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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태와 김종현, 두 죽음과 국립묘지

by 낮달2018 2020.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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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협력 장군 출신 ‘범법자는 돼도 ‘순직 소방사’는 묻히지 못한다

▲ 국립묘지는 이 나라가 계급사회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 대전 국립현충원 .

지난 7월 25일과 27일 두 죽음이 있었다. 앞의 죽음은 병사, 뒤엣것은 사고사다. 앞선 죽음의 주인공은 73세의 노인이고 뒤이은 죽음은 스물아홉 꽃다운 청춘의 것이다. 안현태와 김종현, 안 씨는 전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전두환의 비자금 조성을 주도하고 5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산, 구악의 한 사람이고, 김 씨는 속초소방서에 근무하다 대민지원 중에 순직한 소방대원(소방사)이다.

 

비록 삶은 전혀 달랐지만, 죽음은 평등하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살아서의 영예와는 무관하게 화장, 또는 매장되어 흙으로 돌아갈 때는 그렇다. 그러나 짐작했겠지만, 유구한 계급사회, 대한민국의 죽음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한 ‘자연인의 병사’와 ‘공무원의 순직’이라는 전혀 다른 죽음의 성격 따위는 그 불평등의 털끝도 건드릴 수 없다. 그 영면의 자리인 국립묘지를 들먹이면 그건 좀 더 분명해진다.

 

형식적으로 보면 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그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이라고 봐야 한다. 허울 좋은 법률이 아니라 인간의 상식과 양식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답이야 뻔하지 않은가. 범죄 전력을 가진 권위주의 시대의 구악과 대민봉사를 하다 순직한 젊은 소방대원을 비기는 게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계급과 신분의 체제, 그 불평등 기제는 이 두 죽음 앞에서 매우 기민하게 작동했다.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심의하는 국가보훈처는 여러 차례의 애매한 심의 절차를 거쳐 범법자 안 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결정했다.

 

국립묘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은 ‘금고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거나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안장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과실이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국가유공자를 돕는 차원에서 심의위원회가 허용할 때는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

 

눈치챘겠지만 안 씨의 범죄는 과실이나 생계형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국가보훈처는 안장을 허가한 것은 안 씨가 잔형 집행 면제로 복권됐고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는 등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안보? 쿠데타를 저지르고 보스의 비자금을 관리해 준 것이 어떻게 국가안보에 기여한 것으로 해석되는지 궁금하지만, 그가 달았다는 ‘두 개의 별’의 힘은 세긴 세다.

 

순직 소방대원 김종현 씨는 당연히(!) 국립묘지에 가지 못한다. 현행법상 소방관의 고유 업무가 아닌 동물 구조 등 대민지원 활동을 벌이다가 숨진 소방관은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화재 진압, 구조, 구급 업무를 수행 중이었거나 이들 업무와 관련된 업무 또는 교육 훈련을 받던 중 사망한 경우만 순직 군경과 유족으로 인정해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소방법 14조2항이다. 이 법은 국립묘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보다 훨씬 빡세다.

 

참, 이럴 때 국가안보에 기여하지 못하고 장군 출신도 아닌 스물아홉 젊은 소방대원의 죽음은 우리 자신에게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그는 속초시 교동 한 학원 건물 3층에서 고립된 고양이를 구조하다 로프가 끊어지면서 10여m 바닥으로 추락해 숨졌다. 그는 지난 4월 결혼한 신혼이었다. 부인의 뱃속에는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안 씨의 유해는 대전 현충원 내 장군 2묘역(이 나라엔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에 기습 안장되었다. 그의 죽음은 길이길이 국립묘지에 묻힌 다른 거룩한 죽음의 하나로 기려질 것이다. 세월이 가면 그가 저지른 범법의 전력도 가려지고 그 죽음의 무게와 영예에 걸맞은 26.4㎡(8평)의 면적에서 그는 영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픈 조국에 바친 소방대원 김종현의 죽음은 3.3㎡ 묘역에 평장도 허가받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주도하는 서명운동 등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 국립묘지와는 멀기만 하다. 무르기만 한 국립묘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비기면 소방법 14조2항은 여전히 금과옥조다.

 

 

2011. 8. 9. 낮달

 


국립묘지는 최근에도 백선엽 전 장군의 안장 문제로 달아올랐다. 그는 6·25전쟁에서 숱한 승전의 주인공으로 전쟁영웅으로 기려지는 이지만, 해방 전, 만주 군관학교를 나온 만주군 장교로 독립군 토벌을 주 임무로 하는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여론도 드높았지만, 그를 ‘이순신’으로 비유하면서까지 안장을 찬성한 보수 진영의 엄호에 힘입어 그는 대전현충원에 ‘영면’에 들었다. 현재까지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모두 65명(민족문제연구소 기준)이다.

 

진보 정치권에서 이들을 현충원에서 이장하게 하는 법률을 준비하고 있지만, 글쎄다. 온갖 상황을 들이밀면서 그들을 감싸는 국민 일반의 정서가 살아 있는 한, 그건 쉽지 않은 싸움이다. 그러나 그걸 관철해 내는 것은 해방 75년에 이를 때까지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정리하면서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을 세워내는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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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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