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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한가위, ‘되지’ 말고 즐겁게 ‘쇠자!’

by 낮달2018 20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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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문(非文)’인 ‘한가위 되세요’가 무심히 쓰이는 현실

하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같은 비문(非文)이 늠름하게 쓰이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되세요’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글로 ‘가겨찻집’ 문을 열었었다. 그리고 그건 ‘주말’이나 ‘하루’에 그치지 않고 명절 인사로도 합당하지 않다는 글을 썼다. 10년 전에 쓴 글인데,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같은 주제로 쓴 글 세 편을 붙였다. [관련 글 : 나는 ‘즐거운 주말’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즐거운 주말’이 되고 싶지 않다

‘말글 살이 이야기 - 가겨찻집’를 시작하면서 새로 방 한 칸을 들인다. 내 블로그는 네 칸짜리 ‘띠집’인데 여기 또 한 칸을 들이면 ‘누옥(陋屋)’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세 칸을 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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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코앞이다. 몇몇 곳에서 한가위 인사를 보내왔다. 내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보낸 편지에는 “풍요롭고 넉넉한 한가위 맞으세요.”라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하도 ‘한가위 되세요’와 같은 형식의 인사에 질려 있던 차라 그 인사말이 새삼스레 반가웠다. 

 

주로 교사들이 가입하는, 교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보험회사여서 특별히 주의를 했구나 싶었다. 이어서 받은 ‘아름다운 재단’의 편지는 역시 ‘한가위 되세요’다. ‘아름다운 커피’ 누리집에 같은 인사가 걸려 있어서 게시판에 이를 지적하는 글을 썼더니 이내 고쳤다는 답이 달린 게 며칠 전이다. 자못 실망스러운 맘을 가누기 어려웠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줄줄이 쏟아지는 자료들은 하나같이 ‘한가위 되세요’다. 기업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다. <충청일보> 같은 지방지는 물론이고, <한국일보>, <머니투데이>에다 <연합뉴스>, <뉴시스>까지 버젓이 ‘한가위 되세요’를 쓰고 있다.

어떤 제약회사는 전면 광고의 제목으로 그걸 쓰고 있다. 한 서비스형 블로그에서도 운영진의 인사를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로 올렸다. 이쯤 되면 안 쓴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보나 안 보나 뻔한 일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앞에는 이런 구절이 좀 붙었겠는가.

 

어제 온 한 생명보험사의 인사 편지는 “뜻깊고 정겨운 한가위 보내세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불만스러운 부분은 위의 자동차 보험회사와 마찬가지로 이 문장들이 대부분 관형어로 한가위를 꾸미고 있다는 점이다. ‘넉넉한’, ‘정겨운’ 한가위보다는 한가위를 ‘넉넉하게’, 또는 ‘정겹게’ 보내는 게 훨씬 우리말답지 않은가.

아마 영어의 영향 탓인가 싶은데,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어로 써야 할 말을 관형어를 바꿔 쓰는 경향이 많다. 어쩐지 어색해 보이는 문장은 고쳐놓고 보면 잘못이 무엇인가 대번에 눈에 들어온다.

 

-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많이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넉넉한 한가위’는 위의 예와는 거리가 있지만, 무정명사를 꾸몄다는 점에서 비슷한 어법 같다. ‘한가위’는 자체로 넉넉하거나 정겨운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정겹게’, ‘넉넉하게’ 보내는 명절이다.

 

제발 이웃들에게 ‘한가위 되라’고 강요하지 말고 한가위를 ‘즐겁게’, ‘넉넉하게’, ‘정겹게’ 쇠거나 보내시라고 말해 주자. 그걸 지키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니, 이런 표현을 보는 족족 그게 틀린 말이라는 걸 알려주자. 그것도 올 한가위를 뜻깊게 보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터이다.

 

 

2010. 9. 18. 낮달


여전히, ‘한가위 되라’고 한다

그예 ‘한가위 되세요’는 마치 ‘관용적 표현’처럼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가. 각종 광고는 물론이거니와 언론 등에서도 그런 표현이 여과 없이 쓰이는 현실을 짚은 게 얼마 전이다. 그런데 맙소사! 지방 언론사도, 인터넷 언론도 아닌 <경향>도 누리집 맨 위에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를 턱 얹어 놓았다.

 

이어서 전자우편으로 날아온 ‘아름다운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한가위 인사 편지에도 ‘한가위 되세요’는 넘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나름대로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노력을 웬만큼 하는 단체인데도 그렇고, 아름다운재단도 마찬가지다.

