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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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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솔(soul) 가수 박인수의 인생유전

by 낮달2018 2021. 5. 5.

▲ KBS의 <인간극장>에서는 박인수의 인생유전을 다룬 ‘봄비’(5부작)을 방영했다.

6, 70년대에 활약했던 가수들에 대한 기억은 늘 애매하다. 차중락이나 배호가 그랬고, 박건이나 김추자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짐작건대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시대, 서민들이 가수와 그 얼굴을 동시에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전축을 두고 가수들의 엘피(LP)판을 사서 대중가요를 즐기던 이들은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 라디오를 통해서만이 이들 대중문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가수들 공연이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서민에겐 멀기만 했다.

 

그 무렵 김추자의 도발적인 무대 매너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 역시 사람들은 ‘선데이 서울’과 같은 황색 주간지를 통해서 간접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연예계 뉴스가 포털에 뜨거나 대중들의 반응 따위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요즘과는 아예 견주는 게 불가능한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봄비’, 전설적 ‘솔’ 가수 박인수

 

가수 박인수(1947~ )도 마찬가지다. 그는 신중현이 만든 곡 ‘봄비’(1970)로 대중 앞에 나타난 낯선 가수였다. 솔직히 내겐 그가 부른 ‘봄비’에 대한 기억이 매우 모호하다. ‘봄비’를 익히지 못했듯 나는 그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 그가 그런 노래를 불렀다는 기억만 아련하다.

 

▲ 가수 박인수(1947∼     )

불과 한두 해 선배들이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열창하는 걸 들으면서 내겐 왜 ‘봄비’와 관련된 기억이 공백인가를 헤아려보곤 했지만, 그 까닭을 찾진 못했다. 대신 나는 그의 노래 ‘봄비’를 김추자 판으로 가끔 들었을 뿐이다.

 

그 박인수를 뒤늦게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미니시리즈에서 만났다. 한국방송(KBS) 제1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인간극장> ‘봄비’ 편에서다. 5부작인 이 다큐멘터리에 우리 식구는 푹 빠졌다. 우리 내외는 물론이거니와 박인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딸애도 이 미니시리즈에 심취했다.

 

내 기억 속에 그 이름만으로 존재했던 박인수는 60대 중반,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의 전성기를 기억하지 못해도 한 노인요양원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의 현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래 ‘봄비’로 얻은 폭발적인 인기도 잠시, 1976년 대마초 사건 등에 연루되면서 그는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90년대 초 노래 가사를 잊거나 저혈당 등으로 무대에서 쓰러지는 일이 이어지면서 그는 어느 날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2000년 서울 화곡동의 지하 단칸방에서 어렵게 지내던 그는 저혈당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었고 그의 췌장에도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주민등록이 말소되면서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그를 구한 이가 고양시의 노인요양원 ‘행복의 집’을 연 고 정봉인 목사다. 그는 수술로 췌장암을 이겨냈지만 정작 정 목사는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남편의 유지를 이어받아 ‘행복의 집’을 꾸리고 있는 성경애 원장이 그의 재활을 돕고 있다.

 

그에게는 나라 안에 가족이 없었다. 1970년대에 결혼해 아들을 낳고 살았으나 5년 만에 이혼했고 아내는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재산도 없고 경제 능력마저 상실한 상태여서 그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살아야 했다. 잦은 저혈당 쇼크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 약을 몇 번 먹었는지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다.

 

그는 가끔 자신의 히트곡 ‘봄비’를 부르지만, 노래는 음정도 박자도 어긋난다. 그래도 그는 마치 추억처럼 봄비를 흥얼거린다. 그 노랫소리는 대중의 기림을 받던 인기 가수가 기초 생활 수급자로 떨어질 수도 있는 삶과 세상을 우리에게 환기해 준다. 그래서 그의 어긋난 노래는 훨씬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솔 음악(Soul Music)
솔 음악(Soul Music)은 재즈 본래의 정신을 ‘Soul(솔, 소울, 영혼)’이라는 말로 표현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솔이 의미하는 바는 블루스의 정신이며, 또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으로는 흑인의 교회 음악, 가스펠 등의 영향을 가끔 볼 수 있다.

1950년경의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흑인들이 자란 대지의 소리, 피와 땀의 결정에서 나온 음악이라고도 한다. 미국 남쪽 지방에 거주하던 시골 흑인 노동자들이 동부, 서부, 북부 등 미국 전역으로 이주했던 기차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시대의 흑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여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그들이 즐기던 음악이 세련된 도시 음악인 재즈(Jazz)라는 음악과 융합을 이루게 되어 레이스 뮤직(Race Music)이라 불리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새롭게 생겨난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R&B는 이를 즐기는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게 되면서 더 많이 발전하게 된다. 백인들만을 위한 ‘로큰롤(Rock’n Roll)‘과 다른 하나는 흑인들만을 위한 ’솔(Soul)‘이다.

솔의 음악적 특징은 록이나 발라드처럼 절정 부분에서의 호흡법보다는 계속 발생하는 호흡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전하는 느낌이 다르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H.실버, 비브라폰 연주자인 밀트 잭슨 등이 솔 음악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위키백과>

 

이 다큐는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 지난해 아들(39)과 연락이 닿아 이루어진 전처 곽복화(62) 씨와의 극적 재회로 시작된다. 같이 산 세월은 고작 5년. 옛 아내는 자신이 먼저 그를 떠났다고 고백한다.

