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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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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

by 낮달2018 20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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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서울신문>이 지난해에 이어 한가위 인사말에 모범을 보였다.
▲ 인터넷 검색 결과 기사 제목으로 ‘한가위 되세요’는 더 이상 눈길도 끌지 않게 되었다.

다시 그걸 주제로 글을 쓰려니 정수리가 따갑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다시 하는 기분은 정말 ‘아니다’. 글쎄, 누가 공식 감시자 구실을 맡겨준 것도 아닌데 또 그걸 일일이 살펴보는 게 거시기해서 올 한가윗날은 무심히 보냈다.

 

그예 <한겨레>까지…

 

그런데 한가위 다음 날 아침 <한겨레>에 들렀다가 좀 아연했다. 제호 아래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가 선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향신문>에 이어 그예 <한겨레>도 이 ‘한가위 되세요’의 시대적 물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우리 말글에 대한 애정과 실천이 남다른 데가 있었던 <한겨레>였던 만큼 이런 변화는 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겨레>도 결국 이 ‘택도 없는’ 인사말을 현실 언어로 받아들이겠다고 작정한 것일까. 하긴 <한겨레>도 기사 중간에 ‘핫(hot)하다’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쓸 정도가 되었으니 이것도 접어주어야 하는 셈인가.

 

텔레비전 쪽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았는데, 검색 결과에선 <문화방송(MBC)>의 ‘마리텔’에서 같은 자막이 보인다. 글쎄, 공중파가 예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면 ‘꼼짝없다’. 그게 대세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 그예 공중파도 ‘되세요’ 대열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화면 

지난해와 같이 <서울신문>은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라는 제대로 된 인사를 독자에게 건네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신문들은 따로 한가위 인사를 넣지 않았거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되세요’ 계열에 줄을 섰다. <중앙일보>와 <세계일보>가 그렇다.

 

‘한가위 되세요’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얻은 결과도 뜻밖이다. 뉴스타파, 민주주의 국민 행동, 앰네스티, 환경정의 같은 진보 시민단체들에서도 어김없이 ‘되세요’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시절이 달라져서 그런가. 한때는 우리말 쓰기에 일종의 결벽을 보였던 게 진보 진영이 아니었던가.

 

▲ 진보 시민사회단체들도 ‘한가위 되세요’에 합류하고 있는 것은 ‘시절’ 탓일까 .

서울시 공식블로그에 ‘되세요’가 요란해서 내가 사는 경상북도를 들여다보았더니 비슷하다. 서울시가 그럴진대 지방 자치 단체는 ‘말해 무삼하리오’일까. 인천과 광주, 대구광역시도 같다. 충남도가 도지사 인사로 ‘한가위 보내십시오’를 쓰고 있는 게 다를 뿐이다.

 

▲ 지방자치단체들도 대부분 ‘한가위 되세요’의 대열에 서고 있다 .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아파트의 펼침막은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 걸린 펼침막을 보고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지난해 이맘때, 관리소에 간단히 취지를 설명하고 요구한 것을 이번에도 제대로 이행한 것이다. 두어 주일 후에 한글날이 다가오는데, 이런저런 상황을 곱씹어보면서도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2015. 9.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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