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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차칸남자’와 ‘고아떤 뺑덕어멈’ 사이

by 낮달2018 2020.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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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드라마 제목

▲ <KBS> 새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 남자’ 포스터

뜬금없이 아직 방영되지도 않은 드라마의 제목이 말썽이다. 오늘(12일) 첫 방송을 앞둔 한국방송(KBS) 제2 텔레비전의 새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 남자’ 얘기다. 보도에 따르면 한글학회 등의 한글 단체들이 이 드라마의 제목을 두고 “우리말을 파괴하는 표현”이라고 비판하면서 KBS에 항의 공문을 보내 시정을 촉구했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 한글단체 “KBS ‘차칸남자’ 우리말 파괴…바꿔라”]

 

한글학회는 “우리 말글을 제대로 쓰고 그 교육과 계도에 앞장서야 할 한국방송공사에서 한글맞춤법을 무시하고 우리말을 파괴하면서까지 연속극을 만든다는 데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문제의 ‘우리말 파괴’가 가리키는 것은 ‘차칸남자’의 ‘차칸’이다.

 

‘차칸남자’? ‘차카게 살자’의 드라마 버전?

 

▲ '차카게 살자'를 유행시킨 영화

‘차칸’이 ‘착한’의 의도적 오기라는 걸 모른다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차칸’이라는 오기가 어디엔가 눈에 익다. 그렇다. 그건 어떤 조폭 영화에서 나온 전설의 대사, ‘차카게 살자’의 드라마 버전인 셈이다.

 

‘차카게 살자’는 일상적 폭력 속에 살아가는 조폭이 삶의 신조로 내세운 것이다. 조직폭력배가 ‘악함’과 대조되는 ‘착함’을 지향한다는 반어도 반어지만, 그것조차 맞춤법에 어긋나게 쓴 무지를 덧붙였으니 그 이중 풍자는 제법 통렬했던 셈이다. 맞춤법에는 어긋났지만, 이 문구는 전체 영화의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었다.

 

이 문구가 제법 인구에 회자한 것은 결국 그런 풍자 구조를 담고 있는 이 말이 가진 단순함과 순수함에 대한 대중의 호감 덕분이었다고 하겠다. 이 문구의 유행에서 그 주체인 조폭은 거세된다. 다만 ‘착하게’를 ‘차카게’로 쓸 만큼 무식하지만 거기 담긴 순진무구를 대중은 새롭게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한국방송의 새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는 그것과는 경우가 좀 달라 보인다. 드라마 제작진은 한글 단체들의 ‘제목 변경 요구’를 거부하면서 “드라마 제목 ‘차칸남자’는 극 중 중요한 ‘나쁜 남자’의 반어적 표현인 ‘착한 남자’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차카게 살자’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차칸남자’의 경우는 아직 방영도 하지 않은 드라마의 제목으로서 일방적으로 시청자에게 주어졌다. 전체 드라마 전개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 섣부르게 제목으로 제시된 것이다. 친절하지도 설득적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맞춤법에 어긋난 제목을 문제 삼는 쪽과 그 제목을 고집하는 제작진 사이의 의견 대립은 ‘방송의 우리말 파괴’와 ‘창작물 표현의 자유’쯤으로 줄일 수 있겠다. 한글 단체들의 비판과 요구에 대해서 관전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런 창작 드라마의 제목까지 물고 늘어지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비록 방송극이지만 창작물로서 독자적인 문맥을 가진 것으로 양해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말이다. 경우에 따라선 말글의 규범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고아떤 뺑덕어멈’

 

그러나 대체로 이 소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제작진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차칸남자’가 ‘반어’라는 사실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제작진에게는 드라마의 전개 과정을 통해 이 생뚱맞은 제목을 논리적으로 이해시켜 나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을 문학작품의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있긴 하다. 얼른 떠오르는 것은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의 단편 ‘고아떤 뺑덕어멈’이다. 금방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가? 그렇다. 이 제목은 ‘고왔던 뺑덕어멈’의 오기다. 약장수 무리에 섞여 심청전을 공연하던 ‘뺑덕어멈’이라는 여자를 마음에 두었던, 화자의 부친이 쓴 글귀다.

 

이 제목은 어떤 독자에게도 불편하지 않다. 그것은 전후 맥락을 통해서 아련한 울림을 줄 뿐 아니라, 작품을 사이에 둔 작가와 독자 간 소통에 어떤 문제도 빚지 않는다. 오히려 부친의 필적 뒤에 숨은 가족사의 아픔을 새삼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KBS에 공문을 보내 지적한 우려(‘차칸남자’가 한글맞춤법과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 한류의 핵심인 한국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다른 나라에 전파할 수 있다)가 기우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말글살이의 모범을 보여야 할 방송’이 드라마 제목 때문에 우려 섞인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 제목을 고집하는 상황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2012. 9. 12. 낮달

 

 

* 방송 드라마가 여론을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이 드라마는 3회 방영 때부터 제목이 ‘착한 남자’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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