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여전히 ‘한가위 되세요’ - ‘백약이 소용없다’

by 낮달2018 2020. 9. 28.
728x90

잘못된 명절 인사 ‘한가위 되세요’

▲ 이번 추석 인사의 ‘갑’은 <문화일보>와 <서울신문> 차지다.
▲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인사는 정중하지만 실패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명절이 다가오면서 거리와 아파트 단지 곳곳에 걸린 펼침막마다 ‘한가위 되세요’가 넘쳐나고 있다. 어느덧 그걸 주제로 입을 떼는 게 민망할 정도다. ‘~되세요’ 형식의 이 황당한 인사말은 이미 관공서의 자동응답시스템(ARS)에까지 진출했다. 쓰기보다 쓰지 않기가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 된 듯싶다.

 

그간 내가 쓴 관련 글의 목록

 

2012/09/30 “한가위 되세요!”는 쭉 계속된다 

2010/10/02 여전히 ‘한가위 되시라’, 그 뒷이야기 

2010/09/24 여전히, ‘한가위 되라’고 한다 

2010/09/18 한가위, ‘되지’ 말고 즐겁게 ‘쇠자!’ 

▲ 포털은 무난히 ‘비문’을 비켜 갔다.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 인터넷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다. 한가위 인사에 있어 포털은 중립을 취한 듯싶다. <다음>은 송편과 밤, 산적(散炙) 그림에다 ‘한가위’라고만 썼고, <네이버>는 색동저고리 그림 플래시에 ‘평안한 명절 보내세요’가 나오는 구조다. <네이트>는 따로 인사 없이 추석 특집을 로고 옆에다 붙여 두었다.

 

일간지는 로고 주위에 한가위 관련 삽화를 붙이는 등의 방식과 정중하게 인사말을 넣는 방식 등 두 가지로 갈렸다. <국민일보>·<동아일보>·<세계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가 앞의 방식을, <경향신문>·<문화일보>·<서울신문>·<중앙일보> 등이 뒤의 형식을 따랐다.

 

언론사엔 ‘교열’부서도 있는데…

 

인사말을 넣었으되, 예의 ‘되세요’ 형식을 써서 결과적으로 엉터리 문장을 쓴 <경향신문>과 <중앙일보>는 우세를 당해야 할 듯하다. 두 신문은 각각 ‘넉넉하고 풍요로운 한가위 되세요’와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를 썼다.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비문(非文)을 써 손해를 본 것이다. 어엿이 교열부서를 갖춘 신문사에서 저런 실수를 저지르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 그림으로 인사말을 대신한 언론사들

<문화일보>와 <서울신문>이 중앙일간지 가운데 유이(!)하게 제대로 된 추석 인사를 실었다. <문화일보>는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서울신문>은 ‘풍성하고 뜻깊은 한가위 보내세요’를 썼다. 인사도 제대로 했고 보름달과 탐스럽게 익은 감 그림도 좋았다.

 

<한겨레>는 아직 추석 관련 인사나 이미지를 따로 올리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도 마찬가지다. 대신 두 매체는 각각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의지를 표명하고 시민네트워크의 사업을 소개하는 내용을 로고 옆에다 붙이고 있다. <프레시안>이나 <뷰스앤뉴스> 같은 매체는 예년과 같이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전자우편 따위를 통해서 받은 몇몇 기업과 단체의 인사장에서도 내용은 갈린다. <삼성생명>은 ‘뜻깊고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를, <아름다운 재단>도 ‘함께 나눌수록 더욱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썼다.

 

대문 로고에서는 제대로 인사를 했던 <네이버>는 정작 ‘추석 정보’에서 앞서 딴 점수를 까먹는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할 인사말’로 ‘풍요로운 한가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라고 한 것은 좋았는데, ‘풍성한 한가위’, ‘넉넉한 한가위’ ‘되’시라고 하는 인사를 덧붙인 것이다.

▲ <오마이뉴스>·<한겨레>는 아직 인사말인 안 올랐다.
▲ 실패한 인사말. 위로부터 <네이버>,<삼성생명>, <아름다운 재단>
▲ 한가위 인사말의 최고점은 <농협>이다. 송편 꽃이 아름답다.

기업이 쓴 인사말로는 <농협>이 그중 나았다. <농협>은 송편 나무 그림 위에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을 시원스럽게 휘갈겨 놓았다. 그림도 인사도 이 풍성한 계절의 질감을 맛깔나게 표현해 놓은 것이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우리 아파트 단지에 붙은 펼침막이다. 관리소장에게 전화로 이만저만하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하고 관련 자료를 전하고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그저께 저녁에 퇴근해 보니 건너편 동의 화단을 가로질러 걸어놓은 펼침막의 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가위 명절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관리소에 낸 의견이 주효해 ‘- 되세요’를 쓰지 않은 우리 아파트 펼침막.

하찮다면 하찮은 일이겠지만 관리소장은 주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대로 된 인사말을 단지에 건 것이다. 연휴 기간에라도 그를 만나면 정중하게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거듭하면서 이른 가윗날을 기다린다.

 

2014. 9. 7. 낮달

 

[2015]‘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

[2012]“한가위 되세요!”는 쭉 계속된다

[2010]한가위, ‘되지’ 말고 즐겁게 ‘쇠자!’

 

 

후기 :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본 <구글> 화면이다. <구글>은 해당 국가의 기념일 따위를 챙기는 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정겨운 보름달, 초가집 풍경 위에 커서를 갖다 대면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이 뜬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