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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4 텃밭 농사] ④ 잘 자라지 않는 고추·가지, ‘모종’ 아니라 ‘가물 탓’이다

by 낮달2018 2024. 7. 1.

작물의 성장 필수 조건은 ‘물과 햇빛, 온도’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몇 포기 심지도 않았지만, 고추 모종을 심은 곳은 밭 가녁의 감나무 밑이라 그늘이 자주 진다. 이도 성장에 지장을 주었을 게다.

텃밭을 다녀올 때마다, 올해 고추와 가지는 왜 저 모양이냐고 지청구를 해댔다. 고추는 쑥쑥 키가 자라 줄기가 여물어 가면서 이내 굵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지도, 가지도 제대로 한번 돌아보지 않아도 갈 때마다 거의 아이들 팔뚝만 한 열매를 맺지도 않았다.

 

지청구를 들으며 자라는 우리 고추와 가지

 

4월 중순에 고추와 가지 모종을 심었는데도 이놈들은 시난고난 하면서 제대로 자라지를 않아서 임자 속을 썩였고, 그러다 보니 모종이 시원찮아서 그런 게 아니냐고 우리는 동네의 모종 집을 은근히 헐뜯었다. 해마다 이웃 김천 아포의 육묘장에서 모종을 사 왔는데, 올해는 몇 포기 안 된다고 동네의 농약상에서 모종을 구매한 것이다.

▲ 제법 꼴을 갖춘 고추가 열매를 적지 않게 달고 있다.
▲ 작년과 달리 올핸 호박이 잘 달리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가꾸지 못한 탓이다.

지난 17일에 감자를 캐면서 딴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큰 고추 몇 개, 배배 곯은 가지 두 개가 그간 수확의 전부다. 심은 지 거의 두 달이 지났는데도 꼴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아내와 나는 그간 제대로 거름도 하지 않은 탓도 있긴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아마 모종이 시원찮은 거라고 이심전심으로 말을 맞추고 있었다. [관련 글 : [2024 텃밭 농사] 잘 거두지 않아도 감자는 제대로 자랐다]

 

7월 이후에 수확이 가까워질 때쯤 슬슬 병충해가 꾀기 전까지만 해도 고추는 잘 자란다. 풋고추 정도를 따 먹는 건 아주 편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이다. 줄기도 튼튼해지고, 잎 빛깔도 검푸르게 바뀌면서 절로 고추밭 풍모를 보여주곤 하는 게 고추 아니었던가. 그런데 중간에 한두 해 쉬긴 했지만, 그간 텃밭에 고추를 지은 게 20년쯤 된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 가물로 제대로 자라지도, 열매가 크지도 않은 가지.
▲ 묵은 밭의 대파도 통 크지 않고 있다. 역시 가물 탓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장마로 담밑의 토란이 제대로 자라면 좋겠다.

가지, 고추, 대파가 더디 자라는 건 가물 때문이다

 

가지는 또 어떤가. 나는 가지만큼 생산성이 뛰어난 채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두 포기만 심어 놔도 여름내 열매를 따내어 삶아서 나물로 무쳐내거나 찬물에 간장과 초를 쳐서 만든 국물, 챗국은 오이 챗국과 함께 여름의 별미가 아니던가. 그뿐 아니다. 우리 지역에서 흔히 ‘무름’이라고 부르는 밀가루를 묻혀 쪄내고 양념으로 간을 한 반찬인 ‘가지 무름’도 별미다. 가지는 조려내도, 부침개로 부쳐 내도 맛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가지를 말려서 비빔밥 재료로 써도 그만이다. [관련 글 : 가지’, 맛있고 몸에 좋다!]

 

그런데 아직 고추와 가지로 만든 반찬을 먹은 기억이 없으니, 이건 텃밭이지만, 농사지은 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고추는 풋고추로도 먹고, ‘고추 무름’으로도 먹고, 가끔은 반으로 길게 잘라서 부쳐 먹기도 했는데, 올해는 아직 그런 반찬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번에 캐다가, 중간에 옮겨 심은 놈이라서 씨알 굵어지라고 남겨둔 감자 두어 포기를 캐었지만, 결과는 별로였다. 고추는 지난번에 비기면 키도 훌쩍 컸고, 제법 열매를 매달고 있어서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하필이면 감나무 근처에 심어 그늘이 진 탓인가 싶으면서도 포기마다 키가 제각각이었다.

 

대파를 심어 놓은 묵은 밭 한쪽에 심은 가지도 조금 자란 듯했으나, 기대한 만큼 크지 않았고 가지의 크기도 기대에 못 미치는 거였다. 그래도 겨우 2개를 땄으니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대파도 성장 속도가 더디다. 도무지 키가 크지 않고 있다. 묵은 밭에는 그래도 퇴비를 한번 뿌린 곳인데도 그렇다.

▲ 쇠비름은 최근 연구 결과 항균·항염·항종양·진통·상처치유·면역조절 등 효과가 있는 거로 밝혀졌다.왼쪽은 무친 나물. ⓒ 국립생물자원관

그나마 가외의 수확으로 묵은 밭 주변에 쇠비름이 잔뜩 돋아나 있어서 아내가 알뜰히 뜯어왔다. 매월 한 번씩 나들이를 같이하는 후배가 쇠비름나물을 즐긴다는 얘기를 들어서 따로 조금 담아 놓았다. 그리고 아내는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점심때도 쇠비름나물을 무쳐냈다. 한 그릇 뚝딱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맞다, 작물의 성장 필수 조건은 물과 햇빛온도’다

 

오늘 단골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았는데, 내 텃밭 농사를 아는 이발사가 올 농사를 물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고추와 가지가 영 시원찮다고 푸념했다. 그랬더니 이발사는 모종은 큰 차이가 없을 게고, 가물어서 그럴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 말 들으니 아, 그렇구나 싶었다. 초봄만 해도 비가 잦더니 본격 농사철이 되면서 통 비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작물의 성장 필수 조건은 ‘물과 햇빛, 온도’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게 대체로 기후 조건이라면 거름(비료)을 주는 건 인간의 이바지다. 그러나 우주여행 시대가 되어도 기후조건을 조절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장마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종일 시원하더니 오후 5시 반 현재 비가 내리고 있다. 다음 주 내내 비가 온다니 올여름은 기후 위기를 실증해 주려는 것일까. 어쨌든 예년의 수해 같은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산사태가 난 예천의 시골 노인들에게 또다시 고통의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4. 6.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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