ 정부 여당의 뜻대로 가닥을 찾는 것 같다. 현행 검인정 역사 교과서 발행 체계가 국정으로 환원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국정교과서로 전면 전환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편수실 부활 등을 통한 교과서 감수 절차는 이전보다 강화될 것이다. 결국 정부는 편수기능 강화를 통해서 교과서 발행 과정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은 역사는

 

국사 교과서의 국정교과서 체제가 시작된 건 유신 독재 시기인 1974년이다. 나는 그 교과서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공부했다.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아마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요령부득의 표현을 배운 게 예의 <국사> 교과서가 아니었나 싶다.

 

정부 여당은 가능하면 국정교과서로, 그게 정 여의치 않으면 자신들의 역사관이 관철된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박정희 정권이 각각 11종이던 중·고교 국사교 과서를 1종의 단일 국정교과서 체제로 바꾸어 유신 독재의 정당성을 홍보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아이들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은 것이다.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역사학자들 97%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것도 상관없다.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는 한 다양한 역사 서술을 보장하는 검인정에서 국정으로의 전환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에도 오불관언이다. 국정교과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북한, 베트남, 필리핀 같은 나라밖에 없다는 사실도 고려 밖에 있다.

 

1983년에 발표된 김명수 시인의 시 ‘하급반 교과서’가 새롭게 읽히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 시는 박정희 집권 말기였던 유신 시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강요된 획일주의 때문에 고통받던 현실을 ‘하급반 아이들의 책 읽기’를 통해 비판한 작품이다. [시 전문 텍스트 읽기]

다시 ‘하급반 교과서’ 시대로 가자고?

 

시에서 ‘하급반’은 낮은 수준의 민중을, ‘교과서’는 ‘획일성’이나 ‘권위’를 뜻한다. 그래서 ‘하급반 교과서’는 그런 사회의 획일성, 전제성을 상징하게 된다. ‘아이들’은 ‘민중’들을, ‘한 아이’는 ‘지도자’로 상정된다. 아이들이 ‘책을 따라 읽는’ 것은 통제사회에서의 맹목적 추종일 뿐이다.

 

아이들의 ‘청아’하고 ‘꾸밈없는 목소리’는 반어(反語)다. 아무도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황, 권력자의 의도대로 민중들이 따라오는 획일화된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이는 다시 ‘외우기도 좋아라’,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등의 반어로 이어진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목표, 획일화된 사회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 사회는 일사불란한 질서를 자랑한다. 거기에는 잘못된 권위에 대한 맹목적 추종만 있다. 정부의 시책과 의견에 어긋나기만 하면 ‘비(非)국민’과 ‘국론 분열’ 운운하는 것은 이런 일사불란한 사회에 대한 동경과 지향의 간접적 고백인지도 모른다.

 

시는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와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을 확인하는 화자의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환기하면서 마무리된다. 시인은 유신 시대가 지향했던 전체주의 사회의 저급성과 획일성을 ‘하급반’의 ‘교과서 읽기’로 비유하고 풍자한 것이다.

 

지금 역사적 퇴행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약속된 것처럼 목격되고 있다. 그러나 민족사를 단일한 교과서를 통해 획일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끔찍한 야만의 시대에 대한 복고와 기림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지난 세기를 통해 이룩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목마름의 기억조차 지워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좌우의 이념보다 시민들이 선택한 상식의 힘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2014. 1.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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