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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척’ 산수유와 매화

by 낮달2018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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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꽃, 산수유와 매화

▲ 우리 동네 매화는 이제 겨우 꽃망울을 맺었다. 2월 20일.
▲ 우리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 지난해 열매 위에 겨우 한 송이가 꽃망울을 열고 있다. 2월 25일.

해마다 봄이 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동네와 북봉산 어귀를 어슬렁대곤 한다. 역시 가장 먼저 계절을 알리는 ‘봄의 척후’는 산수유다. 지난해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 산수유와 매화는 꽃망울을 맺은 것은 비슷한데, 벙글기 시작한 건 산수유가 앞섰었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의 끝, 2월 2일이었다.

 

봄의 척후, 산수유

 

올해도 2월 초순부터 아파트 앞 화단의 산수유를 드나들 때마다 눈여겨보았지만 꽃망울은 낌새도 없었다. 올겨울이 제법 추웠다는 걸 떠올리며 당연히 매화도 그러려니 하면서 2월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우리 동네가 북봉산 아래여서 봄이 더디다는 사실과 아파트 앞 계단이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걸 깨우친 것은 2월 하순에 우연히 체육공원을 지나다가 추위에 오그라든 매화를 발견하면서였다. 맞다, 내가 모르는 새에 벌써 산수유와 매화는 피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마치 소문난 잔칫상에서 밀려난 것처럼 좀 서운하고 억울했다. 2월 20일에 일부러 찾아간 동네 매화는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 때를 놓치지 않아서 만난, 제대로 활짝 핀 매화 꽃송이. 아직 꽃이 본격적으로 피지는 않았다. 2월 27일.
▲ 이웃 동네로 가는 길가에 핀 홍매화. 화사한 대신 그 화사함이 다소간 경박해 보여서 나는 홍매를 즐기지 않는다. 2월 27일.
▲ 청매화 가지가 맺은 꽃망울이 오종종 달려 있다. 대체로 청매가 개화가 늦은 걸까. 2월 27일.
▲ 다음 날에 만난 매화. 역시 단아한 모습이 정겹다. 2월 28일.

나는 같은 지역이라도 다 같은 봄을 누리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어디든 봄이 먼저 오는 동네가 있기 마련이고, 같은 꽃이라도 서둘러 먼저 피는 녀석이 있기 마련이라는 걸 말이다. 같은 그루에 달린 꽃도 제각기 생김새가 다르다. 어떤 놈은 단정하고, 어떤 놈은 잎이 지저분하게 흐트러졌고, 어떤 놈은 또 꽃송이가 유난히 작기도 하다. 사람이 저마다 고유한 개성에 따른 개인차가 있듯이 꽃은 ‘개체(個體)차’가 있는 것이다.

 

꽃나무의 개화는 ‘개체차’가 크다

 

반경 1km 이내의 우리 동네에 피는 꽃나무는 매년 봄 동네를 몇 바퀴씩 도는 덕분에 엔간히 꿰고 있다. 매화가 어디에 피는지, 매화 지면 살구는 또 어디에 있는지, 명자꽃이 좋은 데는 어디인지, 꽃사과는 어디 피는지 따위를 나는 알고 있다. [관련 글 : 춘분 날, ‘설’은 녹고 ‘매’만 남은 설중매(雪中梅)]

 

조그만 전자 공장 정문 앞에 서 있는 우리 동네 매화를 찾았더니 어럽쇼, 만개는 아니라도 꽤 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늦지 않게 찾은 덕분에 나는 반듯하고 단정한 매화 송이를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다. 조금만 늦으면 꽃잎이 이지러지고, 꽃술은 무성해지면서 매화꽃은 그 본연의 품위와 맵시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매화의 아름다움, ‘속성’인가, ‘꽃 자체의 아름다움’인가

 

매화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40대가 훨씬 지나서였다. 사군자의 하나고, 강희안이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국화, 연, 대나무, 소나무와 함께 1품으로 매긴 꽃이긴 하지만, 나는 매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매화를 ‘화괴(花魁)’, 즉 꽃의 우두머리로 칭하는 것에도 머리를 갸웃한다.

