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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안동 이야기

줄다리기, 남녀의 성적 결합이 풍작을 낳는다

by 낮달2018 201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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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순흥 초군청(樵軍廳) 놀이’를 다녀와서

▲ 초군청 농악패를 앞세우고 동부, 서부의 줄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 정월 대보름에 순흥 초군청(樵軍廳) 놀이를 다녀왔다. 지방자치 시대의 민속 행사는 지역마다 다투어 벌어지긴 하지만 그 내용이야 거기가 거긴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안동에도 보름날 밤에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베풀어진다. 그런데도 굳이 아침 일찍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순흥에 이른 것은 초군청이라는 이름이 은근히 풍기는 흥미 때문이었다.

 

순흥 초군청은 개화기 때 농민들이 자신의 권익 보호와 향중(鄕中) 사회의 질서회복을 위해 결성한 전국 유일의 순수 농민 자치기구다. ‘초군청초군은 말 그대로 나무꾼이다. 그것은 관군이나 양반과 맞서는 민간서민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유일의 농민자치 기구 순흥 초군청

 

초군청이 생긴 것은 실학의 대두와 서구 문물의 도입 등으로 반상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던 개화기, 고종 임금 때다. 지역 선비 김교림(金敎林)은 농민들이 토호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해 조정의 허락을 받아 촌민자치, 자위조직으로 순흥 초군청을 만들었다.

▲ 순흥 초군청 깃발

초군청은 순흥도호부의 관 조직에 상응하는 직제로 꾸며졌다. 부사 대신에 좌수(좌상) 한 사람을 추대하여 향장(鄕長)으로 삼고 그 아래 육방과 비장, 대방 등을 두고 관을 견제하면서 흥주(興州, 순흥)향약에 따라 고을의 안녕과 농민권익 보호에 힘썼다.

 

초군청은 미풍양속 장려, 악폐 근절, 임도 개설, 해당 연도 품값 선정 등의 활동과 함께 초군들의 잘잘못을 가렸다. 또 두레 조직을 활성화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등 초군들의 권익 보호와 위상 정립에도 힘썼다. 순흥의 초군청 재판놀이는 바로 이러한 활동을 놀이로 꾸민 것이다.

 

관이나 양반 우선의 전근대 사회에 초군이라는 민간 자치 기구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신분제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던 개화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힘입은 바 크다. 여전히 봉건시대의 질곡은 온존하고 있었지만, 세상은 한 걸음씩 근대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순흥 초군청 놀이는 소수서원 옆 순흥 선비촌 주차장에서 종일 펼쳐졌다. 음복술 마시기, 사진전, 초군청 대동 농악놀이 등 다양하게 베풀어진 이 날 행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행사는 상하리 줄다리기였다. 이 줄다리기 놀이는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순흥 고을의 대동 행사였다.

 

줄다리기는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에서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민속놀이다. 그러나 그런 행사에서 펼쳐지는 줄다리기는 줄을 다리는(당기는) 양편의 힘겨루기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같은 편끼리 호흡을 맞추면서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대동놀이의 성격을 드러내긴 하지만 말이다.

 

줄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일부

 

그러나 순흥 초군청 놀이에서의 줄다리기는 같은 대동놀이이되, ‘풍년을 기원하는 이른바 풍요 주술(呪術)’의 일부다. 이는 원래 줄다리기가 풍년을 비는 농경의례에서 비롯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줄다리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체로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지역과 나라에서 전승되어 온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줄다리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줄다리기가 논농사의 비중이 큰 중부이남 지역에서 성행한 놀이로 기록되어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줄다리기가 동서’, 혹은 남북으로 편을 나누어 줄을 잡아당겨 승부를 가리는데, 이를 통해 그해 생업의 풍흉(豊凶)을 점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 초군청 농악패의 대원
▲ 줄다리기에 앞서 열린 당제의 제관들. 금성대군당에 제를 올렸다.

줄다리기의 곳곳에는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풍요의 기원과 성에 대한 관념이 드러난다. 줄다리기로 한해의 풍흉을 점친다는 것은 이 놀이가 주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주술적 속성은 줄을 암수로 나누거나, 남녀의 성기를 닮은 모양으로 만드는 데서 드러난다. 줄다리기를 위하여 암줄과 수줄을 잇는 것도 인간의 성교를 모방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으로 줄다리기가 풍요 주술의 일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월 대보름에 베풀어지는 순흥 줄다리기도 유서 깊다. 옛 순흥도호부 시절에는 부사 관할의 전 부민들이 동참하여 읍성(邑城)을 기준으로 위아래[상하]로 나누어 성하·성북 대항으로 이루어졌다. 그 뒤,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사이에는 면민들이 동·서부로 나눠 줄다리기를 해 왔다고 한다.