 

그이는 노래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순을 넘기고 투병 중인 남편을 만난 옛 아내는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단지 자신들이 철이 없어서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부부. 이미 쇠잔해진 전 남편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은 젖어 있다. 그러나 남자는 옛 아내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한때 자신과 가정을 이루었던 여인의 이름자는 분명하게 기억해 냈다.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라고 아내는 담담히 말한다.

 

그렇다, 40년 만에, 예순을 훌쩍 넘겨 다시 만난 남녀 사이에 무어 그리 살뜰한 정이 남아 있을까. 젊음의 시기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만큼 순정(純精)하고 치열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젊음의 치기와 객기일 뿐이라고 깨닫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때로 주고받는 교환의 감정이지만 노인들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바탕이다. 40년 만에 만났지만, 옛 남편은 둘 사이에서 자식을 낳은 사실을 빼면 남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한때 부부였다는 사실 말고 둘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한때의 애증을 충분히 넘을 만큼 흐른 세월 앞에 마주 선 자신들의 외로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둘 다 재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40년 세월이 만든 간극을 무리 없이 좁혀주었을 것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남남으로 살다 만난 남편과 아내, 그들 사이를 녹여준 것은 상대에 대한 가없는 연민들이었으리라.

 

“하나라도 재혼해 잘 살았으면 좀 좋아…….”

 

아내의 회한은 아무 은원도 없이 투병하고 있는 옛 남편을 보살피는 일로 조금씩 풀어진다. 요양원의 보살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박인수에게 가스펠을 주제로 한 기독교 음악영화 출연 제의가 온 것은 그가 한때 이 나라의 소울(soul) 가수였다는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할렘 스테이지에서 열릴 공연에 참여해 달라는 제작사 쪽의 주문에 따라 박인수는 열두 살 때 건넜던 태평양을 다시 건너 미국으로 가야 한다. 아내는 투병 중인 남편을 위해 미국 공연에 동행하게 된다.

 

박인수는 전쟁고아 출신이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고아원을 전전하며 자랐다. 열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3년여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미 8군에서 하우스 보이로 살았다. 그가 흑인음악 솔을 처음 접한 것은 바로 미국 입양 시기였다고 한다. 일견 여느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였던 그의 삶은, 기실 이 나라 고단한 현대사였다.

 

▲ 뉴욕 할렘 스테이지에서 절규하듯 노래하는 솔 가수 박인수.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단란한 노후를 즐기는 여느 노부부처럼 보이지만 기실 둘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다. 함께 낳은 자식이 있지만 둘은 엄밀히 말하면 남남이다. 아내 쪽에선 세월의 간극을 조금씩 허물어가고 있지만 성치 않은 남편의 속내는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더구나 자기표현도 관계에 대한 기억조차 서툰 병자이니 더욱 그렇다.

 

40년 만의 화해를 이룬 사랑, 혹은 연민…

 

미국에서 머무는 2주간의 일정을 통하여 부부는 서로의 사이에 쌓인 벽을 조금씩 낮춘다. 무엇보다도 공연을 통해서 독특한 창법의 소울 가수 박인수는 부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렘 스테이지에서 흑인 뮤지션과 함께 가스펠 송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는 마치 잃어버린 시간과 추억을 되찾으려는 듯 절규하며 노래한다. 그의 부활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한 사람은 그의 옛 아내다.

 

숱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아내는 마침내 남편의 섬에 다다른 것이다. 그 섬은 자신이 버린 남자, 자신이 두고 온 삶의 자리다. 너무 혼신의 힘을 써서인가, 박인수의 상태가 좀 나빠졌다. 그는 일종의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한다. 남편을 떠난 데 대한 죄책감이든, 가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든 둘은 비로소 4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인지 모른다.

 

▲ 두 사람의 40년 만의 해후를 성사시킨 것은 세월이고 연민이다.

결국 두 사람은 교포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혼한 지 30년 만에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는다. 그 두 번째 결혼식에서 부부는 사랑을 약속한다. 어눌하게 ‘성실하고 기운이 있는 남편이 되겠다’는 박인수와 달리 아내의 말은 몇 번이고 되새긴 듯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약속의 말이다.

 

“저는 박인수의 오른팔이 될 것이고 왼팔이 될 것입니다. 죽는 그 날까지 곁에 같이 있을 겁니다. 사랑해요.”

 

마주 보는 신랑 신부의 미소 위로, 신부의 면사포 뒤로 보이는 하늘이 푸르렀다. 박인수와 그의 아내가 연출해 주는 이 이야기는 한갓진 재결합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삶의 이야기고, 노년을 맞아 확인하는 사랑의 이야기다.

 

시청자 게시판이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는 까닭이 거기 있다. 어떤 시청자의 말처럼 <인간극장>은 두 개의 봄비를 보내주었다. 하나는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주는 봄비’고, 다른 하나는 ‘얼어붙은 나의 마음을 녹여주는 박인수’의 봄비다.

 

‘봄비’는 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낳았지만, 40년 후에는 다시 그들의 화해를 이루게 했다. 40년 만의 재회는 한 남녀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노년의 부부가 지향해야 할 곳이 서로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실을 드러내 준 듯싶다.

 

1970년 판의 ‘봄비’를 그 시절 박인수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비나 눈 오는 날이 좋았다는 전쟁고아 박인수의 인생유전(人生流轉) 위로 오버랩되는 그 목소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지만 그 눈물 너머로 걸어가는 이 부부의 삶은 따뜻한 희망을 속삭여 주는 듯했다.

 

 

2012. 5. 5. 낮달

 

다큐 미니시리즈 <인간극장> ‘봄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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