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캐기, 농사가 주는 최고의 선물은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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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지난 3월 15일에 선산 오일장에서 사 온 씨감자를 심었었다. 해마다 고만고만하게 짓는 텃밭 농사가 품만 들고, 병충해의 습격으로 거덜이 나는 걸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려두려고 하다가 어쩐지 땅을 묵히는 게 거시기해서였을 것이다. [관련 글 : ① 다시 텃밭을 일구며]
감자를 심은 건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석 달 뒤엔 얼마간의 수확을 보장해 줄 듯해서였다. 정확히 90일이 된 게 지난 15일이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감자가 알이 굵어지게 한 열흘쯤 뒤에 캐자고 하더니, 장마가 온다는 소식을 듣더니 오늘 아침 득달같이 텃밭으로 향했다.
5천 원어치 씨감자로 심은 감자는 모두 해도 한 2, 30포기쯤 될까. 그 전 해 배추를 뽑고 나서 멀칭 비닐을 걷어내지 않은 이랑에 감자를 심었다. 지난해만큼 텃밭을 자주 찾지 못했지만, 감자는 제대로 잘 자랐다. 아내는 가끔 꽃이 제대로 피지 않느니, 땅을 깊게 갈고 두둑을 높게 해야 하는데, 그걸 놓쳤다면서 아쉬워했다. 두둑이 낮아서 감자가 자라면서 덩이줄기가 들솟으면서 햇볕을 받아 녹색으로 바뀌곤 걸 이르는 것이었다. [관련 글 : 조바심의 기다림, 백일 만에 ‘감자’가 우리에게 왔다 / 2020 텃밭 농사 시종기(1) 감자 농사]
몇 이랑 되지 않으니 감자 캐기는 금방 끝났다.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부드러운 흙을 뒤집기만 해도 주르르 쏟아져 나오니 한결 거두기가 수월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꽤 씨알이 좋았다. 다만 한 포기에 달리 덩이줄기가 많지 않았다. 지난해 배추를 심은 이랑이라 따로 거름을 제대로 주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래도 검은 비닐봉지 네 개에 담아 드니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호박이 안 달린다고 지천을 했더니 알맞게 자란 호박이 한 덩이, 주먹 하나보다 작은 열매로 하나, 그리고 막 꽃 진 자리에 모양을 갖춘 녀석이 몇 개였다. 큰 놈만 따고, 나머지는 잘 자라도록 아내가 순을 쳐 주었다.
올핸 모종이 시원찮아선지 고추와 가지가 영 맥을 못 춘다. 벌써 여러 차례 따 먹어도 시원찮을 가지는 겨우 손바닥 길이에 못 미치는 열매 두 개가 고작이고, 고추는 이제 겨우 열매 몇 개를 맺었다. 고추와 가지는 텃밭에 농사지은 지 10년이 넘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감나무 그늘에서 자라서 그런가 싶어 보니, 고랑에 풀이 무성했다. 나는 거기 작업 방석을 깔고 앉아, 풀을 맸고 아내는 묵은 밭의 대파밭에 김을 맸다. 어쨌건 두 사람 손이 지나간 자리는 말끔해진다. 9시쯤 돼서 일을 매듭짓고, 감자와 고추, 가지, 호박에다 상추와 깻잎을 한 봉지 따서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11시, 아직 아침 식전이라 아내가 서둘러 오늘 캔 감자를 채 썰어 볶았고, 된장을 구수하게 끓여냈다. 내가 풀을 매면서 뜯어낸 쇠비름을 데쳐서 된장으로 무쳐서 내놓았다. 쇠비름은 여름이면 내가 즐겨 먹는 나물이다.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관련 글 : ‘된장녀’도 콩잎 쌈에는 반해버릴걸!]
늦은 아침을 쇠비름나물로 비벼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내는 주방 뒤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감자를 널어놓았다. 말려서 종이상자에 보관하려는 것이다. 감자로 만든 반찬은 뭐든 즐기는 편인 나로서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어쨌든 2019년과 2020년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지은 감자 농사가 소량이나마 우리에게 농부의 기쁨을 깨우쳐 준 셈이다.
뭐니 뭐니 해도 농사의 기쁨은 수확에 있다. 그건 거기 들인 노력과 비용과 무관하게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와 생산력’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농부가 수행하는 농사짓기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라고 한 옛사람들의 인식은 그것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2024. 6.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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