 

놀이를 위해 매년 햇짚으로 줄을 만들었다. 줄의 규모가 만만치 않기에 줄 만들기에 참여하는 것도 마을 공동체로서의 동질성을 높이는 일이었을 터이다. 순흥 줄다리기에 쓰이는 원줄은 목둘레가 2.5m(직경 70), 길이는 100m, 총 중량은 5톤에 이른다. 줄은 마을 청장년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을 다니면서 짚단이나 새끼줄을 받아 모두가 합심하여 며칠에 걸쳐서 만든다고 한다.

 

줄의 구조는 원줄, 중줄 21가닥, 꼬리줄 3가닥으로 되어 있고 동부 줄은 수줄, 서부 줄은 암줄이라 한다. 두 줄의 고(고리)를 연결하는 비녀목을 곳대라 부르는데 곳대는 길이 2m, 직경 20cm쯤 되는 참나무같이 튼튼한 나무로 만든다.

 

줄다리기는 성행위를 모방한다?

 

일반적으로 풍요 주술로서의 줄다리기에서는 여성(암줄)이 이기는 것으로 설정된다. 여성이 곧 생산성의 상징이며, 이 암줄의 승리가 곧 풍요이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는 풍농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놀이니, 상징적인 성행위 장면을 연출하고 여성의 승리로 끝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성이 이기게 하고자 미혼 남성을 모두 여자 편으로 하도록 배려하기도 하는데 이는 여성과 땅을 동일시하는 농경문화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다. 줄다리기가 주로 보리밭 등 농경지 위에서 열리는 것도 같은 의미다. 암수 두 줄이 벌이는 상징적 성행위는 곧 그 생산력에 의한 풍요로운 결실의 기원인 것이다.

 

순흥의 줄다리기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도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온다 해서 매년 수줄 쪽에서 승리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성하(城下성북(城北)으로 나눴을 때는 성하 줄이 암줄이 되었으나 지금은 서쪽 줄이 암줄이다. 결과를 합의하고 벌이는 승부니 그것은 형식적 절차일 뿐이다.

 

순흥 줄다리기는 초군청 농악패를 앞세우고 양쪽에서 줄 위에 탄 대장의 지휘에 따라 암수 양줄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장은 전립을 쓰고 전복(戰服)을 입었다. 암줄은 마을 사람들이 멨고 수줄은 인근 대학의 학군단원들이 짊어졌다. 양쪽 줄은 서로 마주 보고 큰 절로 예를 올린 후에 줄다리기를 위해 줄을 잇는 작업에 들어갔다.

 

암수 줄 모두 고(고리)가 있지만 암줄인 서쪽 줄의 고가 더 크다. 수줄이 그 고 안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암줄 안으로 수줄을 넣는 건 성교를 의미하는 모방 주술의 일부다. 유사(類似)의 법칙을 토대로 한 모방 주술은 행위의 모방을 통해 그것과 동일한 사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주술 형태다.

 

암줄과 수줄의 머리를 위로 세운 뒤 암줄 안으로 수줄을 넣는다. 이때는 보통 한 번 만에 줄을 잇지 않고, 수줄의 머리를 여러 번 넣었다 뺐다 한다. 성행위를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또 원래는 성()과 관련한 음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기도 한다. 암줄 안으로 수줄이 완전히 들어가면 이음새를 고정하는 비녀목인 곳대를 꽂는다.

 

암줄을 둘러멘 주민들은 싱글벙글하는 표정으로 미루어 이 줄의 결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짧게 치켜 깎은 머리의 젊은 학군단원들은 자신들이 참여한 줄다리기 놀이의 속뜻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 줄다리기에 앞서 암수 줄이 서로 마주 보고 큰 절로 예를 올리고 있다.
▲ 암수 줄이 결합에 앞서 서로 희롱하고 있다.
▲ 암줄인 서부(위)는 지역 주민들이, 수줄인 동부(아래)는 인근 대학 학군단원들이 줄을 메었다.
▲ 암줄의 고리 속에 수줄이 들어오자 비녀목을 꿰고 있다.
▲ 암수줄이 결합된 후 비녀목을 꽂으면 이 성적 결합은 완성된다.

