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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외로움’ 혹은 ‘노추(老醜)’

by 낮달2018 202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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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수’에 오른 시인 김지하

▲ 내 서가에 있는 김지하의 저작

대선 즈음에 시인 김지하(1941~ )가 ‘구설수’에 오른 건 구문이다. 김지하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를 전후해 투옥되면서 세계의 양심수로 떠올랐던 1970년대의 대표적 저항 시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박해했던 당대 권력자의 딸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고 하면서 시작되었지만, 기실 이 ‘구설수’는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죽음의 굿판’ 운운할 때부터 이미 싹튼 것이었다.[관련 글 : 박정희 정권, 「오적(五賊)」필화사건…<사상계> 폐간 조치]

 

이 상징적 문인의 변신을 가리켜 ‘변절’이니, ‘전향’이니 하지만 그건 시인 김지하의 영향력이 일정한 힘을 갖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최근 대중들의 입질에 오른 그의 근황은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인 ‘구설수’로 정리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그가 좌충우돌식으로 쏟아낸 말들은 굳이 여기다 옮길 필요조차도 없다. 대중을 설득하는 합리적 논리가 아니라 그가 흘리고 다닌 가시 돋친 언사 속에 담긴 것은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폄하와 편 가르기만이 넘칠 뿐이기 때문이다.

▲ <오적> 필화사건으로 법정에 선 김지하(맨 왼쪽) ⓒ <한겨레> 사진

그로부터 근거 없이 이런저런 비난과 폄훼를 받은 이들은 씁쓸하게 웃어넘기는 것으로 한때 이 나라 민주주의와 자유의 상징이었던 그에 대한 예우를 대신했던 것 같다. 이에 고무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지지한 대선후보가 차기 권력을 얻은 데에 고양되었던 것일까. 그의 언사는 점점 거침없어지기 시작했다. 일간지 인터뷰에서 ‘육두문자’에 가까운 욕설을 내뱉을 만큼.

 

‘구설수’, 혹은 ‘독거노인의 외로움’

 

칠순을 넘겨 바야흐로 원로의 반열에 든 대시인 김지하는 왜 이렇게 ‘천방지축’을 거듭할까. 대선 투표일을 앞둔 지난해 12월 10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황호덕 교수(성균관대·국문학)의 글 “지하여, 침묵하소서”는 무엄하게도(!) 그 이유를 시인이 맞고 있는 ‘노년’의 문제에서 찾는다.

 

▲ <오적>의 표지 판화

황호덕은 ‘젊음에의 집착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노년이란’ ‘스스로의 상징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는,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정치와 문화의 구도에서 원치 않는 훈수를 두는 일로써만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이 한국의 늙은 삶’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추정한다. ‘외로움이야말로 병의 근원이 아니었을까.’라고. 황호덕은 그의 변신을 ‘일종의 노년의 외로움의 징표’처럼 보았다고 말한다.

 

한때 온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저항 시인으로서의 성가를 떨친 시인은 어느 날, 자신의 말에 아무도 주목하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자신이 온전히 바친 젊은 날의 고통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의. 그리하여 황호덕은 “‘독거노인’ 김지하의 심정은 실은 어버이연합 노년들의 마음자리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닐 수도 있다.”라며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흔히 ‘까스통 할배’로 불리는 예의 ‘노인’들이 즐겨 쓰는 낱말, ‘빨갱이’가 어느덧 이 한 시대의 저항시인, 전체주의 독재에 저항했던 진보적 지식인의 입에서 서슴없이 쓰이고 있는 것은 ‘독거노인’ 김지하가 처한 ‘외로움’과 상실감에 대한 방증일지도 모른다.

 

황호덕은 김지하의 변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 ‘현역’이 되는 건, 영원히 죽는 일”이라며, 다음과 같은 호소로 글을 마무리한다.

 

‘중심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며
“시골 가 비우리라”고 쓰던 김지하를 떠올리며.
김지하여,
침묵하소서.
침묵하소서.

