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헌정 광고에 담긴 주권자의 꿈
정치인에 대한 광고가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부터인 듯하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불러일으킨 슬픔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장례를 전후해 지지자와 일반 국민이 진보 일간지 등에 추모 광고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 글 바로 가기]
이들 광고의 주체는 주로 시민들이었다. 베이스볼파크와 MLB파크 회원들, 82cook,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 DVD 프라임 등의 동호인 모임이 주축이 된 이들 시민이 마련한 광고는 기왕의 정치광고와는 다른 매우 감성적이고 세련된 언술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다시 태어나
바보 대통령이 또 한 번 된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고인이 다시 태어나 ‘바보 대통령’이 된다면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되고 싶다던 사람들. 고인이 생전에 쓴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글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강물이 되겠다고,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도록 흐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강물이 되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바다에 이르는 그날까지
묵묵히 흐르겠습니다.”
사람들은 7일 동안의 국민장 기간 내내 분향소에서, 봉하마을에서, 덕수궁 앞에서 눈물을 씻었고, 그 눈물의 의미를 새롭게 새기면서 ‘바보 노무현’을 배웅했다. 그리고 주머니를 열어 성금을 모아서 그들 마음의 한 자락들을 신문 지면에 펼쳐놓았다.
그 마음들은 지지자들에겐 눈물과 연민과 분노가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죽음을 폄하하고, 모독하고, 그 마음에 증오의 재를 뿌렸던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그 눈물과 분노를 철부지 감상주의자들의 넘치는 치기, 감정의 감성적 낭비라고 매도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중의 아무도 그들이 경멸하고 폄하한 시민들이 지녔던 따뜻하고 맑은 마음의 결을 흉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지지하고 숭배했던 권력은 어떤 경우에라도 그런 뜨겁고 아름다운 배웅을 받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고작 4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한 이 착시는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노무현의 비극 뒤에 이를 악물고 기다린 4년 뒤에도 실패해 버린 대선 때문일까. 그 선거에서 일천사백육십구만 명의 지지를 받고 장렬하게 패배한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문재인 헌정 동영상 “아름다운 사람”
문재인 헌정 광고 “아름다운 사람”은 대선 때 문재인 광고를 만들었던 광고인들이 문재인 후보와 허탈에 빠진 절반의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제작비 일체를 부담해서 만든 마지막 광고다. 이 1분 28초짜리 동영상에서 그들은 문재인을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게 살아왔고
아름답게 일어섰고
아름답게 싸워준 사람
지금처럼 살아도 되는 건지 내게 물어온 사람
내 안에서 시들어버린 뜨거움을 흔들어 깨워준 사람
그래서 아쉬움보다 미안함이 더 크게 남는 사람”
이 문면과 글귀에도 넘치는 기시감이 있다. 사람들은 4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전 대통령에게 바치던 뜨거운 사랑과 우정의 헌사를 기억할 수밖에 없을 만큼. 이 광고에 바쳐진 헌사와 인간 문재인이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거기 담긴 애틋한 마음은 4년 전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광고인뿐이 아니다. ‘82cook 회원들과 문재인을 지지하는 네티즌’ 명의의 일간지 광고가 다시 <한겨레>에 실렸다. 지난 8일 <한겨레> 1면 하단에 실린 이 광고의 카피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 이제 우리가 그 시작을 열겠습니다”이다.
광고에서 이들 지지자는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문재인의 아름다운 도전’과 ‘문재인과 함께 꾸었던 꿈’을 잊지 않겠다면서 문재인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광고는 결국 <한겨레>를 읽은 이들에게만 전해지는 데 그쳤으리라.
대선 결과를 두고 ‘가슴앓이’를 한 사람은 주변에도 적지 않다. 문재인을 지지한 1천469만 명의 유권자 모두가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이 이 패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파하고 힘들어한 것은 분명하다. ‘이민’을 운운하고 50대 이상을 겨냥해 ‘막 살겠다’는 푸념이 넘쳤던 것도 그런 아쉬움과 아픔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실패한 정권교체를 두고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과학적 분석과 평가가 넘친다. 민주당 책임론이든 문재인 책임론이든 그 분석과 평가에 가타부타할 일은 없겠다. 일천사백만이 넘는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도 여러 가지다.
그게 민주당에 대한 지지다, 아니다. 문재인에 대한 지지다, 아니다. 안철수에 대한 지지가 옮겨졌다, 그렇지 않다……. 각각의 평가가 가진 뉘앙스들은 제각각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표들이 가진 공통점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이다.
