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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비현실적인 ‘단풍 터널’, 딱 이번 주까지입니다

by 낮달2018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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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혼자 보기 아까운 팔공산 단풍길 풍경

* 사진을 누르면(클릭)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 대구 팔공산 순환도로 팔공산로는 ‘단풍길’이다. 지금 단풍은 소멸 직전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일찍이 만나보지 못한 맑고 선명하면서도 핏빛을 자랑하는 홍단풍에 나는 압도당했다.

늦가을 단풍 찾기는 2019년에 내장산에서 정점을 찍었다. 퇴직 이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즐기는 ‘탐승(探勝)’의 시간으로 내장산 단풍은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동이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올해 아내의 지인은 두 번이나 내장산을 찾았다가 차를 대지 못해 되돌아왔다고 하니, 새벽에 길을 나선 2019년의 선택이 새삼 흐뭇하게 되짚어지지 않을 수 없다.(관련 기사 :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화요일 점심때가 겨워서 집을 나선 것은 굳이 어딜 가겠다는 마련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가산(901m)과 팔공산(1,192m) 사이에 있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한티재 길을 돌아볼까 싶었지만, 꼭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걸 핑계 대고 근처를 어슬렁대다 돌아올까 싶었을 뿐이다.

 

한티재로 한티 순교 성지를 지나 휴게소까지 갔지만, 잎 벗은 나무들 사이로 단풍이 언뜻언뜻 비칠 뿐인 늦가을 산길은 스산하기만 했다. 돌아오려 샛길로 들어섰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예까지 와서 그냥 가려고, 하는 바람에 차를 돌렸다. 우린 그간 몇 차례나 찾았던 팔공산 단풍길을 떠올린 것이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송림사(松林寺)를 지나 대구광역시 동구의 파계사(把溪寺)부터 수태골을 지나 동화사(桐華寺)에 이르는 16.3㎞에 걸친 팔공산 순환도로(팔공산로)는 ‘단풍길’이다. 구부러지고 휘돌아가는 이 숲길에는 화사한 단풍나무 가로수의 행렬이 이어진다.

 

주말이면 차 댈 데가 없을 만큼 나들이객이 넘친다 해서 퇴직 전에는 감독관을 면한 수능 시험일에나 올 수 있었지만, 굳이 날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건 은퇴자가 누리는 여유다. 2012년 11월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의 감동은 내가 ‘순정(純精)’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쓸 정도였었다.(관련 기사 : 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그러나, 이미 11월도 중순을 넘겼는데,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풍 ‘끝물’이라도 돌아볼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러잖아도 괜찮다고 여기면서 나는 차를 돌린 것이다. 선명학교를 지나 팔공산로로 들어섰지만, 예년과 비슷하게 띄엄띄엄 이어진 단풍나무 가로수는 별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이 일어났다. 그동안 내가 이 단풍길에서 보아온 단풍보다 훨씬 풍성하고, 훨씬 선명하면서도 맑고 고운 단풍나무 가로수가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진 것이었다. 팔공산로의 단풍나무 가로수의 특징은 보도에 한 줄이 아니라 두 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길 양옆의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기는 어렵다. 대신 이 겹으로 이어지는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유난히 올 단풍은 선명한 핏빛이었다. 올해는 가물어서 단풍이 곱지 못하다는 얘길 들었고, 얼마 전 찾은 연악산 수다사(水多寺) 단풍에서 그걸 확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팔공산 단풍길의 단풍은 밝으면서도 짙은 선홍빛이었다.

 

한 번 더 단풍길을 들른 것은 4년 뒤인 2016년 11월 중순이었다. 그때 팔공산로의 단풍은 빨강보다는 노랑이 더 짙었다. 그때 쓴 <오마이뉴스> 기사는 큰 사진으로 올라 있는데, 그걸 들여다보면서 재삼 그 사실을 확인한다. 같은 길, 같은 나무인데, 왜 이렇게 다른 빛깔을 드러내는 것일까.(관련 기사 : 맑은 빛깔로 물든 대구 팔공산 ‘단풍 터널’)

▲ 팔공산 단풍길은 군데군데 단풍나무가 두 줄로 이어지면서 터널을 이룬다.
▲ 4년 전 들렀을 때, 노랑이 짙었던 단풍길은 올해는 어쩐지 밝고 짙은 선홍빛이었다.

단풍은 나뭇잎의 생육 활동이 막바지에 이르러 수분과 영양분의 공급이 둔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잎의 빛깔이 변하는 것은 기온이 떨어져 생성이 어려워진 엽록소가 햇볕에 파괴되면서 줄어들기 때문이다.

 

단풍은 길어야 15~20일쯤인 단기간에 나무가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준비하는 일종의 ‘몸만들기’다. 잎에 남은 여러 물질을 뿌리와 나무밑동으로 내려보내거나 조직 일부로 통합한 뒤, 영양분이 사라진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는 것이다. 단풍은 결국 나무의 노화 과정이니, 소멸 직전에 반짝 빛나는 눈부신 생명의 불꽃이다.

 

파인더 안에 들어오는 단풍의 고운 빛깔에 경탄하면서 나는 260여 번 셔터를 눌렀다. 돌아와 사진을 ‘팔공산 단풍길’ 폴더 안에 갈무리하고 보정한 뒤, 한 장씩 들여다보면서 그 감흥을 복기해 보았다. 지난해 이맘때 들른 내장산 단풍에 못지 않은 풍경에 나는 새삼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처음 모두 스물몇 장의 사진을 골랐다. 그중 구도나 빛깔이 겹치는 것을 빼면서 고른 10장의 사진,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오마이뉴스> 독자께 보낸다.

 

대구 지역 날씨를 보니 오늘(18일)은 소나기, 내일은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의 규모는 와 봐야 알겠지만, 팔공산 단풍길은 비 온 뒤에 더 스산해질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 팔공산로를 찾으면 마지막 남은 단풍, 생성의 과업을 마치고 소멸로 가는 나뭇잎을 배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단풍나무 가로수 밑은 붉은 단풍 낙엽의 양탄자를 이루었다.
▲ 단풍이 ‘불탄다’라고 하는 것은 의례적 수사가 아니다. 정말, 단풍길의 단풍은 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 ‘휘영청’은 달빛을 비유하는 말이 아니라, 길 옆으로 늘어진 단풍나무의 모양을 표현하기에 적합할지 모른다.
▲ 이 사진은 단풍이 어떤 경로를거쳐 빨갛게 물드는지는 보여주는 실마리이다.
▲ 역광으로 바라본 단풍나무 가로수. 눈부시지만, 처연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풍경이었다.
▲ 단풍 터널을 지나는 자동차들. 차들은 몽환의 풍경 저편에서 비현실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처럼도 보였다.

 

2020. 11. 18. 낮달

 

* 새로 확인해 보니 2013년도에도 단풍길을 찾았었다. [다시 팔공산 ‘단풍길’]

 

 

이토록 비현실적인 단풍 터널, 딱 이번 주까지입니다

[사진] 혼자 보기 아까운 팔공산 단풍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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