 

나는 간단히 편지를 썼다. 대충 다음과 같은 요지의.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를……>은 틀린 표현입니다.

유독 올해는 실수하는 단체가 많네요.

 

“철수가 중학생이 되었다.”에서처럼

‘되다’ 앞에 오는 말은

모두 보어로 주어를 보충하는 말입니다.

“한가위 되세요”는 “당신이 한가위가 되라”는 말과 같습니다.

 

요즘 하도 이렇게 쓰이다 보니

멀쩡한 사람이 ‘쇼핑’도 되고,

‘주말’도 되고, ‘여행’도 되고, ‘명절’도 됩니다.

‘되다’를 넣어도 되는 말은

“부자 되세요”쯤이 되겠지요.

 

제대로 쓰려면

“…… 보내십시오.”나

“…… 쇠시기 바랍니다.”로 써야 합니다.

 

설날 인사는 좀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신확인을 해 보니 아직까지 읽은 곳이 없다. 아직 연휴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어떤 답신이 올지 은근히 궁금해진다.

 

 

2010. 9. 26. 낮달

 


여전히 ‘한가위 되시라’, 그 뒷이야기

▲ 아름다운재단에서 베푸는 '단추수프축제' 안내문. ⓒ 아름다운재단 누리집

민족문제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의 한가위 인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시민단체에서 보낸 한가위 인사 편지를 가지고 블로그에서 시시콜콜 그 시비를 따진 것은 순전히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진보 시민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보여주는 이들 단체에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무심히 보아 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예의 ‘잘못’을 지적하는 편지를 썼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굳이 그런 답신을 보낸 것은 그들이 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사과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반응이 좀 빨랐다. 27일, 연휴가 끝나자마자 연구소의 방학진 사무국장이 몸소 내 블로그에 와서 내 글(한가위, ‘되지’ 말고 즐겁게 ‘쇠자!’) 아래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 위 캡처가 그것이다. 방 사무국장은 이내 배운 대로 ‘한가위 넉넉하게 지내셨죠?’라고 인사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그게 뭐 대수였겠냐마는 나는 썩 기분이 좋았다. 내 믿음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름다운재단에서는 영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나는 9월 28일까지 기다리다가 조급증 때문에 재단 누리집에 들어가 ‘아름다운 뜰’을 조금 어지럽혔다. 잘못 쓴 ‘인사’에 대해서 설명한 다음 나는 다음과 같이 가볍게(?) 항의했다.

 

바빠서 그렇겠지요?

그러나 재단을 바라보는 한 회원의 선의가 무시당했다는

느낌은 그리 편안하지는 않네요.

아름다운 뜰을 어지럽히는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좀 구차한 느낌도 들고요!

 

아름다운재단에서 내 휴대전화로 문자를 넣은 것은 이튿날이다.

 

장호철 기부자님 답변 완료. 조언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 민문연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

정말이지 문자 메시지의 마지막 인사는 ‘옥에 티’였다. 나는 바로 재단 누리집 아름다운 뜰에 들어가 내 제안에 붙인 재단의 답변을 읽었다. 담당 간사는 아주 정중한 사과와 함께 전문성 부족을 실토하면서 ‘필요할 때 조언을 구하고 싶다,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아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부터 내 기분은 제대로 풀려 있었다고 해야 옳다.) 그 아래 ‘한 줄 의견’에다 그렇게 썼다.

 

감사. 폰으로 온 답변 완료 메시지에도 “좋은 날 되세요”네요!

 

그리고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이튿날 문득 생각이 나서 재단 누리집에 들어갔더니 내 한 줄 의견 아래 담당자들의 의견이 두 개 더 붙어 있었다.

 

[○○○] ○○○ 간사 옆에 앉은 동료입니다. ○○간사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얼굴 빨간 간사] 정말 습관이 무서운 것 같아요. 많이 유의하겠습니다.

 

나는 매우 유쾌해져서 소리 내어 웃었다. 궁금해하는 동료에게도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재단의 간사들이 쓴 한 줄 의견을 읽어주었고 우리는 다시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은 촌극을 통해서 나는 우리의 소통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치챘겠지만 내 믿음은 응당한 보상을 받았다. 나는 두 단체의 회원으로, 혹은 기부자로 오래 남을 것이다. 그들과 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민족사’와 ‘나눔’에 대한 뜻과 마음을 나누면서 아마 오래 동지로 살아갈 것이다.

 

 

2010. 10. 2. 낮달

 

[2015]‘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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