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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되세요!”는 쭉 계속된다

by 낮달2018 20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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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법에 어긋난 명절 인사 생각

▲ 위에서부터 삼성생명 , SK C&C ,기업은행, 광동제약의 한가위 인사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나 “희망찬 설날 되세요.” 따위의 비문이 우리 일상을 점령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 바야흐로 이 ‘~ 되세요’는 그야말로 ‘대세’가 되었다. 그나마 어법을 지키려고 애쓰던 언론사들마저 이 발랄한(!) 비문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가위 아침, 전자우편으로 날아온 기업이나 단체의 한가위 인사들, 인터넷에서 잠깐 검색해서 확인해 본 결과이다. 엄밀한 통계적 의미가 있을 수는 없지만 이게 ‘대세’라는 걸 부인할 도리는 없어 보인다. 이른바 ‘콩글리시’라 해서 잘못 쓰는 영어에 대한 사회적 반응과는 견주어지는 대목이다.

 

대문에 명절을 기념하는 문구나 그림을 붙였던 언론사 누리집들은 이번 한가위에는 좀 썰렁해 보인다. 그림으로 대신하거나, 문장 대신 ‘풍요롭고 즐거운 한가위’ 따위의 명사구로 때우기도 하는데 추석날 아침 현재 <한겨레> 누리집에는 그게 아예 붙지도 않았다.

 

<경향>은 거르지 못한 모양인지 대문 제호 위에 ‘넉넉하고 풍요한 한가위 되세요’가 붙었다. <조선닷컴>도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를 제호 위에다 올렸다. 민족 명절을 기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명색이 글쟁이들의 일터인 언론사 누리집에 오른 비문이 ‘생뚱맞기’만 하다. 그나마 따로 기사 중간에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를 배치한 <오마이뉴스>가 체면을 세웠다.

 

기업들은 별 고민 없이 이 ‘~되세요’의 대열에 동참했다. 그나마 바른 문장을 쓴다 싶었던 삼성생명도 올핸 여기에 동참했고 SK, 기업은행, 광동제약 등도 마찬가지다. ‘한가위 되세요’ 앞에 붙는 관형어만 ‘즐거운’, ‘따뜻한’, ‘좋은’, ‘행복한’ 등으로 다를 뿐이다.

 

정당과 대통령 후보의 인사도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의 한가위 인사도 ‘~되세요’ 타령을 답습한다. ‘넉넉한 명절 되기’(새누리)와 ‘풍성한 추석 되기’(민주통합당)의 차이일 뿐이다. 두 정당의 후보도 ‘행복한 시간 되시기’(박근혜)와 ‘편안하고 따뜻한 추석 명절 되’기를 축원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대변인실 페이스북에 ‘서로 힘든 어깨를 두드리고, 웃고, 나누고 위로하는 추석이길’ 기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밖에 개인과 단체들이 쓴 한가위 인사도 마찬가지로 ‘되세요’가 대세다. 국회의원이 자필로 쓴 인사도, 농협, 이동통신 회사,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도 그렇고, 휴관을 알리는 지방 박물관의 공지 사항에도 ‘한가위 되세요’는 넘치고 있다.

▲ '한가위 되세요' 인사는 정치권의 여야, 지자체 등을 가리지 않고 쓰인다.

바른 인사로 체면을 세워 준 데는 몇 군데가 되지 않는다. 한국농어촌공사와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위원장 인사가 그나마 발랐다. ‘즐겁고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기’(농어촌공사), ‘건강하고 넉넉한 한가위 보내시기’(따뜻한 한반도), ‘즐겁고 편안한 추석 명절 보내시기’(전교조) 등으로 썼다.

 

‘한가위’ 앞에 관형어(넉넉한, 풍요로운, 편안한)로 쓰기보다는 ‘보내시기’ 앞에다 부사어( ‘넉넉하게, 풍요롭게, 편안하게’)로 썼으면 더 좋을 뻔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보다는 “많이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가 우리말 쓰임으로 더 훌륭하지 않은가 말이다.

▲ 위에서부터 농어촌공사, 연탄 나눔 운동, 전교조의 한가위 인사
▲ 경기도 안양시 블로그에 오른 인사말. 아래에 덧붙인 말 때문에 '아차상'감이다 .

‘아차상’을 주어야 하는 인사도 있다. 경기도 안양시의 블로그에 오른 인산데, 맨 위에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잘 써 놓고, 뭐가 아쉬웠는지 그 아래에다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라고 덧붙이는 바람에 점수를 까먹은 것이다.

 

시내 곳곳에 붙은 펼침막에 붙은 인사말도 ‘되세요’ 일색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붙은 펼침막도 마찬가지다. 아뿔싸, 알았다면 미리 관리실에다 귀띔해 두었을 텐데. 그러나 2012년 한가위,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물론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붙은 펼침막도 어김없다.

 

2012. 9. 30.

 

[2015]‘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

[2014]여전히 ‘한가위 되세요’ - ‘백약이 소용없다’

[2010]한가위, ‘되지’ 말고 즐겁게 ‘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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