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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 인류 무형 문화 유산이 되다

by 낮달2018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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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Tugging rituals and games)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 충남 당진시의 기지시 줄다리기.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줄다리기’(Tugging rituals and games)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2일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는 나미비아 빈트후크에서 열린 제10차 회의에서 줄다리기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위원국들이 아태 지역 4개국이 협력하여 공동 등재로 진행한 점과 풍농을 기원하며 벼농사 문화권에서 행해진 대표적인 전통문화로서 ‘줄다리기’의 무형 유산적 가치 등을 높이 평가했다”라고 한다.

 

이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을 시작으로 강릉 단오제(2005),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2009),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 문화(2013), 농악(2014)에 이은 우리나라의 열여덟 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18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 ‘줄다리기’

 

정월 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던 대동놀이인 줄다리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농경 문화권에서 농사에 필요한 비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서 널리 행해져 왔다. 국내에는 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 기지시 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삼척 기 줄다리기(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 26 호로 지정된 경남 창녕의 영산줄다리기 광경
▲학교 축제 등에서 베풀어지는 줄다리기는 단순한 오락 경기에 지나지 않는다 .

줄다리기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4개국이다. 네 나라는 “줄다리기가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 널리 행해지는 놀이로 공동체의 풍요와 안위를 도모했다”라며 등재를 신청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줄다리기가 벼농사 재배권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듯이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나라들은 모두 남방의 미작(米作) 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줄다리기 민속은 한강 이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현재 지역 전통으로 주기적 줄다리기 전승 행사가 있는 지역은 강원 삼척, 충남 당진 기지시, 경남 창녕 영산, 전북 김제 입석, 전남 장흥 및 나주, 경기 광명, 경북 청도 및 자인 등이 있다. 경북 영주에서도 초군청 놀이 가운데 줄다리기를 전승하고 있다. [관련 글 : 줄다리기, 남녀의 성적 결합이 풍작을 낳는다]

▲ 영주 초군청 놀이의 줄다리기에서 암수 줄이 결합에 앞서 서로 희롱하고 있다.
▲ 암줄의 고리 속에 수줄이 들어오자 비녀목을 꿰고 있다. 영주 초군청 놀이의 줄다리기.

줄다리기 관습이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는 구전되는 민속의 특성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줄다리기는 촌락사회에서 전래하는 마을 단위 혹은 여러 마을 단위의 세시(歲時) 행사다(윤년 혹은 지역에 흉사가 이어지는 시기에 하는 위기危機 의례의 성격도 있다).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뉜 집단이 줄을 당겨 승패를 가르는 집단적 놀이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격의 관습이기도 하다.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마을 단위 세시 행사

 

줄다리기 행사는 동서로 편을 갈라 시행한다. 마을 단위의 경우 특정한 경계선이나 여러 마을을 성 안과 성 밖, 혹은 특정한 도로나 내를 경계로 하여 편을 가르기도 한다. 동편은 수줄을 당기는 남성 편, 서편은 암줄의 여성 편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줄다리기 행사에 앞서 줄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여기 소요되는 짚은 집집에서 추렴한다. 짚 추렴에서 시작하여 줄을 만드는 작업에서의 협동심과 줄을 당기는 행사에서 요구되는 응집력을 통해서 양편 주민은 결속을 다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체 주민의 심리적 일체감을 자극하여 지역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줄다리기가 향촌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 암수 줄이 결합한 후 비녀목을 꽂으면 이 성적 결합은 완성된다.

