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4 텃밭 농사] ⑦ 24일 만에 들른 텃밭, 풀밭 돼도, 옥수수는 잘 자랐다

by 낮달2018 2024. 8. 14.

임자는 무심해도 작물은 제 몫을 다 한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24일 동안 찾지 않았더니 텃밭은 거의 풀밭이 되었다. 잡초의 태반은 강아지풀과 닭의장풀, 그리고 바랭이 등이다.
▲ 묵은 밭은 그래도 토란과 들깨, 그리고 옥수수가 눈에 띄니 풀밭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풀은 제 세상을 만났다.

어제(8.12.) 아내와 함께 텃밭을 찾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동안 찾지 못한바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펼쳐진 풍경은 상상을 간단히 뒤엎는 것이었다. 일주일 전에 혼자서 다녀온 아내가 혀를 차면서 중얼댄 이야기를 나는 한쪽 귀로 흘려듣고 말았나 보았다.

 

24일간 돌보지 않은 텃밭, ‘풀밭’이 되었다

 

돌아와서 확인해 보고야 내가 거의 한 달 만에 텃밭에 들렀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들르고 일기를 쓴 게 7월 19일이니 24일 만인데도 그랬다. 텃밭이 아니라 풀밭이 돼 있다고 아내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었다. 우선 시멘트로 포장한 마당부터 강아지풀과 바랭이가 무성했다. 오래되어 깨어진 시멘트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린 풀들은 바야흐로 마당 전체로 번지는 중이었다. [관련 글 : 들깨는 잘 자랐고, 옥수수도 싹을 틔웠다]

 

들깨와 고추를 심은 새 밭은 얼핏 보아서는 묵정밭처럼 변해 있었다. 들깨와 고추, 그리고 가을 옥수수를 심었는데, 웃자란 풀들이 작물들을 둘러싸면서 작물과 풀의 경계가 애매해져 버린 듯했다. 돌로 쌓아 올린 둑에는 안 보이던 닭의장풀이 무성했고, 밭을 점령한 것은 역시 강아지풀이었다.

 

옥수수와 대파를 심어 놓은 묵은 밭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 가슴 높이까지 자란 지난해의 들깨와 훤칠하게 자란 옥수수만 아니었다면 여기도 풀밭이었다. 아내가 잎이 타서 말라 죽는 것 같았다는 토란은 잎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한 걸 빼면 새로 기운을 차린 듯해서 우리는 한시름을 놓았다.

▲ 시멘트를 바른 마당은 포장이 깨지면서 그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린 잡초들로 무성했다. 역시 강아지풀과 바랭이 중심이다.
▲ 가까이서 찍은 묵은 밭. 그래도 성큼 키가 자란 옥수수와 들깨 덕분에 텃밭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폭염 속에 타다가 다시 살아난 토란. 잎사귀 가장자리의 누렇게 변한 부분은 폭염과 싸운 상처다.

도착한 게 오전 7시께였는데, 아내는 어차피 볕이 뜨거워서 풀 매기는 힘들다, 토란에 물이나 대고 가자고 했다. 비닐 호스를 당겨서 토란 주변에 고정하고 물을 대기 시작하면서 새 밭 어귀의 풀을 손으로 쥐어뜯어 보니 뿌리가 워낙 단단히 내려서 위의 줄기만 뽑히는 게 많았다. 안 되겠다, 나중에 비가 온 뒤에 와서 뽑든지, 말든지…….

 

1시간 반, 땀 흘리니 밭이 훤해졌다

 

아내가 토란잎 그늘의 풀을 뽑길래 나도 묵은 밭에 들어가 대파 고랑의 풀을 뽑아보니 고랑의 그늘 속이선지 생각보다 쉽게 뽑힌다. 작업 방석을 가져와 깔고 앉아 아내와 같이 1시간 반쯤 땀을 흘리니 밭의 인물이 훤해졌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들깨와 대파, 가지와 부추, 그리고 옥수수와 토란까지 오밀조밀 심은 밭에 그간 잘 보이지 않던 방동사니가 가득했고, 단골 잡초인 바랭이와 쇠비름이 번지고 있었다.

 

가지는 무슨 병충해를 입었는지 수명이 다한 듯하고, 대파도 병이 든 듯하지만, 뜻밖에 들깨는 잎사귀가 비교적 성한 놈이 많았고, 옥수수는 늘씬하게 자라고 있어 한결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새 밭의 풀은 나중에 비 온 뒤에 들러서 맬까 했지만,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일이어서 언제 저녁 무렵에 들러 물을 대고 다음 날 아침에 와서 매기로 했다.

 

새 밭 가녘에 심은 옥수수는 좀 척박한 데다가, 제대로 거름기가 없어선지 묵은 밭 옥수수에 비기면 키가 덜 자랐다. 아내가 옥수수 뿌리 근처에 복합비료를 좀 주라기에 주변 풀을 일부 뽑아내고 흙을 파내고 비료를 한 줌 넣은 뒤에 덮었다. 그리고 옥수수 근처에 호스를 대고 한참 물을 주었다. 땅에 뿌리 내린 작물들은 물이 없으면 자라지 않고, 알이 차지도 않는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 옥수수 비료를 준다고 고랑을 밟고 다니고, 주변 풀을 좀 걷어내니 새 밭도 들깨밭이라는 게 드러나긴 한다.
▲ 1시간 반쯤 땀흘려 매고 나니, 밭의 인물이 훤해졌다. 조금만 임자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 밭은 풀들의 세상이 된다.
▲ 아마, 고추도 마지막 수확이 될지도 모른다. 오른쪽은 아내가 잘라 온 토란 줄기. 껍질을 벗겨 말려서 나중에 나물로 쓴다.

한동안 잘 따먹었던 고추도 이제 끝물이다. 더러 병도 든 데다가 가뭄 탓인지 달린 열매도 시원찮았다. 고추를 아끼지 않고 따고, 아내는 집에 가서 껍질 벗겨서 말리겠다며 토란 줄기를 한 움큼 잘라서 넣었다. 말린 토란 줄기는 닭개장이나 추어탕 같은 데 넣으면 제격이라서 아내는 해마다 그걸 시장에서 사는데, 올해는 사지 않고 농사지은 거로 대체가 될까.

 

폭염은 이어지지만, 계절의 순환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아무리 먼데 있다고 해도 텃밭은 그야말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텃밭이라고 하기 어렵다. 집에 살지 않으니 부득이한 일이지만, 거의 24일이나 들르지 않은 건 밭 임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무심한 임자를 용서하듯, 제 몫의 성장을 수행한 작물들에 고마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시쯤 대충 마무리하고 짐을 꾸려서 대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언제 오나, 가늠해 보지만, 날을 잡기는 쉽지 않다. 보아하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우리 지역에는 소나기 한 줄기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더위가 자정까지 이어지는데도 11시쯤 문을 열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굳이 선풍기에 의지하지 않아도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된 점이다.

 

다음 주에도 폭염 특보는 이어지는데, 최고 온도는 32도쯤으로 떨어진단다. 22일이 처서(處暑), 더위가 물러갈 때도 되었는지, 새벽에 걸으러 나오면 날이 제법 선득하다. 천하 없는 폭염도 계절의 순환 앞에서 얌전히 물러갈 수 없는 게, 어쨌듯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좀 이르긴 하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가을 소식을 기다리기로 한다.

 

 

2024. 8. 14.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