 

진보적 학자나 언론인뿐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던 신진 정치인까지 ‘깡통’으로 폄훼한 그의 정치적 지지가 대통령 선거에 얼마만 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인이 그의 아들의 결혼식에 사람을 보내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하니 ‘독거노인’ 김지하의 정치적 지지가 일말의 위로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새롭게 ‘주목받게 된 생’이 생광스러웠던 것일까.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김지하가 쏟아내는 말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보수신문의 인터뷰에 나와서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진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 막말을 퍼부었고, 양념처럼 전직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2013.1.12.) 21면 ⓒ <한겨레> PDF

이 원로 시인의 막말 행진에 대해 이번에는 ‘새카만’ 후배인 소설가 장정일이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장정일은 <한겨레>에 연재하는 ‘독서일기’에서 이 문단의 대선배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김지하의 산문집 <옹치격>에 대한 서평(2013. 1. 12자) “글 밖의 김지하, 서글픈 자기분열”을 빌어서다.

 

장정일의 ‘직격탄’과 김흥숙의 ‘완곡어법’

 

장정일의 제일성은 ‘지겹다’이다. 그는 김지하가 그간 행한 이런저런 사소한 거짓말을 들면서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의 망상’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딴죽은 치사하다’라면서도 최근 김지하의 언어폭력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 자신부터 “쥐새끼 같은 년”이니 뭐니 해 가면서 법률로 정해진 권리를 행사한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를 도적 취급하는 억지와 박근혜를 찍지 않은 48%를 가리켜 공산화를 좇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폭력을 중지해야 한다.

 

장정일은 또 김지하가 “<옹치격>(솔, 1993)에서 동학의 포접제에서 영감을 받은 주민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루었다고 하면서 김지하의 주장을 인용하여 오히려 그의 정치적 변신의 허구를 간단히 허물어 버린다.

 

주민들의 풀뿌리 조직이 중앙 권력(청와대·국회·법원)을 포위하는 것이 후천개벽이요, 생명과 모심의 모권 정치다. 여성 대통령으로 후천개벽이 된다는 그의 주장은 서글픈 자기분열이다.

 

장정일과 같은 날 <한겨레>에 실은 칼럼 “저는 노인이 아닙니다”를 통해서 김흥숙 시인도 요즘 노인들이 벌이는 ‘노추(老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평생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의 안마당에 머물던 정치인들이 노욕을 좇아 반대편 사람이 되는’ 것과 함께 ‘젊은 시절 독재자를 비난하여 이름을 얻은 사람이 그 독재자의 유지를 받드는 세력에 가담하여 조롱거리가 되었’다면서.

 

한승헌이 ‘늙어가는 법’

 

그녀는 ‘지역·문화·인종’을 불문하고 ‘노추’의 가능성이 보편적이라면서 신년 인사회에서 만난 한 ‘노인’ 이야기를 한다. 그 ‘여든 가까워 보이는 어른’, ‘빼빼 마른 몸’으로 의자에 앉는 대신 ‘인파 속에 설 자리를 잡’는 그 어른.

 

동행의 젊은이에게 시인은 그가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를 변호하신 인권변호사, 민주화 과정에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시고 8년 동안이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던 분’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유머를 잃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기억한다.

 

귀갓길에서 시인은 나이 든 사람 일색의 버스 속에서 자신은 ‘이제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분처럼, 다만 서 있는 자세만으로 젊은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노인이 되리라. 육신은 ‘노화’해도 ‘노추’는 불가능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글을 맺는다.

 

그가 바로 한승헌(1934~ ) 변호사다. 그는 1970년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오적>으로 법정에 선 스물아홉의 김지하를 변호했던 이다. 그리고 40년이 훌쩍 흘렀다. 스물아홉의 청년이 일흔둘의 노인이 된 세월이다. 그러나 그 세월은 사람의 삶도 갈라버렸다.

 

일흔둘의 ‘원로’ 시인은 노추를 면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일흔아홉, 여든을 목전에 둔 노 변호사는 여전히 꼿꼿한 몸으로 젊은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흥숙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역시 ‘추하게 늙지 않는 길’이었던 셈이다.

 

내 서가에는 김지하의 저작이 두 권 있다. 1982년 판 <타는 목마름으로>와 1987년 판 담시 모음집 <오적>이다. 20년이 훌쩍 넘게 묵어 누렇게 변색한 책을 이리저리 뒤적여보다 담시 ‘똥바다’의 들머리에 시선이 머문다.