<한겨레> 헌정 광고, 혹은 ‘못다 한 꿈과 열망의 성찰’
그리고 그 열망을 실현해 줄 사람으로 문재인을 택한 것에는 다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후보의 자질과 덕성, 파괴력, 카리스마, 전망의 제시 따위의 온갖 기대와 한계에 대한 인식도 현실적으로 ‘당선’을 담보하지 못한 아쉬움과 실망감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패배라는 결과 앞에서 문재인의 ‘선전’을 씹는 것은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를 넘어설 수 없다. 문재인이 치른 선거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이다. 그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부터 정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선전한 것은 문재인의 힘이었다는 평가까지. 어떤 경우라도 문재인과 민주당이 책임은 면할 수는 없다. 전쟁에 2등이 없듯 선거에는 승패만 존재하니 말이다.
문재인 헌정 광고를 주도한 이들이 얼마만큼의 대표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광고에 나타난 것도 우리가 늘상 말하는 ‘민심’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는 데 주저할 필요는 없다. 이 헌정 광고의 주체들은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보다는 자신들의 마음을 모아준 후보에게 우정의 인사를 보내면서 문재인이 제기한 정치적 화두를 자신들이 안고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개인이 보여준 엄격한 도덕성과 겸허한 태도, 민주주의에 대한 일관된 관점 따위는 대선 결과와는 따로 일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재인 개인이 가진 역량이면서 동시에 정권교체라는 열망으로 시민들이 후보를 통해 투사한 민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거는 끝났고,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선거에서 그들이 투사하고 확인하고 이루고자 했던 열망들,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정의의 이름들을 이 헌정 광고를 통해서 새롭게 성찰하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바쳐진 헌사
4년 전, 사람들은 눈물을 씻으면서 노무현을 배웅했다. 그리고 헌정 광고를 통해서 노무현이 꿈꾸고 이루고자 한 것들의 역사적 의미를, 지난 세기 내내 싸워서 지켜온 가치들을 성찰했다. 마찬가지로 4년 후, 사람들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꿈의 진정성을, 그 본연의 가치를 떠올리면서 그것을 아프게 성찰하고 있다.
“아름답게 살아왔고
아름답게 일어섰고
아름답게 싸워준 사람
지금처럼 살아도 되는 건지 내게 물어온 사람
내 안에서 시들어버린 뜨거움을 흔들어 깨워준 사람
그래서 아쉬움보다 미안함이 더 크게 남는 사람”
하여, 아름다움을 일깨운 이 헌사는 문재인 개인에게 바쳐진 헌사라기보다는 그 꿈을 위해 투표소로 종종걸음을 쳤던 사람들, 모든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지금처럼 살아선 안 된다고’, ‘시들어 버린 뜨거움을’ 다시 데워낸 사람들, 역사의 물줄기는 그들에 의해서 바뀐다는 평범한 진실의 담담한 확인이기도 한 것이다.
2013. 1. 11. 낮달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당하고,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가 인용되면서 파면되었다. 2017년 5월 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은 41.1%를 득표해 24%를 득표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다음 해 1월, 위 광고를 헌정 받았던 문재인은 4년 뒤에 치른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4년, 한때 7, 80%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꺼지고, 부정 평가는 처음으로 60%를 넘었다. 한때 마음으로 그를 응원했던 중도적 시민마저 그 지지를 거두어들인 결과다.
반대자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문파’들의 ‘콘크리트 지지’로 간신히 30%대를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이 나라 정치의 혁명을 꿈꾸었던 시민들은 마음엔 상처와 좌절감이 깊다. 촛불 혁명은 단순히 한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넘어 새로운 사회와 민주주의를 꿈꾼 시민들의 바람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나날이 벌어지는 개혁과는 일정하게 멀어지는 법률 제정 따위를 지켜보면서 한숨 짓고, 분노를 삭이는 숱한 시민의 상처와 좌절감, 거기서 비롯한 분노를 성찰할 때다. 어떻게 해야, 중도적 시민들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를 뼈아프게 고민하여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남은 몇 오라기의 지지마저 거두어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00일의 임기가 남은 문재인 정부에 보내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글 “문재인 정부, 아직 임기 500여 일이 남았다 [제언] 2016년과 2017년 촛불 들었던 시민들의 마음 얻는 개혁 나서야”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2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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