몇 번인가 암줄의 머릿속을 오르내리던 수줄의 머리가 비녀목으로 고정되던 순간이었다. 풍물패의 환호성과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예의 교접이 완성되는 찰나, 자리를 옮겨가며 셔터를 누르고 있던 나는 아주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해방감을 느꼈다.

 

일행들에게 마치 엑스터시나 오르가즘 같은 것이었다고 너스레를 떨고 말았지만 나는 이 민속놀이 속에 숨어 있는 본원적 의미를 한꺼번에 꿰뚫어 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음양의 조화를 통해 만물의 소생과 생명의 탄생을 기원했던 옛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그러한 원초적 감정과 기원을 줄다리기라는 제의(祭儀)로 대체해 냈던 것이다.

 

줄다리기, ‘제의에서 놀이

 

그렇다. 최초의 줄다리기에서 교접을 재현해 내고 행위의 모방을 통해 그것과 동일한 사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던 이들에게 그것은 원시적 제의가 아니었을까. ‘제의놀이로 바꿔낸 것은 시간과 역사의 전개다. 어느덧 줄다리기는 여느 민속적 제의와 마찬가지로 제의가 아니라 놀이가 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민속학자들은 줄다리기의 원형적 기초는 경작지에서 이루어진 실제적 성행위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동남아시아와 동유럽에서는 풍작을 위해 밭에서 부부가 직접 성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 역시 농업을 남녀의 성과 이어 곡식의 결실 과정인간의 탄생동일한 생산(生産)’으로 인식한 것이다.

 

관동과 관북지방의 화전민들에게서 전해오는 나경속(裸耕俗)’은 그런 인식을 직접 드러내는 예다. 벌거벗은 총각이 밤에 몰래 밭을 가는 이 풍속은 농경 무늬의 청동기에도 새겨져 전할 만큼 그 역사가 오랜 것이다. 벌거벗고 밭은 가는[나경(裸耕)] 행위는 여성인 땅과 벌거벗은 남성이 상징적 성행위를 하는 것이다. 특히 성기를 직접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경속은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나무 시집보내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경속은 그러나, 개인적인 풍년 의례에 그친다. 이것이 집단 의례가 될 경우, 직접적 성행위를 나타내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상징적 성행위가 곧 줄다리기. 결국, 줄다리기는 집단적인 성행위를 통해 주술적 다산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형성된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성은 쾌락금기의 언어다. 그것은 인간의 벌거벗은 욕망이고, 질주와 일탈을 압축하는 메시지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성을 신성생산의 원동력으로 여겼다. 그래서 줄다리기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성행위를 풍요를 가져다주는 의례적 행위로 중시했던 것이다.

 

단오의 세시 풍속으로 전해져 오는 나무 시집보내기도 같은 모방 주술의 표현이다.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이 풍속은 나무의 성교를 모방함으로써 나무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줄다리기, 주술적 다산을 기원한 소박한 믿음

 

순흥에서 펼쳐진 줄다리기놀이는 예정된 경로를 거쳐 끝났다. 사람들은 한 시절의 민속을 재현한 데 만족하면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다시 근엄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줄다리기가 집단적 성행위를 통해 주술적 다산(多産)을 기원한 옛사람들의 소박한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이내 잊어버릴 것이다.

 

모방 주술 따위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인간의 지혜와 역사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놀라운 21세기는 집단적 성행위가 아니라, 정교한 유전공학과 맹독성 농약, 화학 비료에 기대어 그 생산성을 높여왔다. 성은 일찌감치 그 건강성을 잃고 무한 질주를 거듭하는 인간의 과잉 욕망의 화신이 되었다.

 

이 문명의 세기가 초래한 결과는 쓸쓸하고 참혹하다. 땅은 죽어가고 있고, 교란되고 파괴된 생태계는 무릇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땅과 삶을 성찰하지 못하는 한, 남녀의 사랑 그 교접을 통해 다산과 풍요를 빌고 얻었던 저 원시의 소박한 본능의 세계를 그리는 것은 여전히 헛되고 한갓진 일일지도 모르겠다.

 

 

2010. 3. 22. 낮달

 

* ‘줄다리기’(Tugging rituals and games)는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풍농을 기원하며 벼농사 문화권에서 행해진 대표적인 전통문화로서 ‘줄다리기’의 무형 유산적 가치 등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관련 글 :줄다리기 인류 무형 문화 유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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