줄다리기 놀이는 양편이 줄목(줄의 맨 앞부분)을 끼우기 위한 실랑이로 시작된다. 이는 암줄의 고리에 수줄의 고리를 끼우고 목나무(비녀목)로 고정하는 단계로 남녀가 성기를 삽입하는 성행위의 상징이다. 음란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며 줄목이 끼워지면 신호에 따라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줄다리기의 승패는 이기는 편에 풍년이 들고 마을이 안녕하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나라 줄다리기의 보편적 성격인데, 줄다리기 행사가 기풍(祈豊)과 벽사(辟邪)로서 액(厄)막이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다산을 위한 풍요 주술

 

줄다리기 놀이의 곳곳에 우리네 조상들이 지녔던 풍요의 기원과 성에 대한 관념이 드러난다. 줄다리기로 한해의 풍흉을 점친다는 것은 이 놀이가 ‘주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주술적 속성은 줄을 암수로 나누거나, 남녀의 성기를 닮은 모양으로 만드는 데서 드러난다. 줄다리기를 위하여 암줄과 수줄을 잇는 것도 인간의 성교를 모방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으로 줄다리기가 ‘풍요 주술’의 일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민속학자들은 줄다리기의 원형은 ‘경작지에서 이루어진 실제적 성행위’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동남아시아와 동유럽에서는 풍작을 위해 밭에서 부부가 직접 성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 역시 농업을 남녀의 성적 교접으로 유추, ‘곡식의 결실 과정’과 ‘인간의 탄생’을 ‘동일한 생산(生産)’으로 인식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위에 든 풍년 의례는 개인적 행위에 그친다. 이를 집단 의례로 전화할 경우, 직접적 성행위의 표현은 무리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상징적 성행위가 곧 ‘줄다리기’다. 결국 줄다리기는 집단적인 성행위를 통해 주술적 다산(多産)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형성된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확인하건대 줄다리기는 농한기 촌락 주민의 단순한 오락적 행사로서 의전(擬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벼농사 재배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에 행하는 점세(占歲)적 농경의례다.

 

줄다리기는 시행 시기와 장소, 줄의 모양, 줄다리기 과정의 상징을 통해 주술성을 내포한다. 정월 대보름이라는 시기는 새해 첫 만월의 생생력(生生力)을 드러내고, 행사가 벌어지는 농경지는 지모신(地母神)의 터전이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은 뱀과 용을 상징하고 이는 비를 얻고자 하는 믿음과 이어진다. 물관리가 절대적인 벼농사 중심의 우리 문화는 비를 기원하는 표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용사(龍蛇) 신앙이 있는데 줄다리기는 그것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 줄다리기의 줄은 뱀과 용을 상징하고 이는 비를 얻고자 하는 믿음이다. 기지시 줄다리기 .
▲ 전남 해남군의 북평 용줄다리기 광경. 줄다리기는 벼농사 재배지역에서 주로 행해진다.

줄은 왼새끼를 꼬는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이는 왼새끼가 갖는 벽사적(辟邪的) 성격을 취하고자 함이다. 줄다리기 행사 이후의 줄은 여러 형태의 풍요 다산과 벽사를 위한 모방 주술적 대상으로 사용된다.

 

음양의 조화를 통해 만물의 소생과 생명의 탄생을 기원했던 옛사람들은 그러한 원초적 기원을 ‘줄다리기’라는 제의(祭儀)로 대체해 냈다. 그러나 오늘날 변화된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줄다리기에 더는 과거의 농경의례적 기능은 남아 있지 않다.

 

사라진 주술적 의미 대신 지역사회의 전통 계승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질 뿐이다. 시간과 역사의 전개가 ‘제의’를 ‘놀이’로 바꿔냈다. 어느덧 줄다리기는 여느 민속적 제의와 마찬가지로 ‘제의’가 아니라 ‘놀이’가 되어 전승되고 있다.

 

농촌사회의 오락적 행사라 여겼던 줄다리기는 마침내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줄다리기가 ‘집단적 성행위’로 주술적 다산을 기원한 옛사람들의 소박한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하게 될까. 땅의 생산성을 주술로 빌었던 옛사람들의 소박한 믿음을 통해 현대인들이 땅과 삶을 새롭게 성찰하게 될 수 있을까.

 

 

2015. 12.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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