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충해를 입긴 했어도, 그만하면 옥수수는 “제 구실 했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감자를 캔 새 밭에 뭘 심을까 고민하다가 들깨를 심고, 가장자리에 가을 옥수수를 심은 게 7월 11일이다. 묵은 밭 가장자리에도 옥수수를 심었다. 모종도 아니고 씨앗을 심으면서 솔직히 말하면 이게 정말 싹을 틀까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관련 글 : 긴가민가하면서 가을 옥수수를 심다]
싹이나 틀까, 의심한 임자에게 존재를 증명한 우리 옥수수
그런데 7월 20일 밭에 들르니 가을 옥수수는 싹을 틔웠고, 나는 속으로 내 의심병을 뉘우쳤다. 밭 임자는 의심스러워했지만, 씨앗은 흙과 햇볕, 그리고 실낱같은 수분에 의지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다시 보름여 만인 8월 14일에 들르니 옥수수는 아주 의젓하게 자라서 밭을 둘러싸고 있었다. [관련 글 : 24일 만에 들른 텃밭, 풀밭이 다 됐지만, 옥수수는 잘 자랐다]
그리고 9월 5일에 들렀을 때, 옥수수는 이미 겉으로 보기엔 튼실한 열매를 달고 있었다. 아내는 열매를 손으로 만져 가늠해 보더니 아직 알이 차지 않은 쭉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가위를 쇠고 17일 만에 다시 밭을 찾았다. 아내는 대문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옥수수 하나를 꺾어 껍질을 까보더니 짤막하게 외쳤다. 그래도 알이 다 찼네!
나는 알이 제대로 찰 때까지 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지만, 옥수수를 둘러보고 이미 때가 늦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제대로 자라는지 의심하기만 했지, 옥수수가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옥수수는 대부분 병충해를 입어 껍질이 거뭇하게 바뀌어 있거나, 아래나 위쪽이 썩거나, 짓물러 있었다.
그러나 태반이 병충해를 입어서 온전치 않다
시간을 더 주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싶어서 우리는 덜 자란 놈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땄다. 그리고 밭 가장자리에 작업 방석을 깔고 앉아서 껍질을 벗겨냈다. 병충해를 이겨낸 놈들은 아직 윗부분이 덜 자라서 완전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병충해 때문에 버리거나, 병든 부분을 낫으로 잘라내야 했다. 그래도 그렇게 고른 놈이 한 무더기가 되었다.
한동안 내버려두었더니 그래도 꾸역꾸역 자란 가지 대여섯 개를 따고, 아내는 남은 고추를 몽땅 땄다. 부추를 좀 베고, 깻잎도 먹을 만큼 따서 담으니, 봉지가 서너 개다. 옥수수는 병들어 불완전하긴 해도 수확을 선사해 주었으니, 그거로 족하다, 하고 우리는 우정 서로를 위로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는 냄비와 압력솥에다 번갈아 가며 옥수수를 쪘다. 냉동 보관하여 필요할 때 꺼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쩌내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김이 오르는 옥수수를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옥수수는 빛깔이 온전하지 않고, 군데군데 덜 여문 데도 많고, 병들어 베어낸 부분이 있어도 그 맛은 사 먹는 놈과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첫 옥수수 농사는 그만하면 성공이라고해도 좋을 듯했다. 남은 건 들깨와 토란인데, 얼마만 한 수준에서 마무리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모르긴 해도 다음 달 중순 이전에 밭농사는 마무리하고 걷어야 할 테다. 늘 그렇듯 임자는 게으름을 피우면서 작물들이 마지막 성장을 착실히 해 주기를 바라는 게 고작이다.
2024. 9. 22.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텃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텃밭 농사] ⑨ 올 농사 마감, ‘위대한 흙’에 감사를! (11) | 2024.10.16 |
---|---|
[2024 텃밭 농사] ⑦ 24일 만에 들른 텃밭, 풀밭 돼도, 옥수수는 잘 자랐다 (4) | 2024.08.14 |
[2024 텃밭 농사] ⑥ 들깨는 잘 자랐고, 옥수수도 싹을 틔웠다 (27) | 2024.07.20 |
[2024 텃밭 농사] ⑤ 긴가민가하면서 가을 옥수수를 심다 (27) | 2024.07.12 |
[2024 텃밭 농사] ④ 잘 자라지 않는 고추·가지, ‘모종’ 아니라 ‘가물 탓’이다 (18) | 2024.07.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