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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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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의 시간, 기해(己亥)년 설날에 2019, 기해년 설날을 맞아 육십갑자 가운데 서른여섯 번째, 기해년 설날이 밝았다. 1962년부터 공식적으로 연호를 서기로 쓰게 되면서 이 갑자는 사실상 역법의 기능을 잃었다. 다만 해가 갈리는 연말과 연시에 반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그해의 간지(干支)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들의 띠가 달라지기 때문인데, 올해는 기해(己亥)년이니 돼지띠의 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법칙에 따라 갑자를 이루는 천간(天干, 앞글자)과 지지(地支, 뒷글자)는 모두 각각 음양, 오행(목·화·토·금·수), 오방색(五方色, 청·홍·황·백·흑)을 나타낸다. 기해년은 천간인 ‘기(己)’는 음양으로는 음(陰), 오행으로는 토(土), 빛깔은 황이다. 지지인 ‘해(亥)’는 음양으로는 음(사주에서는 양), 오행으로는 수(水), 색.. 2019. 2. 5.
갑을병정, 자축인묘…, 간지는 과학이다 간지(干支), ‘미신’ 아닌 ‘과학적 전통’ 이다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아침에 한 뭉치의 새해 특집호가 배달되었고, 텔레비전 채널마다 새해를 기리는 프로그램이 바쁘다. 무싯날처럼 심상하게 제야를 지냈고, 역시 여느 날처럼 새해 아침을 맞은 나는 아내와 잠깐 덕담을 나누는 거로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2010년은 범의 해, 경인(庚寅)년이다. 해를 간지(干支)로 표기해 온 우리의 전통은 꽤 역사가 깊다. 간지는 ‘동양적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으로 우주 만물이 주역의 이치에 따라 순행함을 나타낸다.’ 일찍이 중국에서 들어온 간지는 한국 민족문화와 민간신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태양력의 도입과 함께 급격하게 쇠퇴했다. ‘간지’는 미신 아닌, ‘과학적 전통’이다 한때 사람들은 자기 출생연도의 간지를 .. 2019. 2. 4.
말에 담긴 ‘차별과 편견’ 넘기 국립국어원 펴냄 말 속에 ‘차별’이 담겨 있음은 두루 아는 일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는 늘 그런 것을 의식하고 사는 편이다. 생각 없이 흘린 말도 뒤에 되짚어보면 그게 어떤 ‘차별’로 이어지지 않나 싶어 기분이 찜찜할 때도 많다. 글을 쓰는 것은 그나마 성찰할 여유가 있어 낫지만,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니 더욱 그렇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하려고 힘쓰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앉은뱅이 용 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잘 검색되지 않는다. 일본 속담에 ‘멸치의 이 갈기’와 함께 ‘앉은뱅이 용쓰기’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이 속담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일 수도 있겠다. 부모님 세대로부터 이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저도 몰래 그 속담을 인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원뜻보.. 2019. 2. 3.
차례, 제사 문화를 생각한다 시대 변화 앞에 선 ‘차례와 제사’ 문화 한가위 저녁에 인터넷 마실을 다니다가 포털 ‘다음’에서 추석 명절 이슈를 다룬 방송 기사 “며느리의 노동…제사 문화 이대로 좋은가?”를 읽었다. 남녀 앵커가 대학 교수를 초대하여 ‘제사 문화’를 주제로 인터뷰한 기사였다. 제사 용어, 낯설고 어렵다 방송된 내용을 정리해 놓은 기사를 읽다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방송된 기산데 급하게 정리한 티가 나도 너무 났던 것이다. 명절이어서 교열할 인력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눈에 띄게 잘못 쓰인 기사를 갈무리한 게 위 그림이다. 밤 9시 이후에 확인해 보니 위 기사는 격식과 내용에 맞게 깨끗이 다시 정리되어 있다. 급하게 정리하느라 미처 교열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그 잘못을 지.. 2019. 2. 1.
‘보수의 심장’ 구미에 세워진 특별한 소녀상 고교생의 제안에 시민사회가 화답해 세운 ‘평화의 소녀상’ 아흔아홉 돌 삼일절, 구미시에도 경상북도에서 다섯 번째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3월 1일 오전 11시,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시민들의 뜻을 모아 구미역사 뒤 소공원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한 것이다. 경북지역의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10월 군위군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뒤 포항(2015), 상주(2016), 안동(2017)에 각각 건립되었다. 지역별로 소녀상 건립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도시 규모에 견주면 다소 늦게 구미에서 소녀상이 세워지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11일, 구미 청소년 YMCA 연합회가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 설립을 제안하면서부터다. (관련 글 : 경북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들) 구미 YMCA 청소년.. 2019. 1. 31.
경북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들 경상북도 각 지역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 안동에 경북에서 네 번째 소녀상 건립 경상북도 안동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안동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회원 1천773명으로부터 건립비용 5천570여만 원을 모으고 지역 예술인의 재능 기부를 받아 석 달 만인 8월 15일 오후에 웅부공원에서 소녀상을 제막한 것이다. 안동은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일제에 항거한 숱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이른바 ‘혁신유림’의 고장이었다.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안동에 시군 단위로는 거의 유일하게 ‘독립운동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건립추진위의 배용한 상임대표는 기념사에서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소녀상 앞의 각오를 밝혔다. 그.. 2019. 1. 31.
