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감독의 신작 <MB의 추억>
마침내 MB가 주연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들머리에 박힌 주연배우의 이름을 보고 긴가민가하던 관객들도 65분짜리 이 복합장르(?)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굳이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오는 ‘기획·주연=모조리 MB’라는 안내를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트루맛쇼>를 만든 김재환 감독의 신작 <MB의 추억>은 감독 스스로 밝혔듯 ‘코믹 호러’ 영화다. “2007년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했던 말(공약)을 지금 들으면 코미디로 느껴지고, 지난 5년을 겪은 사람들에게 영화 속 ‘엠비’의 표정·음성들이 공포(호러)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출연진은 호화롭다. MB가 주연인 대신, 정동영과 이회창은 ‘조연’이고 허경영은 ‘찬조 출연’, 김제동이 ‘특별출연’했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주로 2007 대선 과정을 중심으로 MB의 동선을 추적한 기록(장면)들은 날것 그대로 5년 후인 2012년 현재와 교묘하게 조응한다. 그래서 감독의 말대로 “2007년의 이명박 후보가 2012년의 ‘엠비’를 ‘디스’(비판)하는 영화”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어 여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이 영화는 그러나, 일단 서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중심으로 소규모 개봉했다. 감독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끔 ‘12살 관람가’를 신청했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는 ‘15살 관람가’로 결정했다. 이유는 “(관객이) 사회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통한 이해 정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서울 2개 관, 지방 2개 관 등 고작 4개 관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서울에서는 매진 사례란다. 주말 아닌 평일의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단지 2개 관에서 개봉한 영화에 ‘매진’이라는 표현이 좀 민망하지만, 서울의 ‘지식과 경험을 통한 이해 정도가 있’는 관객들의 선택은 존중할 만하다.
‘매진 사례’ 대신 썰렁한 대구 개봉관
지방 2개 관에 대구(동성아트홀)와 부산(국도시네마)이 끼인 건 좀 이채롭다. MB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통해 현 정권을 낳은 이 영남의 중심도시 두 군데에서 ‘현 정권 5년을 정산하는 코미디 다큐’를 상영하는 건 관객을 제대로 겨냥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영화에서 MB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영남의 주민들은 행복해 보였고, 5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스스로 해설자기도 한 MB가 ‘고향이란 좋은 곳’이라고 되뇌기도 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주말인 토요일 오후 1시께 동성아트홀 아래층에 있는 커피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나는 20분 후에 상영하는 관람권을 서둘러 샀다. 일부러 대구에 들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영화이므로 혹시 표가 매진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물론 그건 기우였다.
관람권에는 좌석번호가 박혀 있었지만 나는 그것과 무관하게 가장 알맞은 자리를 골라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201석의 영화관을 채운 사람은 50명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그것도 하루 1회 상영인데도 말이다. 대부분 젊은 친구들 사이에 낀 초로의 부부 한 쌍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에선 간간이 낮고 억눌린 듯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홍소(哄笑)라고는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웃음이었으니 ‘조소(嘲笑)’라고나 할 수 있을까. 화면에서 재생되는 과거의 상황은 그간 흐른 세월 때문에 이미 코미디가 되었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MB가 뱉어낸, 과도한 자신감으로 들뜬 숱한 약속의 말과 말은 그가 행사한 통치의 과정에서 무게를 잃고 빈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일자리는 별반 늘어나지 않았고, 장사가 안돼서 하던 ‘세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임대’해야 하는 점포도 자꾸 늘어났다.
그가, 혹은 한나라당이 의도한 ‘이미지’ 정치는 성공했다. 사람들은 거기 들떠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그가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며 마치 그와 권력을 공유한 것처럼 행복해했다. 그의 고향 포항을 비롯한 영남 지역의 유권자들이 집단 최면처럼 꾸었던 백일몽이 허망하게 무산되는 과정을 영화는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억눌린 듯한 헛웃음들의 씁쓸한 연대
<MB의 추억> 따위를 보기 위해 주말의 금쪽같은 시간을 낸 관객들의, 오 년 전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선택을 했든, 현재의 결과 앞에서 그들은 일종의 ‘공범자’로서 자책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 비록 웃음을 흘리고 있으면서도 유쾌하게 웃을 수 없었던 것은 특정 지역인으로서의 연대를 감히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나 옆자리에 앉은 딸애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수표’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5년 전에 MB에게 표를 던졌든 던지지 않았든, 그가 영남인이든 아니든 그 정치적 선택으로부터 자유자재할 이가 과연 있기나 할까.
나도 그랬지만 딸애는 가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의 속내를 까뒤집어놓은 것 같은 만화경 속의 자신의 꼬락서니를 멀거니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화면에서 복기하고 있는 5년 전을 씁쓸하게 바라보았고, 우리 시대가 감당했던 정치적 선택이 코미디로서만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이 ‘찌질한 상황’에 입맛을 다셨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최고 권력에 오른 이답게 MB는 시종 기운차고, 위풍당당했다. 그가 전 정권의 실정을 특유의 툭 던지는 말투로 비웃을 때마다 지지자들은 열광했고, 그의 자신감은 배가되어 그는 마치 미다스의 손을 가진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터널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만났던 2007년에서 벗어나 다시 터널을 빠져나와 만난 2011년의 상황은 급전직하한다. 불과 5년 만에 그의 기운찬 모습은 일종의 만용으로, 그의 자신감은 망상의 모습으로 일그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의 당선을 위해 발 벗고 뛰었던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이나 전여옥 전 의원 같은 이들의 모습은 한층 더 안쓰럽다. 사람들에게 이른바 ‘747공약’을 실천할 이가 누구냐고 묻는 유인촌이나 거기 목 놓아 ‘이명박’이라고 화답하는 지지자들이 연출하는 장면은 일종의 희화다.
이른바 ‘명박산성’이라 불리었던 컨테이너로 폐쇄한 서울광장, 시위 군중을 향해서 바로 쏘는 물대포 따위의 장면을 바라보면서 관객들은 비로소 허구에서 현실을 환기하게 된다. 그래서 굴착기로 ‘보잉 747 여객기’의 몸통을 처참하게 짓이겨 해체되는 장면의 연출은 일종의 사족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가 지난 5년을 ‘정산하는’ 코미디 다큐라고 말한다. 정산의 때가 된 것은 맞다. 새로운 대선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고, MB 정부 5년이 이제 곧 막을 내리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정산되는 것은 5년 전의 과거다.
정산을 말끔하게 하지 못하면 새해에 엉뚱한 추징금을 물 수도 있다. 이 정산이 연말 대선과 어떤 형식으로든 맞닿아 있으며, 그 결과가 이 정산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감독은 이 영화가 실제로 겨냥하고 있는 관객층이 극장을 찾지 않는 딜레마 앞에 갑갑함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역량의 문제이면서 역사와 진보를 부정하는 반역사·몰역사의 시간을 넘어 새롭게 만들어 나갈 시대정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반역과 일탈이 필연과 당위로 전화해 가는 것이 역사라면 이 영화는 그 어름에서 들메끈을 고쳐 매기 위해 잠깐 뒤돌아보고 있는 형국인지도 모르겠다.
2012. 10.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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