 

입싼 놈 口舌數(구설수), 글 모난 놈 筆禍(필화), 데모 잘하는 놈 官災數(관재수)
빽 잘 쓰는 놈, 줄 잘 타는 놈, 때 잘 짚는 놈, 물 잘 보는 놈
이런 솜씨, 저런 재조, 온갖 能(능), 갖은 力(역)이 아차 한번 실수하면 모두 다 저 잡아먹는 재조요 솜씨요 能(능)이요 力(역)으로 둔갑하는 법
영악한 놈일수록 제 무덤 제가 판다는 말이 다 이를 두고 나온 말이렸다
    - 김지하 담시 ‘똥바다’ 중에서

 

원제목이 <분씨물어(糞氏物語)>였던 이 담시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풍자한 작품으로 1974년 그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될 무렵에 발표되었고 뒤에 일본의 <세계> 지에 실리기도 했다. 예의 ‘입 싼 놈’이 가리키는 실체는 엄연한데도 자꾸 거기 구설수를 거듭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자꾸 겹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2013년, 그가 말하는 ‘후천개벽’의 세월은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까.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면서도 한때는 시대의 징표였던 노시인이 벌이는 노추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심사는 어지럽고 민망하기만 하다.

 

 

2013. 1. 13. 낮달

 


▲ 김지하 시인은 지난해 5월, 81세를&nbsp; 일기로 영욕의 생애를 마감했다. ⓒ 경향신문

김지하 시인은 지난해(2022) 5월 8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윗글을 쓰던 2013년만 해도 그에 대한 적의가 넘치긴 했지만, 그가 7, 80년대에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의 변신을 ‘변절’이라고 공격했던 진보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후배와 동료 등에게서 숱한 욕을 먹긴 했지만, 따로 진영을 등진 대가로 영화를 누리거나 보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와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문인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잇따라 애도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한 이유일 것이다. 아래는 <경향신문> 보도를 인용한 것이다. [관련 기사 : 영욕의 세월 뒤로아름다운 꽃망울 피우시길]

 

· “온갖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김지하 시인이 영면하셨다. (……) 부디 저세상 건너가시거든 새벽이슬 젖은 아름답고 고운 꽃망울 많이 피우소서” - 이시영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고인이 생전 그린 난초 그림의 사진을 올리고

 

· “선배님,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어요. 긴급조치 때 선배님 양심선언을 배포했다고 구속된 동료들이 떠오릅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 최열(환경재단 이사장), 1975년 긴급조치로 구속될 당시의 인연을 언급하며

 

· “서울대에 함께 다닐 때부터 김 시인은 정치적 식견이나 문화적 감수성이 남달랐고, 어두운 시대에 자신의 입장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분” - 이부영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상임대표(전 국회의원)

 

· “대학 재학 시절 판소리와 연극을 다 김 시인에게 배웠다. (……) 독재에 맞선 저항 시인이었던 선배께서는 민주화 이후 생명문학포럼 등 생명과 관련된 운동에 집중하셨던 자유인이었다” - 손학규(전 바른미래당 대표)

 

· “변절과 관련해 논란이 많은데, 김 시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섬망 증세를 보였다. 섬망 증세를 앓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생명 사상에 대해 깨달았으며, 이것과 관련해 민주화운동 등을 등한시했다는 오해를 산 것” - 임진택(창작판소리 명창)

 

이제 그는 가고, 그가 남긴 문학작품들과 함께 그의 ‘생명사상’이 새롭게 반추되고 있다. 그는 “저항의 시인에서 생명 사상가로 지평을 열어간 분”이라고 기리는 이유다. 2015년 고인과 함께 <김지하 문학선집>을 출간한 홍용희 문학평론가의 말이다.

 

“초기의 시 세계는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 등 어둠의 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에 해당한다면, 1980년대 시집 ‘애린’을 기점으로 어둠의 세력까지 순치시켜 포괄해내는 '살림'의 문화, 생명의 문명을 재건하는 문학과 사상의 세계를 열어갔다.”

 

어쨌든 김지하 시인의 죽음으로 우리는 한 시대를 마감했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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