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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 떠나다

by 낮달2018 202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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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오마 샤리프(1932 ~ 2015. 7. 10.)

▲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65)에서 오마 샤리프는 줄리 크리스티와 주연을 맡았다.

오늘 새벽,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 이집트 출신의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Omar Sharif, 1932~2015)의 부음을 읽었다. 알츠하이머로 투병해 왔던 그는 어제(7월 1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향년 83세. 그의 부음은 무심하게 받아들였지만, 그가 여든을 넘긴 노인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깐 망연했다.

 

중1 때 문화 교실로 본 <닥터 지바고>

 

▲ 오마 샤리프(1932~2015). 오른쪽은 젊은 날의 모습.

내가 오마 샤리프를 만난 것은 1969년, 중학교 1학년 때 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65)를 통해서였다. ‘문화 교실’로 단체 관람한 것은 분명한데 그게 개봉관인 아카데미극장인지, 재개봉관이었던 자유극장이었는지는 애매하다.

 

‘눈 덮인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혁명과 사랑’ 정도가 <닥터 지바고>를 소개하는 카피가 될 수 있겠지만 정작 나는 그 영화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장엄한 배경과 낯선 서양 배우들의 열연에 압도되었지만 아마 나는 그 영화의 서사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도 전혀 없었던 데다 그걸 이해하기에는 나는 어렸기 때문이다.

▲ 〈닥터 지바고〉에서 나는 정작 오마 샤리프보다 줄리 크리스티의 지적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나는 여주인공 라라(줄리 크리스티 Julie Christie 분)가 보여주었던 지적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다음 영화 정보’를 찾아보면서 만난 그녀의 얼굴에는 오랜 연륜에도 불구하고 열네 살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던 지적인 미가 여전했다.

 

오마 샤리프의 ‘인상’

 

<닥터 지바고>에 관한 기억 중에 오래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지바고와 라라가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살 때의 한 장면이다. 그 빨간 벽돌집 현관에서 라라는 외벽의 벽돌 하나를 들어내고 거기 숨겨놓은 열쇠를 찾아 문을 여는 것이었다. 글쎄, 그게 소년 특유의 호기심이었는지, 둘만의 세계를 갈무리하는 방식에 대한 찬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작 주인공인 오마 샤리프에 대한 기억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무어랄까, 그가 보여주는 아랍인 특유의 인상은 좀 어둡고 침침했다. 특히 콧수염과 깊숙한 눈길은 그 너머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비밀을 아주 완고하고 품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것은 매우 부정적인 인상으로 다가왔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나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알았고, <닥터 지바고>의 내용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그게 다였다. 나는 그 무렵 한참 맛을 들인 외국영화를 즐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70년대의 흑백텔레비전으로 나는 양대 공중파(한국방송과 문화방송)가 주말에 나누어 방송하는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1962) 에서 피터 오툴과 공연한 오마 샤리프 .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화니 걸>도?

 

데이비드 린 감독이 <닥터 지바고>에 앞서 만든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1962)를 나는 <케이비에스(KBS)> 명화극장을 통해 보았다.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텔레비전 영화는 모두 더빙 녹음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주인공 로렌스(피터 오툴 분) 역을 맡았던 성우는 최응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피터 오툴의 연기에 압도되어서인지 나는 오마 샤리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글쎄, 영화의 스틸을 보면서 확인해 보니 영화엔 앤서니 퀸의 얼굴도 보인다. 아마 당시에 영화를 보면서 오마 샤리프를 인식했을 수도 있겠다.

 

다음 영화 정보에서 오마 샤리프의 영화목록(필모그래피)를 확인해 보니 <화니 걸(Funny Girl)>(1968)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공연했다. 나는 이 영화도 흑백텔레비전으로 보았는데, 역시 오마 샤리프의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그런 로맨스 코미디에 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 오마 샤리프는 로맨스 코미디 〈화니 걸(Funny Girl)〉(1968)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공연했다.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에 대한 기억은 비어 있다. 80년대 이후 그는 영화와 좀 멀어졌던가 싶은데 필모그래피를 보니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아마 그가 출연한 영화 가운데 히트한 작품이 드물었는지도 모른다. 1992년에 담배인삼공사에서 발매한 담배 브랜드 ‘오마 샤리프’를 끝으로 그는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

 

오마 샤리프는 193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초반부터 이집트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피터 오툴의 친구로 출연하였다. 내 기억에는 인상적으로 남지 못했지만, 그는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주목을 받았다.

 

국제 스타가 된 유일한 이집트 배우

 

오마 샤리프가 데이비드 린의 차기작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인 유리 지바고 역을 맡게 된 것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보여준 가능성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오마 샤리프는 이집트 출신 배우 중에서 국제적인 스타로 등극한 거의 유일한 배우라고 한다. 6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는 서구 세계의 모든 국적의 인물들을 소화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마 제국의 멸망>(1964), <칭기즈 칸>(1965), <쿠브라이 칸>(1965), <피터 대제>(1986), <아나스타샤>(1986), <13번째 전사>(1999) 등도 같은 맥락에서 캐스팅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3년, 오마 샤리프는 제60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고 2004년 비고 모르텐슨 주연의 <히달고>에서 이슬람 부족장으로 출연했다. 이후 <왕과의 하룻밤>(2006), <트레블러>(2009), <락 더 카스바>(2013) 등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나는 모두에 그의 부음은 무심히 받아들였으나 그의 나이에 놀랐다고 썼다. 그러고 보니 <닥터 지바고>를 관람했지만, 그 서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열네 살 소년이 어느덧 예순의 초로가 되었으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을 탓할 수는 없겠다.

▲ 〈닥터 지바고〉의 스물셋 여배우 줄리 크리스티도 일흔 넘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다. 내가 <닥터 지바고>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서른셋의 청년이었다……. 내가 마음을 빼앗겼던 라라 역의 줄리 크리스티(1942∼ )도 일흔을 훨씬 넘겼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대중에게 판타지를 제공하지만, 이 스타들도 은막 저편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배우 오마 샤리프의 명복을 빈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동시대인으로 줄리 크리스티도 건강하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2015. 7. 11. 낮달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노벨문학상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 <닥터 지바고>를 다시 보았다. 상영 시간이 무려 3시간 12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열네 살 때도 이렇게 길었던가, 그러나 거짓말처럼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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