 

‘선비의 꽃’이라거나 “청아하면서 속된 기운이 없고,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며 매화를 예찬하는 것은 선비들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투영한 매화의 속성일 뿐, 그게 꽃의 아름다움 자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매화는 꽃송이가 작고 오종종해서 가까이 두고 보지 않으면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단아한 꽃이긴 하지만, 꽃나무 전체와 어우러져 아취를 풍긴다고 여기는 않는다. 옛 선비들이 집안에 매화를 심거나 분에 담아 매화를 즐긴 까닭이 거기 있을 법하다.

 

‘절(節)’과 지조를 드러내는 매화로 ‘설중매(雪中梅)’를 꼽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긴 눈이 내리는 겨울의 끝에 꽃을 피우는 매화의 모습은 여는 꽃과는 다른 기품이 있기는 하다. 지난 3월 3일에 걸어서 이웃 동네를 돌아오면서 만난 꽃이 이를테면 ‘설중매’였다. 간밤에 비가 잠깐 내렸다 싶었는데, 눈발이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 간밤에 비가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잠깐 눈발도 날렸나 보다. 꽃받침이 눈에 싸여 파랗게 언 매화 꽃송이. 3월 3일.

만나는 나무마다 꽃잎이 눈으로 싸여 얼어 있었다. 꽃받침이 눈에 덮여서 파랗게 질린 매화는 꽃잎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었다. 백매(白梅)도 청매(靑梅)도, 홍매도 다르지 않았다. 취향으로 말하자면 나는 백매가 좋다. 백매의 으뜸은 성주 회연서원에 있는데, 올해도 때를 놓치지 않고 거길 들를 작정이다.

 

청매는 푸르스름한 빛깔이 주는 느낌이 좋긴 한데, 잎이 단정하지 못하고 꽃술도 넘치는 편이다. 홍매도 화사하긴 해도 그 화사함이 오히려 좀 경박해 보여서 싫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매화를 속성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보다.

 

흔한 꽃이긴 해도, 봄을 예고하는 꽃으로는 산수유도 손꼽는다. 특히 꽃망울이 터뜨리면, 마치 ‘씨나락’처럼 보이는 꽃이 다닥다닥 붙어서 피는 모습이 수더분하면서 단정하다. 꽃이 완전히 피고 나면 오히려 맵시가 떨어지는 게 흠이긴 해도 말이다.

▲ 시립 중앙도서관 뜰에서 만난 산수유. 간밤에 내린 비를 시방도 가지 끝에 머금고 있다. 3월 2일.
▲ 아파트 뒤편 감나무밭에 핀 매화. 매화 꽃에 벌이 붙이 있다. 3월 5일.
▲ 감나무밭에 핀 청매. 청매는 활짝 핀 꽃보다 좀 덜 피었을 때가 오히려 더 보기에 좋다. 3월 5일.

3월 2일에는 시립 중앙도서관 뜰에서 전날 내린 비를 머금고 있는 산수유를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왕관 모양으로 퍼지는 꽃차례[花序]도 보기에 좋다. 그러고 보니 의성에서 열리는 산수유 축제는 올해도 생략되는지 어떤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낯선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삶을 옴짝달싹 못하게 바꾸어 놓았다.

 

산수유와 매화가 지워주는 ‘계절의 경계’

 

아파트 뒤쪽 비탈진 밭에도 매화가 몇 그루 있다. 감나무밭인데 양념처럼 백매 두 그루와 청매 한 그루가 심겨 있다. 역시 때를 놓치지 않아선지 꽃 모양이 어그러지지 않은 꽃들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뒤편 언덕 아래엔 3월 말쯤 살구가 필 것이다.

 

살구는 같은 장미과여서 생김새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하지만, 나는 그게 매화보다 더 아름다운 꽃으로 여긴다. 살구꽃은 매화보다 꽃잎도 조금 크지만, 꽃술은 오히려 적당해서 그렇다. 살구는 사진을 찍어보면 훨씬 그윽한 느낌을 선사해 주는 꽃이다.

▲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 겨우 한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래 위의 꽃눈은 아직이다.  2월 28일. 3월 5일에도 같은 상황이었다.

개체차인지, 뒷밭의 청매는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꽃이 대부분이다. 연둣빛으로 탱글탱글한 느낌을 주는 꽃망울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나는 지금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계절의 경계를 가만히 가늠해 본다.

 

 

2021. 3.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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