[근조] 일본군 ‘위안부’ 용기와 희망으로 지켜온 스무 해 고 김복동((金福童,1926~2019) 만 열네 살에 전쟁터로 끌려갔다가 22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67세 때인 1992년 3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알리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며, 2000년에는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원고로 출석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여성인권상으로 받은 5천만 원을 무력분쟁 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써달라며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해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됐다.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 2019. 1. 29.
‘오그락지’와 ‘골짠지’ 무말랭이로 담은 김치 ‘오그락지’ ‘골(곤)짠지’라고 들어 보셨는가. 골짠지는 안동과 예천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무말랭이 김치’를 이르는 말이다. ‘짠지’는 ‘무를 소금으로 짜게 절여 만든 김치’인데 여기서 ‘골’은 ‘속이 뭉크러져 상하다.’는 의미의 ‘곯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잘게 썰어서 말린 무는 곯아서 뒤틀리고 홀쭉해져 있으니 골짠지가 된 것이다. 안동 '골짠지'를 우리 가족은 '오그락지'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 집에선 아무도 그걸 골짠지로 부르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은 골짠지 대신 ‘오그락지’라는 이름을 쓴다. 이는 내가 나고 자란 경상북도 남부지방 칠곡의 고장 말인데, ‘골’ 대신 ‘곯아서 오그라졌다’는 의미의 ‘오그락’이라는 시늉말을 붙인 것이다. 남의 고장 말과 내 고장 말이라는 것.. 2019. 1. 29.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 [서평] 헬렌 켈러 전기 대중에게 있어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박제된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3중고의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그녀는 기억되고 회자된다. 역사책과 전기 속에서 그녀의 정형화된 생애는 그녀의 실존을 압도해 버린다. 그러한 점은 그녀의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되는 애니 설리반(Anne Sullivan, 1866~1936)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관련 글 :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돌아가다] 도로시 허먼, 헬렌 켈러의 실존을 복원하다 도로시 허먼(Dorothy Herrmann)이 쓴 그녀의 전기는 그녀의 실존을 복원한다. 그 여자는 ‘인간에게는 정상과 장애의 차이가 아니라, 상상력과 용기의.. 2019. 1. 28.
[오늘] 조현병, 딸의 실종, 이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삶 [역사 공부 ‘오늘’]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 38년 만의 환국 1962년 1월 26일, 소학교 5학년이던 1925년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갔던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1912~1989)가 3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외로움과 향수 때문에 조발성 치매증을 앓던 이덕혜는 대마도(對馬島) 번주(藩主)의 아들 소 다케시(宗武志)와 강제 결혼했다가 이혼당한 뒤에야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 황녀, 38년 만에 귀국하다 나라를 잃은 왕족들의 삶은 그들 조국의 운명처럼 파란만장했다. 이들의 삶 앞에 ‘비운’이라는 형용이 관습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고종(1852~1919)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퇴위 당했고, 그 아들 순종(1874~1926)은.. 2019. 1. 25.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이 노래가 서른 살이 됐다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발매... 해직 교사 시절 만난 그의 노래 음반을 한 장 샀다. ‘음반’이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지금껏 산 음반이 채 열 장이 되지 않을 만큼 음악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탓이다. 음악애호가들이 소장을 자랑하곤 하는 엘피(LP)음반은 구경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걸 걸고 돌릴 이른바 ‘오디오’를 소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거의 수십 년 만에 음반을 샀다. 그것도 인터넷으로 판매처(노동의 소리)를 찾아서 두꺼운 책 한 권 값인 2만5천 원을 ‘지른’ 것이다. 1천 명의 공동제작자가 함께 만들었다는 ‘김호철 헌정 음반’이다. 음반의 발매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기사를 통해서였다. 1천 명 공동제작자가 만든 ‘김호철 헌정 음반’ 김호철은 윤민석과 함.. 2019. 1. 24.
‘무관심’, 혹은 ‘살인과 배신’ 부르노 야센스키(Bruno Yasenskii), ‘살인과 배신보다 무관심’을 경계 1988년, 학교를 옮기고 500만 원짜리 전셋집, 재래식의 '부엌이 깊은 집'에 들었다. 방은 두 칸.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데리고 잤는데, 삐딱한 사다리꼴의 작은방에 내 서재를 꾸몄다. 말이 서재지, 제재소에서 켜 온 합판을 구운 적벽돌로 받쳐놓은 간이 책장이 전부인 초라한 공간이었다. 오래 써 온 크로바 타자기를 그 즈음 막 나온 라이카 전자타자기로 바꾼 때였다. 헝겊 리본이 아닌, 교체할 수 있는 고급 리본으로 인자(印字)되는 선명한 글꼴이 아름다웠고, 한 줄 입력이 끝나면, 자동으로 줄이 바뀌면서 나는 묵직한 기계음이 새로운 물건을 쓰는 즐거움을 새록새록 환기해 주곤 했다. 위의 글은 그때 그 타자로 쳐서 내 보르.. 2019. 1. 24.