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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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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 - 법과 법치, 혹은 현실 사이

by 낮달2018 2020.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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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1면 머리기사 (2010.8.14)  ⓒ <한겨레> PDF

바다가 아닌 내륙, 강원도 영월로 당일치기 휴가를 다녀온 이튿날 아침 <한겨레>는 두 가지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하나는 ‘2010년 광복절 특별사면’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2009년 1월의 용산참사 당시 농성을 주도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의장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이 선고됐다는 소식이다.

 

법과 법치 사이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서는 “비리 정치·경제인 살린 ‘그들만의 사면’”이라는 제목으로, 3면에서는 ‘삼성 광복절……’라는 제목으로 이 특사 소식을 다루었다. ‘그들만의 사면’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이번 특사는 선거사범·공직자 2493명이 감형·복권된 대신 ‘시국·노동 사범’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수사는 느리게, 처벌은 가볍게, 사면은 바람같이’라는 <한겨레> 기사의 한 구절은 과장된 비유가 아니라 이번 사면의 성격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임기 중 비리와 부정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 ‘정치적 이유로 (서청원 전 대표를) 사면하지 않겠다’라고 밝힌 바 있는 대통령의 공언은 무색해졌다.

 

시민단체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법질서 확립‘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법과 법치가 국민에게 설득력 있는 국정 운영의 잣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형식적, 내용적 ’공정성의 담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니 말이다.

 

▲ <한겨레> 8면 기사(2010. 8. 14) ⓒ <한겨레> PDF

법과 현실 사이

 

                       ▲ 남경남 전철연 의장

1면 머리기사와 3면 등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특사 소식에 비기면 전철연 의장에 대한 중형 선고 기사는 8면 하단에 3단 기사로 실렸다. 기사가 2493명과 1명이라는 비중의 단순 반영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같은 날짜에 보도된 이 두 기사는 우리 사회의 명암들을 아주 단적으로 전해주는 듯하다. 거기엔 법과 현실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 낙인처럼 드리워져 있다.

 

“재개발·재건축에서 사회적 약자인 철거지역 주거 및 상가 세입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현실에서 개선을 주장하는 남 씨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우리 사회가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 나가야 함은 분명하다.”

 

재판부는 ‘현실적 전제’와 ‘법의 이상’ 사이에서 고민한 듯 보이지만, 최종적으로 ‘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남 씨의 불법행위는)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로 그 동기 여하를 불문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익숙하게 보아온 풍경이다. 슈퍼마켓에서 수만 원가량의 상품을 훔친 이는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지만, 수백, 수천 억대의 비리와 불법을 저지른 재벌 기업인들은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정상을 참작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판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사면·복권되는 것은 이 땅의 오래된 공식이 아니던가 말이다.

 

 

2010. 8. 14. 낮달

 


10년 후인 2020년의 풍경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 일련의 풍경이 압축하는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최근 너무 허기져 구운 달걀 18개, 5천 원어치를 훔친 40대가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을 저지른 이는 코로나로 일용직 일자리를 잃고 열흘 넘게 굶주리던 차였다. 그런데 검찰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물론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게 단순히 5천 원 절도와 18개월이라는 식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부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전유죄의 정황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소식에 형량이 너무 많다는 여론이 일자, 법원이 재판을 열어 과연 구형이 적당한지 살펴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202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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