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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시인 김남조와 도종환

by 낮달2018 202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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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을 바라보는 두 시인의 엇갈린 시선

▲ 세종시 건설 현장 ⓒ 오마이뉴스
▲ 시인 김남조(1927~ )

초임 시절에 여고생들에게 그의 시 ‘겨울 바다’를 가르쳤지만 정작 시인 김남조(1927~ )에 대한 내 기억은 텅 비어 있다.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피안의 공간에서 오롯이 자기만의 성을 쌓고 사는 이처럼 느꼈던 까닭이다.

 

그이가 쌓은 시적 편력이나 삶과 무관하게 내게는 그는 단지 교과서에 시가 실렸던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프레시안>에서 기사(김남조 “대통령은 원전 파는데 촛불? 세종시?”)를 읽고서야 그의 존재를 간신히 확인했을 정도다. 나의 관심과 상관없이 그는 여든을 넘긴 노인이지만 생존해 있었다. 그것도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의 자격으로 말이다.

 

원로시인 김남조의 ‘안타까움과 연민’

국민원로회의가 어떤 조직인지는 그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 외에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김남조 시인이 그 단체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니 그이가 ‘국민 원로’임은 분명하다. 김 시인은 오늘 청와대에서 베풀어진 원로회의 위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강도 높게’ ‘세종시 원안’의 문제점을 비판했다고 한다.

 

다음은 <프레시안> 기사에서 전하는 그의 발언이다.

 

· 대학 4학년 때 6·25 동란이 일어났고, 서울이 완전히 부서지는 것을 목격하고 많은 아픔을 겪었다. 4번을 당기고 밀려서 서울을 지켜냈다고 한다.

· 서울은 지역도 넓고 강과 산도 있고 아름다운 도시다. 서울을 우리의 도시로 가다듬어 얼굴로 삼고, 손님을 모셔오고, 50년 동안 기쁨과 아픔을 박아 넣어 대도시로 만들었다.

· 그런데 수도의 가장 중심기능인 행정권이 다른 데로, 황량한 새 도시로 옮긴다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렵고, 바로잡기도 어렵다.

· 우리 대통령은 원자력도 팔고, 어린아이들이 가정사를 호소할 때 편지를 쓰는 등 기타 여러 가지로 바쁜데 한 해는 촛불로, 한 해는 세종시로, 끝에 가서는 권력 공백기라고 한다.

· (이 대통령이) 참으로 안타까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 원로회의 위원도 남은 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국의 번영을 보고 싶고 국격과 격조가 있는 나라가 되기를 경원한다. 남은 희망은 조국의 번영이다.

· 국회의 작태를 볼 때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을 적시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가 많다.

· 대통령님과 총리님이 힘을 내시라.

 

글쎄, 자연인이든 국가 기구를 맡은 사람이든 나라 안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다. 더구나 여론조차 갈려 있는 ‘세종시’에 대한 것이니, 거기에 대해 가타부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시인은 ‘세종시’ 문제를 완전히 ‘수도 이전’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계속된 그이의 발언은 좀 ‘거시기’하다.

 

국가 원로든 국민 원로든 ‘원로의 역할’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다. 그러나 그이는 외곬으로 대통령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마음 아파하고, 국민의 ‘무지몽매’를 안타까워한다. 그이의 말투에는 원전 수출을 성사시켰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편지에도 답을 할 만큼 공사다망한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 물씬 묻어난다.

 

‘위로와 연민’은 다수 국민에게로

 

‘촛불’로 보낸 한 해를 안타까워하는 걸로 보아, 그이는 ‘미국산 쇠고기’를 안전하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랬다면 촛불을 들고 밤을 밝혔던 숱한 시민들의 몸짓을 ‘PD수첩’이나 진보 진영의 선동에 휩쓸린 철부지 행동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이는 그것을 민의의 표현이 아니라 국정 수행의 걸림돌로 이해한 듯 보인다.

 

▲ 시인 도종환(1954~ )

또 한 해를 ‘세종시’ 공방으로, 또 ‘권력 공백기’(아마 권력 누수를 이야기하는 듯)로 보내야 하는 대통령에 대한 그의 연민은 차고 넘치는 듯하다. 정작 그이에게는 촛불 이후, 벌어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 표현의 자유와 언론, 사회 양극화, 용산참사, 4대강 따위의 문제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로회의 위원으로서 ‘남은 날이 많지 않’지만 ‘남은 희망은 조국의 번영’이라는 그이의 술회는 나름의 진정성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온전하지 않은 반쪽처럼 보인다. 그이에게 국회에서 이루어진 갈등은 전적으로 ‘작태’로 여겨진다. 당연히 그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는 그의 고백도 반쪽의 진정성에 그친다.

 

김 시인은 ‘대통령과 총리’에게 ‘힘을 내시라’고 위로하는 것으로 말을 맺었지만, 정작 그이가 위로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았나 싶다. 근 1년이 다 되어서 남편과 가장의 장례를 치러야 했던 용산의 유족들, 한겨울 철거로 한데에 내몰린 사람들, 직장을 잃고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 가난한 희망으로 고단한 삶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글쎄, 모임에 참석한 다른 원로들도 비슷한 덕담을 나눈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니 더는 할 말이 없다. 세종시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그걸 지적하고 그 해법을 주문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권력자에게 덕담이나 건네는 것으로 국민 원로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원로를 둔 국민만 불행해질 뿐이다.

 

그리고, 도종환의 자리

원로시인으로서 그이의 사랑과 연민은 권력보다는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져야 옳다. 권력의 불편과 애로를 위무하기보다는 그 반대편에 선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에 국민 원로의 격에 맞는 일이다.

 

그이는 ‘국격과 격조가 있는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국격과 격조는 침묵과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반대와 저항의 자유가 보장되는 정치·사회적 성숙을 통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이다.

 

우연일까. 같은 날 교수·문화·예술인 794명이 ‘지역 균형발전과 행복 도시 정상 추진을 위한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고 정부에 세종시 수정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 794명의 지식인 가운데 낯익은 이름이 끼어 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있는 시인 도종환(1954~ )이다.

 

김남조 시인과 도종환 시인 사이에는 27년이란 나이 차가 있지만, 그들이 가진 가치와 관점의 거리는 그보다 훨씬 멀어 보인다. 일찍이 도종환 시인은 시 ‘담쟁이’를 통해 ‘연대를 통해 절망을 극복해가는 담쟁이의 놀라운 생명력’을 노래했다. 시에서 ‘담쟁이’란 존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자명하다.

 

<담쟁이>를 거듭 읽으면서 두 시인이 각각 다다른 전혀 다른 세계와 그 차이를 생각해 보는 마음은 스산하다. 이 스산한 풍경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숱한 투쟁과 죽음, 고통스러운 여정을 거쳐 당도한 이 땅의 21세기라면 그건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말이다.

 

 

2010. 1.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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